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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사태 공안정국으로 가면 박근혜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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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석기 사태 공안정국으로 가면 박근혜 불행해진다" [남재희 인터뷰] "내란음모 사건, 우리 재판사에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
시공간을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낡은 두 세력이 부딪힌 파열음은 컸다. 장난감 총과 압력밥솥 폭탄으로 혁명을 꿈꾼 '농담파'와 이들에게 내란 혐의라는 한겨울 옷을 입힌 '육법당'의 행동부대가 벌인 활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던 4일 오후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을 "돈키호테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북한이 실패한 체제라는 인식 없이 이런 얘기를 하면 주사파 이론이 된다"고 했다. "남북은 현재 정전 상태이고 그렇다면 법에 안 걸릴 수 없는 것"이라며 "이 사건을 국정원이 터트렸다고 해서 기본적인 범죄 혐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법'이 문제다. 국가보안법과 함께 형법 상의 내란예비음모 혐의가 적용됐다. 내란 혐의가 적절하냐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으나, 남 전 장관은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성숙한 법치국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법률적으로는 당장 "수사가 아직 국정원 단계에 있는데 빨리 검찰로 사건을 넘겨야 국민도 납득한다"고 했다.

재판 결과는 차분한 눈으로 지켜보면 되겠지만, 정치적 파장은 그리 단순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정부 6개월을 평가해달라는 청에 "6개월 평가의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시점이 지금 국면"이라고 할 만큼 '이석기 사태' 이후를 예의주시하는 듯 했다. 남 전 장관은 "정권 핵심부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시작해 공안 라인이 꽉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더 나가면 공안 정국으로 간다. 박근혜 정부가 그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석기 사태가 공안정국으로 이어진다면 불행해 질 것"이라고도 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에 이석기 사태까지 겹친 복잡한 정국은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게도 딜레마다. 남 전 장관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이석기 사건이 시기적으로 맞물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를 해결하는 데 있어선 두 문제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권 쪽에서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야 야당이 국회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셀프 개혁'이 아닌 정권 차원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면 김한길 체제가 희생타를 쳐서라도 원내로 들어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덧붙여, 또 한 번 만신창이가 된 진보 세력에 대한 주문. 남 전 장관은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의 역사가 보여주는 "진보 세력의 순화의 과정"을 강조했다. "이번 사건으로 받은 타격을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탈바꿈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음은 인터뷰 전문. 인터뷰는 임경구 기자와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편집자주>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이석기, 돈키호테 식 영웅주의에 '실패한 신' 좇고 있어"

프레시안 : 정국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로 또 다시 격랑 속에 빠졌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남재희 : 영어에 '퀴사틱(quixotic)'이라는 단어가 있다. '돈키호테 같은'이란 뜻인데, 녹취록을 보면서 가장 먼저 이 단어가 떠올랐다.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를 떠든 것이다. 진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고, 돈키호테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만 늘어놨다. 동시에 여전히 북한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1950년대 초에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이란 책이 발간됐다. 앙드레 지드나 루이스 피셔 등 서양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인데, 한 마디로 공산주의가 '실패한 신'이라는 것이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공산주의가 실패한 체제란 사실은 더욱 명백해졌다. 그런데 이 자체를 인식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녹취록에 나온 이석기 의원 등의 말을 '평화 노력'으로 항변하려는 것 같다. 그 사람 입장에선 미국이 제국주의고, 북한이 민족주의라는 것 아닌가. 제국주의 침략을 막자는 것인데, 그래서 자신들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북한이 실패한 체제라는 인식없이 이런 얘기를 하면 문제가 생긴다. 북이 자주 세력이고 미국은 문제가 있으니 공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완전히 주사파 이론이 되는 것이다. 의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 해도, 이런 방식이라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남북이 정전 상태이고, 그렇다면 법에 안 걸릴 수 없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과 이석기 사태, 분리 대응해야"

프레시안 : 대선 개입 문제로 수세에 몰린 국가정보원이 일종의 '국면 전환용'으로 이 사건을 터트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당장 통합진보당 쪽은 "유신 시대에나 써먹던 용공 조작극"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남재희 : 이 사건을 국정원이 터트렸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그걸(범죄 혐의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그런 의구심은 국민들이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있으니 응당 나올 법 하다. 그런데 당장 나온 얘기만 보면 국정원을 나무랄 수도 없다. 아무리 시국 전환용의 의도가 있다고 해도, 이석기 일당의 언행을 보면 국정원으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어느 쪽이든 단정적으로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단순히 '국면 전환용'이라고 비판해 버리면, 무책임한 얘기가 될 수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이석기 사건을 분리해서 대응하고 다뤄야 한다.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내란음모죄가 33년 만에 부활한 셈인데, 내란음모죄의 적용을 놓고서도 논란이 많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적용할 수 있지만, 내란음모의 혐의 입증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앞으로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간에 치열한 논쟁이 있지 않겠나. 엄청난 법률 논쟁이 예고된 만큼 우리 재판사에서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수사가 아직 국정원 단계에 있는데, 빨리 검찰로 사건을 넘겨야 한다고 본다. 검찰은 소위 법률 마인드가 있지만, 국정원은 그게 없지 않나. 그래야 국민도 납득한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성숙한 법치국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건일수록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법치국가로서 손색이 없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무찌르자 공산당' 식의 논리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독재 체제 같은 인상을 우리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줄 수 있지 않겠나.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로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제도 정치를 하는 현역 의원이 헌법 외적 발상과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헌법 밖 진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보수 쪽에선 정당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 이 문제가 '이석기 분파'의 문제인지, 통합진보당 전체의 문제인지는 좀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수사 과정을 지켜봐야 하니 속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다만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정치 현실만 놓고 봐서는 통합진보당은 이제 어렵지 않겠나. 국민들 사이에선 이제 완전히 끝난 정당이 된 것 같다.

녹취록만 놓고 보면 이석기 의원 등이 돈키호테 같은 얘기를 영웅심에서 떠벌린 것 뿐, 이를 실천할 능력이나 준비를 갖춘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편으로는, 과거 운동권 중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분파와 학생운동을 했던 분파의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노동운동 출신들은 현실적으로 좌절도 많이 했고, 타협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런 황당한 소리는 잘 안 한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은 현실에 강하게 부딪혀 보거나 타협해 보거나 후퇴해본 경험이 적지 않나. 그래서 영웅 심리만 커진 것 같다. 지금 이석기 의원 등이 그런 부류인 것 같다. 이들을 처벌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대응을 성숙하고 세련되게, 21세기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이석기 사태 계기로 정치적 '순화' 과정 거쳐야"

프레시안 : 이번 사건으로 진보 정치의 입지가 더 줄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진보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도 같이 겨냥하고 있지 않나.

남재희 : 민주당까지 엮고 간다면 완전히 공안 정국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지금 정권 핵심부의 구성만 놓고 본다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시작해 공안 라인이 꽉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더 나가면 공안 정국으로 간다. 박근혜 정부가 그 점을 고민해야 한다.

딩장 새누리당 일부에선 노무현 시절 이석기 의원이 사면됐다는 이유만으로 문재인 의원의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구체적 근거가 없는 주장일 뿐이다. 그 얘기를 하려면 당시 사면자 명단과 절차, 사면 이유부터 구체적으로 규명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 대한 규명도 없이 단순히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할 수 없지 않나.

진보 진영은 이석기 세력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제 자신들이 환골탈태 해야 한다.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만 봐도 초기엔 맑시즘적인 색채가 강하다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극좌 노선에서 탈피했다. 나쁘게 평가하면 체제에 안주하는 정당이 된 셈인지만, 다른 쪽에서 생각하면 의회 정당으로의 탈바꿈 과정이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우리 진보 세력은 사실 그런 순화의 과정을 덜 걸쳤다. 이번 사건으로 받은 타격을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탈바꿈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朴 대통령, '국정원 개혁'으로 꼬인 정국 풀어야"

프레시안 :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로 장외 투쟁을 하고 있는 민주당도 좀 난처한 상황에 몰렸다.

남재희 : 김한길 대표가 굉장히 난처해진 셈인데, 나도 정치를 오래 했지만 내가 그 입장이어도 굉장한 난제일 것이다. 정권도 난국이고, 민주당도 난국이다. 국정원 정치 개입과 이석기 사건이 시기적으로 맞물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를 해결하는 데 있어선 두 문제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물론 정치는 정략의 게임이기 때문에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이 두 문제를 섞기를 바랄 것이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분리를 바랄 것이다. 양쪽의 정략 게임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국면인데, 국민들은 분리 쪽이 맞는 얘기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본다.

정권 입장에선 이 사안을 분리해서 볼 경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부각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분명하지만, 이게 대선에 얼만큼의 영향을 줬는지는 수치적으로 계산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으로선 정권의 정당성 문제가 걸린 셈이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이 저렇게 함구하면서 '나는 국정원으로부터 아무 도움 안 받았다', 이런 말이나 하고 있지 않나. 본인은 도와 달라고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도움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않나. 그런데 국정원더러 '셀프 개혁'해라? 이건 완전히 내빼는 것이다. 자칫하면 정권의 정당성에 흠이 가니까. 결국 국민의 신뢰 문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으면 잘 넘어갈 테고, 아니면 끝까지 문제가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편한 입장은 아니다.

민주당 김한길 체제도 참 난처한 상황이다. 이제 정기국회가 시작되는데 원외 투쟁만 계속할 경우 예산이나 정책, 입법 과정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일종의 딜레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권 쪽에서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는 수밖에 없다. 개혁은 제도 개혁과 아울러 남재준 원장 사퇴 등 인적 개혁을 포괄한다. 그래야 국민도 설득할 수 있고, 야당에게도 국회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 국정원의 '셀프 개혁'이 아닌 정권 차원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김한길 체제가 희생타를 쳐서라도 원내로 들어오지 않겠나.

양당 대표와 대통령의 3자 회담이 성사됐다면 어떻게든 타협이 됐을 것이다. 일단 회담이 열리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되지 일방적인 항복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에 흠이 안 가는 수준에서 국정원 개혁을 하고 야당에 원내 복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프레시안 : 한 때 타협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이석기 사태로 다시 꼬여버렸다.

남재희 : 결국 파워 게임이다. 여론의 싸움이다. 이석기 사건이 결과적으로 정국 전환용으로는 안성맞춤인 케이스가 됐다. 내가 김한길 대표여도 참 난처할 것 같은데, 김 대표가 예전에 <여자의 남자>라는 책을 쓰지 않았나. 이제 판가름 날 것이다. 김한길이 '여자의 남자'인지, 아니면 '진짜 남자'인지. (웃음)

"'공안 통치' 갈림길 선 박근혜 정부…이석기 사태 합리적 대처해야"

프레시안 :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60%를 넘는 등 높은 상황인데, 정권 정통성 문제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
박 대통령의 고집이 참 센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이석기 사태가 공안정국으로 이어진다면 불행해 질 것이다. 우리가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금 상황을 공안정국으로 몰고 간다면 국민적 저항이 클 것이다.

프레시안 : 이석기 체포만을 놓고 '공안 정국'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굵직한 사건을 살펴보면 항상 그 중심에 국정원이 있었다. 선진 사회에서 정보기관이 앞장서 임기 초 6개월을 쥐락펴락 하는 것이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남재희 : '육법당'이라는 말이 생긴 게 전두환 정권 때 일이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정국을 주무른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였다. 소위 말해 군인과 검찰이 다 해먹었다는 얘긴데, 공안정국이 다시 조성된다면 이런 육법당의 재판이 될 것이다. 현재 이미 정권의 인적 배치는 공안 정국에 이미 가까이 와 있다. 지금의 정국을 공안정국으로 몰고 가느냐, 아니냐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공안정국으로 가는 길이다.

"정부 출범 6개월…남북관계는 평균점, 인사·노동은 낙제점"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았다.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린다면?

남재희 : 사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박근혜 정부 6개월을 속 시원하게 판단하기는 좀 이른 것 같다. 이 6개월 평가의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시점이 지금 국면인 것 같다. 이석기 사건 이후 정권이 공안 정국을 조성할 것이냐, 아니냐가 가장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다.

다만 이 점을 제쳐두고 평가하자면, 새 정부 이후 시대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 인사 난맥상이 계속되다가 이제야 인사가 비교적 안정이 됐고, 선거 때 실컷 써먹은 경제민주화는 행방불명이 됐다. 복지와 증세 문제에서 여전히 결단을 못 내렸다. 복지를 하겠다고 했으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그 결단을 대통령이 못 내리고 있다.

최근 세법 개정안 논란을 거쳐 중산층 증세 방침이 다시 후퇴했는데,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 증세해야 한다.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특히 부자들에게 감세한 것들을 다 원상회복시키고 증세해야 복지라는 것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증세는 안 하면서 복지를 하려고 하니까 모든 게 다 꼬이는 것이다.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통령의 대담함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인 측면을 본다면 새누리당을 너무 경시하는 것 같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적당히 견제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너무 경시하는 것 같다. 여야 대표의 정국 수습책도 완전히 깔아 뭉개지 않았나. 이렇게는 어렵다. 집권당을 견제하긴 해야 하지만 적당히 감싸 안기도 해야 한다.

얼마 전 <한겨레> 사설에 박 대통령의 '구경꾼 화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을 나중에 수정했는데, 사실 애초 세제 개편안도 대통령과 다 상의해서 만든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결과적으로 수정하면서 마치 남의 얘기하듯이 구경꾼처럼 말한다. 그런 태도도 문제가 있다.

프레시안 : 경제나 남북관계는 어떻게 보나?

남재희 : 창조경제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일단 테마를 걸어 놓으면 알맹이가 생길 수 있다. 새마을 운동도 처음엔 공허한 얘기였는데, 세월이 지나니 알맹이가 채워지고 성공 사례가 되지 않았나. 창조경제 역시 방향성 자체는 괜찮으니 앞으로 노력한다면 알맹이가 채워질 것이라고 본다.

남북관계는 기대 만큼은 못했지만 전임 정권과 비교한다면 평균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고, 조금씩 개선되지 않았나. 평균점은 얻었다고 본다.

다만 노동문제는 실망스럽다. 한 예로 노사정위원장에 김대환 씨를 임명했다. 참여정부 인사를 임명한 것을 파격적이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반발하는 인물이다. 민주노총이야 과거부터 노사정위원회를 보이콧 해왔지만, 한국노총까지 반발하는 사람을 위원장에 앉힌 것 자체가 일종의 '노동계 기강 잡기'로 보인다. 역대 노사정위원장 중 한국노총까지 거부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특히 노사정위원회는 3자 협의체이자 일종의 노동자와의 대화 기구 아닌가. 행정 기구인 노동부와 다르다. 그런데 한국노총까지 반발하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히고, 노사정위원회의 노동계 (참여) 비중까지 낮추는 것 자체가 노동계 손 보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결국 노동 문제에 있어선 강성으로 가겠다는 의지인 것 같은데, 이런 방향은 안 된다. 뉴딜 정책이 왜 성공했나.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이 노조의 힘을 키워준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 대다수가 결국 임금 생활자인데, 이런 식은 곤란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또 소위 육법당, 공안 세력이 정부 요직을 차지한 것 역시 박정희 시대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아직 박근혜 정부가 그 쪽으로 방향을 틀진 않았지만, 인사만 봤을 땐 불안하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 6개월을 평가한다면 큰 실책은 없었지만 새 시대를 열었냐는 면에선 변화가 없었다. 국정원 개혁 문제나 이석기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안 정국으로 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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