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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임동원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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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학규·임동원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좌담]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 필요한가?
<프레시안>은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과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의 좌담을 마련했다. 지난 16일 손 상임고문이 서울 외신기자클럼 기자회견에서 제시했던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그 실현 가능성을 살펴보는 동시에 올해 대선을 통해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추진할 대북정책의 방향을 논의하고자 함이다.

손 상임고문은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한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현재 보수층이 북한 붕괴를 전체로 흡수통일론을 내놓고 있지만,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그 동안 '사실상의 통일'로 가기 위한 로드맵만 강조했을 뿐 통일된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 미래상이 없었다는 점. 둘째 중국의 국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동북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미래 통일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양해와 인정이 필수적이며,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이 그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전 장관은 한반도 중립화 통일 방안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등의 중립국 사례와 한국의 현실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현재 인구규모나 경제적 위치는 이미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고, 통일된 한반도의 위상은 그보다 더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약소국의 자위책인 중립화를 한국이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에서 균형을 취하는 중립주의를 표방하면서, 적절한 자위력을 갖춘 평화애호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임 전 장관의 지적에 대해 손 상임고문은 자신이 주창한 중립화 통일방안의 핵심은 과거 자본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이 대치했던 시절의 중립화가 아닌 '미래의 확고한 지향점'으로서의 성격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단절됐던 남북 화해협력을 복원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통일한반도의 명확한 미래상을 염두에 두고 중랍화 통일방안에 대한 고민을 병행한다면 주변국들의 이해와 신뢰를 얻어 통일을 가속화 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날 좌담의 전문이다.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고, 옵서버로 자리를 함께한 박순성 동국대 교수가 몇 마디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편집자>


▲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프레시안(최형락)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 왜 필요한가?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한 게 남북관계 뿐은 아니라고 한다. 민주주의, 민생 모두 유린 당하고 후퇴했다. 어쨌거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손학규 상임고문이 지난 월요일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이라는 대담한 제안을 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번에 대통령에 되려는 사람은 1971년 김대중 후보에 필적한 만한, 남북관계에 관한 대담한 제안을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상임고문이 주창한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이 그 대담한 제안이 될 수도 있겠다. 일단 중립화 통일방안이 뭔지, 그리고 왜 필요한 것인지를 묻고 싶다. 전해들은 첫 반응으로는 '약간은 난데없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더 나아가 박왕자 씨 피살로 인한 금강산관광 중단에서부터 천안함, 연평도 사건까지 얽혀 복잡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새 정부에서는 어떤 대북정책을 펴야 할지 보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눠볼까 한다. 먼저 손 상임고문에게서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

손학규: 크게는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왔던 화해협력 정책, 나아가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가능토록 하기 위한 장기적 대책으로 중립화 통일방안을 얘기할 수 있겠다. 화해협력 정책은 교류협력·남북 경제공동체·평화체제·남북연합 등 6.15 공동선언의 정신이고 또 우리의 현재 통일방안이지만, 이를 넘어서 통일된 한반도의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화해협력과 평화체제·남북연합을 가능케 하는 장기적인 한반도 통일방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진보진영에서는 1989년에 마련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통일 방안이었고 그 연장·발전이 6.15, 10.4 선언이었다. 3단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마지막 단계로 '완성된 통일국가', 김대중 대통령이 제시한 3단계 통일방안의 마지막 단계인 완전통일이 (통일의 개념으로) 제시가 되어 있지만, 그 동안 교류협력과 경제공동체, 평화체제라는 '사실상 통일'을 이루는 것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목표가 설정됐었다.

거꾸로 보수 측에서는 최근 들어, 특히 이명박정부 이후 흡수통일론, 북한정권 붕괴론을 바탕으로 하는 통일론을 적극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마치 통일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남북연합 후의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사실상의 통일과 완전한 통일 사이의 선후관계를 고려할 필요는 있지 않나.

손학규: 사실상의 통일이 있고, 그게 실현가능하다면 법적·제도적 통일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교류협력과 공동체 실현을 저해할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벌써 9.19 공동선언이 2005년에 있었고, 이후 7년이 지났는데 핵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이 2차례 있었으며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헌법까지 바꿨다. 또 남북화해협력정책은 핵문제 때문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또 그 뒤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빌미로 5.24 조치를 통해 북한과 단절하고 제재와 압박만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리고 여기에 미국이 보조를 맞췄다. 6자회담을 연다고 하면서 진전이 없었고, 금년 초만 하더라고 뉴욕 세미나, 베이징(北京) 고위급 회담을 통해 뭔가 되나 싶다가도 안 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도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린 상태에서 효과적이지 못했다. 중국이 그렇다고 해서 핵국가가 된 북한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불편하고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중국이 안심할 수 있는 한반도 미래 그림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변화가 함께 이루어지는 속에서 남한도 변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화가 재개되고, 교류협력이 활발히 되고, 경제공동체·평화체제로까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미래 한반도의 통일한국이 주변국 어디에도 위협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더구나 최근 푸틴의 러시아가 동방정책으로 극동진출을 적극 추구하고 있고, 한미일 동맹관계는 벌써부터 강화되는 가운데 한일 군사협정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상황이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훈련을 같이 하는 등 한반도가 다시 분쟁의 핵심 지역이 되고 있다.

우리가 장기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주변국에 변화의 계기를 주자는 것이다.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은 분명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고, 우리의 기본적인 전략 목표인 화해협력·경제공동체·평화체제·남북연합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이를 이루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중립화 통일방안을 다음 정권에서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을 재개하고 10.4 선언을 이행하면서 평화체제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중립화 통일방안의 한계: 한국은 약소국인가?

프레시안: 교착된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 장래 한반도의 밑그림을 보여줌으로써 풀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중립화라는 의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도 나왔던 개념이기도 하고, 중립이라고 하면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대립에서 중립이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됐는데 사회주의 진영이 사라진 지금, 현재의 중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손학규: 이념 차원의 중립으로 말하면 그렇겠지만, 실제 중립국가라고 하는 차원에서의 중립화는 역사적으로 봐도 군사적인 중립이지 이념적 중립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에 4개국이 주둔했는데 물어나면서 군사적 중립지대로 남았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경제· 사회체제는 시장주의 아닌가. 북유럽의 복지국가도 정치적로는 민주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경제도 시장을 바탕으로 한 복지다.

중립화 통일방안이라고 하면 자칫 '냉전시대의 유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다. 당시 동서 냉전,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서 벗어나자는 게 당시의 중립화 통일방안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과 같이 교류협력이나 개혁개방, 경제공동체 건설이 배제된 상태라 사실 현실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6.15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교류 경험을 가지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과 같은 구체적인 협력의 실제를 보여주고, 북한 사회는 변화 내지 부분적 개방의 단초를 보여줬다. 또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북한 사회와 인민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 그런 커다란 변화 위에서 화해협력 및 남북연합 다음 단계로서의 중립화 통일방안이기 때문에 냉전시대의 중립화와는 다른 것이다.

프레시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과 핵 문제 해결,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성립이 주가 되는데, 이를 위해 중립화 통일방안이라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보다는 북한과의 교류를 전면 금지한 5.24 조치의 철회와 같은 실질적 개선이 급선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임동원 전 장관은 중립화 통일방안의 효용성, 또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좋은 방책으로서의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해 어떻게 보나.

▲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임동원: 우리가 중립화 통일을 할 수 있었던 호기는 해방공간에서 찾아왔다고 할 수 잇다.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는 이를 가능케 했고, 한반도는 불가능해졌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과정에서 침략자였던 일본과 독일에 각각 병합됐던 조선과 오스트리아의 해결 방법은 '전승 국가들의 신탁통치를 통해 연합국에서 일정 기간 관리하고 지원해서 각 지역 사람들의 자치정부를 세워 적당한 시기에 통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받아들여 좌우가 합작한 연합정부를 수립했고, 10년 뒤 영세중립국을 선언할 때 주둔했던 네 나라가 오스트리아 독립 조약을 체결해 중립국 선언을 보장했다.

그런데 한반도의 경우 조선인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데 실패하고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중립은커녕 전쟁으로 갔다. 이후 냉전시대에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첨단 기지가 되는 과정을 겪었다. 좋은 때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립화 통일방안의 현실성과 관련해서 생각할 점이 있다.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각축장이 됐다. 따라서 우리가 약소국일 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관념이 있어서 중립화 개념이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었다. 여기에 냉전을 겪었고, 다가오는 시대에는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미국은 계속해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미중의 협조와 갈등관계에서 우리가 살아남아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 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영세중립국이 이상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이겠느냐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중립화와 관련해서는 중립주의와 영세중립국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중립주의는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제관계에서 대립하는 양대 진영의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동맹을 맺지 않고, 정치외교적 중립을 고수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 개념은 일방적이다. 다른 국가의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개념이다. 과거 비동맹 정치라는 정책을 중립주의로 볼 수 있는데 다른 국가들이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는 한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영세중립국은 다르다. 영세 중립국은 세 나라가 있다. 스위스는 1815년 이후 20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데 당시 비엔나 회의에서 강대국들이 조약 체결을 통해 중립을 보장함으로써 가능했다. 오스트리아는 주지했듯 독일에 합병했다가 2차대전 후 신탁통치 10년 과정을 거쳐서 영세중립국을 선언했고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던 4개 국가와 각각 조약을 체결해 중립을 보장받았다. 다른 나라들이 보장해주지 않는 한 영세 중립국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영세 중립국으로 라오스가 있는데, 1962년 제네바 회의에서 13개 국가가 보장해 영세 중립국이 됐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경우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하나는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관련국들이 이를 동의·승인해주겠느냐는 문제다. 물론 먼저 민족의 통합된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관련국들의 조약 체결을 통한 보장이 필요하다. 아마도 중국은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를 원하는 입장이라 긍정적으로 반응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을 의식해서 동북아 전략거점을 계속 확보하려고 하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동의해주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그 의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지하고, 동맹관계를 폐지하고, 주한미군도 철수하고, 군사지기도 없애는 것이 전제다. 그래야 영세 중립국이 되는데 30~40년 내에 그런 시기가 올 것 같지 않다.

더구나 그런 변화의 과정 속에서 친미 성향의 우리 국민들이 동조하겠느냐도 문제다. 중립화 통일이라는 말을 꺼내면 '미군 철수하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반응부터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심각히 고려할 필요가 있고 극복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자체가 먼 훗날의 얘기다.

두 번째 문제는 영세중립국은 약소국의 자기방어책이라는 점이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라오스 모두 인구가 1000만이 안 되는 나라다. 그러나 통일한국은 인구 8000만의 큰 나라다. 그래서 세계 인구 순위로 봐도 15~20위 안에 든다. 경제 규모도 남한만 해도 무역 규모가 10위권에 가깝다. 약소국, 즉 (고래 등에 끼인) 새우가 아니고 고래 사이에 끼인 돌고래 정도는 된다. 머리가 좋은 돌고래라는 얘기는 고래 사이에서 안정자(stabilizer),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해 있고, 앞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한 것은 전향적인 발상이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통일이 될 때 상당히 큰 규모의 나라가 약소국의 자위체제인 중립국으로 남아 있으려고 노력하는 게 맞는가, 또 주변국들은 이를 승인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만 중립'주의'를 지향할 수는 있다.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체제를 구성해 동북아의 평화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받고 통일을 이룩한다는 개념이다.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협력체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게 통일을 촉진하는 길이라고 하는데 그 틀 안에서 적정한 자위력을 가진 평화애호국가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상임고문이 한 말도 같은 의미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먼 훗날이 되면 중립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올지 모르겠는데, 현재 상황에서 가시적 미래를 생각할 때는 급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5년~10년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우선 남북연합을 구성해 남북이 힘을 합치고 평화통일 과정에서 당면하는 어려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기구를 만들어 추진하는 것이 급하다. 그 다음에 평화체제를 만들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어떻게 통일을 할지는 그때 가서 판단해야하지 않겠나.

그래도 '중립화'가 필요한 이유는…

프레시안: 손 상임고문은 현재의 통일 방안으로는 북핵 문제나 안보 불안의 근원적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남북연합이 되도 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니 중립화 통일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손학규: 기존의 남북 통일방안과 나의 중립화 통일방안은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남북 통일방안은 그 다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적 통일방안이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중립화 통일방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남북연합 단계로 가서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다고 해서 한반도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고, 그에 답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일례로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 이상의 자기안보체제가 없다. 교류협력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할 수 있지만, 6.15 공동선언 이후 교류협력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다. 분단된 상태에서는 자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내적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지만 안보·국방과 관련해서는 중국으로부터 일정하게 자주적 노선을 걷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그러한 북한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임 전 장관의 말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중립화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중국이 한반도 통일, 북한의 개혁·개방에 반대하지 않는 명분을 우리가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은 완충지대가 필요하지만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는 당연히 쉬운 답이 없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대해 우리는 우리대로 설득할 자체가 필요하다. 남한에 미국이 군사적 대치 관계에서 주둔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까. 이미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얘기할 때 대북 억지군으로서의 미군 역할보다 기동군으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고, 미국 입장에서 그런 전환을 할 때에도 기동군의 기지로서 한국의 역할은 대단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군 주둔으로 인해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되면 한반도는 분쟁지역이 될 텐데 '미국이라는 막강한 나라가 있다'라고만 여길 것인가. 미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도 미국이 동북아 평화에 조정자, 균형자 역할을 하는 점은 인정한다. 동북아에서 나가라는 게 아니라 통일안국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그러면서 군사적 비용은 줄이는 길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을 때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 개인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기능에 국한된 미군의 주둔은 중국이나 북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한반도가 중국, 미국, 일본 입장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인데, 지금은 북한과 남한이라는 2개의 완충역할이 있다. 국민이 안보 긴장 속에 경제적 기회도 놓치고 있다. 아무리 교류협력을 해도 언제 단절되고 폐쇄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다. 항구적으로 평화롭게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상정하자는 얘기다. 그걸 상정하는 게 교류협력에 해가 된다면 그만둬야 하지만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탈북자 문제 및 그에 따른 인권 논란 등 끊임 없이 나오는 문제 대비하는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우리는 흡수통일론과 북한 붕괴론을 배격하지만 북한이 발전을 함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위기대응계힉)을 장기적으로, 그랜드 플랜으로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1970년대 제안한 4대국 안전보장론이다. 바로 중립화 통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이 완전한 통일로서의 구체적인 그림은 그린 것은 아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역시 완성된 통일을 그리지 않고 있다. 그 그림을 가능한데로 그려보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이 북핵 문제이라고 할 수 있다. 중립화 통일방안이라는 큰 그림과 이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동의가 있어야 북한의 안보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가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손학규: 평화체제 자체가 북한 측에서 봤을 때 현재로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립화 통일방안에서 주한미군의 지위를 논하는 것과 평화체제에서 그 위상과 존재를 논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미국이 평화체제는 받이들일 수 있는가, 반대로 주한미군 문제가 베재된 상태의 평화체제를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북핵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프레시안: 손 고문께서는 남북연합 차원에서도 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는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과연 중립화 방안이 필요한지에 대해 임 전 장관의 견해를 듣고 싶다.

임동원: 북핵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됐다. 그런데 그 해결방안은 미국과, 또 6자 간에 이미 제시가 되어 있다. 실천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는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 같은 생각을 하면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임기 내에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 못 했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이게 본질이다.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정상화할 때,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보장해줄 때 해결될 수 있다. 내 주장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 간에 합의한 것이고 6자회담에서 합의한 것이다.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의 골자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한다, 맞바꾼다는 것이다. 6자회담의 합의 내용도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한다는 것, 그리고 부수적 사안에 대해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간다는 게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북핵 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북한 사이 적대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 북핵 문제에 대한 이해가 왜곡돼 마치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됐다. 그게 아니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의 대전제이고, 북핵은 우리에게 안보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해결의 핵심은 미국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다. 우리는 이를 돕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관계 개선을 어떻게 촉진시키느냐가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이지, 북한에 핵을 폐기하라고 해서 압박과 제재만 가하니까 역효과만 나서 핵실험하고 핵 능력만 강화한 것이다.

핵 문제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도 이렇게 이해하는데 우리만 왜곡해서 이해하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남북관계를 개선·발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개선·촉진시켜 핵을 폐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핵 문제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런데 지금은 잘못됐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통해서 북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계로 개선·발전시켜나간다고 합의하고 이정표를 세웠다. 그리고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북미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마련하려고 한 것이었고 비록 실현은 안 됐지만 이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우리 정부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게 북핵 문제 해결의 첩경이다. 얼마 전 스탠포드대에 가서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는데 '다음 미국 대통령 밑에서는 한반도 정책이 바뀔 것 같느냐'고 물으니 그들의 결론은 '그건 한국에 달려있다'라는 것이었다. 한국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가자'라고 하면 미국은 쫓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대중 정부 때 경험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금 정부도 이렇게 가지 않고 저렇게 가자고 하니 가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지적에 충격을 받았는데 정답인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손학규: 전적으로 공감한다. 핵 문제의 본질은 북미 간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하는 것이다. 미국도 북한과의 관계를 꼭 적대적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있을 것이고, 민주당 진영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다. 북한도 북한대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 9.19 선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의 안전 보장까지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는 잘 풀리지 않았다.

사실상의 통일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그 다음 단계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다. 북중관계를 보면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통일된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도 안심시키고, 그럼으로써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에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화가 되고 협력이 되고 분단이 지속되는 한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겠는가.

프레시안: 손 상임고문의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손학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통일한국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분단 상태에서의 균형자론을 얘기한 것이다. 통일한국은 인구나 경제규모로 봐도 영국과 프랑스, 독일처럼 최강의 패권국(미국) 바로 밑에 있는 수준의 국가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안정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 주둔해서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을 유지하는 것과, 통일한국이라는 분쟁이 없는 지대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이익이 될 것인가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한다.

통일의 그림을 그리자

프레시안: 최근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문도 있었지만, 미국은 북한을 미사일방어체제(MD) 추진의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과연 미국이 평화애호국으로 안정자 역할에 만족하는 것인지, 북한을 분쟁의 빌미로서 놔두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데 미국이 중립화 통일방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손학규: 미국 입장에서는 그런 점을 빌미로 해서 군이나 군수산업계에서는 군비강화를 추구할 것이다. 그럴 명분을 없애주는 차원에서라도 중립화 통일이 필요하고, 최소한 북한을 겨냥한 MD를 추진할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한 국내 보수층의 반발도 예상되는데.

손학규: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을 타파하지 않으면 무슨 발전이 있겠나. 보수가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퍼주기'라고 반발 안 했나? 중립화 통일론의 구체적 내용이 햇볕정책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 교류협혁과 경제공동체, 평화체제 전환의 길로 가면 통일이 되는 것인데, 중국이 그에 대해 위협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동원: 설득해야겠지만 힘들 것이다. 중립화 통일방안 문제는 남북관계, 한반도 문제가 5년이고 10년이고 지금보다 진전된 후에 제기되는 것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가 싶은데 (손 상임고문이) 일찍 제기한 셈이다. 통일 문제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배울 점이 많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북한의 주권자인 북한 주민들이 선택을 해 남북이 협상을 해서 통일되는 수밖에 없다. 독일은 동독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일으켜서 때가 왔을 때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정부를 세워서 협상을 해 통일을 했다. 우리도 결국은 그런 식으로 되지 않을까 싶고, 그 이외에는 평화통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통일 이후 미국이나 중국에 기울지 않고 중립적 입장에서 번영 발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은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구성해 미국과 중국 모두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중립을 지향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미중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찾아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손학규: 독일 통일의 경우 소련이 힘이 빠져 해체돼 가능해졌다고 본다. 소련이 미소 양극 체제에서 강대한 상태 그대로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제적 힘의 관계로 동독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동북아는 현재 중국이 나날이 커지면서 군사 강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관계는 불가피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2001년 6.15 선언 당시보다 중국의 힘이 더 커지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됐는데, 교류협력 발전으로 평화체제를 이루기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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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더 원대한 구상이 필요하다는 건가

손학규: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국이 되는 중국으로서는 코앞에서 전투력으로 무장한 미군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주한미군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고, 주한미군이 계속 통일한국에 주둔했을 때 미국도 중국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역할을 그려나가야 평화협정으로 전환이 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포용정책의 최종 단계가 이 부분이지만, 이 부분을 (미리) 설정함으로써 포용정책의 진전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돌파구 만들려면…

프레시안: 현재 남북관계가 다 막혀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물꼬를 터야 한다. 많은 이들이 첫번째로 5.24 조치 철폐를 말하고 있다. 새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임동원: 우리가 통일문제를 논할 때 지금까지는 우리가 이룩할 통일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지금 질문은 방법론인데, 당장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늘 3가지 답이 이야기되어 왔다. 손 상임고문은 지금까지 통일국가의 모습에 대한 정의가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첫째로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 둘째로는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번영, 발전하는 나라, 세 번째는 적정한 자위력을 갖춘 평화애호국가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나라다. 여기에 추가해서 손 상임고문이 제기한 중립화 통일방안이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의 번영이라는 개념이다.

지금 남과 북은 냉전 이후 20여 년 동안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켜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왔다. 그 가운데 지혜를 모아 어렵게 합의한 것이 1990년 남북기본합의서이고, 2000년대 들어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 10.4 선언이 나왔다. 이 합의들이 결코 쉬운 합의가 아님에도 남과 북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을 통해 실천도 했다. 많이는 못하고 5대 중점 사업을 정해 해 왔는데 10.4 선언에서는 사업을 40가지로 확대하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역주행 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내세운 통일방안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이는 1989년에 채택된 뒤 20년 동안, 정권이 5번 바뀌는 동안 변함없이 유지된,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통일방안이다. 1단계는 화해협력단계, 2단계는 화해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남북연합단계, 3단계는 완전통일단계로 나뉜다.

그런데 20년 동안 화해협력, 신뢰구축에는 합의해 놓고 실천을 못했다. 6.15 공동선언 이후 5개 분야에서 실천해 보면서 신뢰가 어느 정도 조성됐지만 20년 동안 1단계를 졸업을 못한 것이다. 이제는 남북연합 단계로 들어가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해야 할 일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준수하고 이행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길은 이미 제시가 되어 있다. 그것도 못하면서 어떻게 새 일을 하나. 궤도에 재진입한 후 화해협력을 촉진시켜서 깨진 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부터 개성공단 확대,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를 이명박 정부 이전 단계로 원상회복시키는 노력이 몇 년간 계속되면서 2단계, 즉 국가연합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국가연합 단계에 진입만 달성하면 대성공이다. 여기에 중요한 과제가 몇 가지 있다.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서 경제통합이 가능한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게 하나다. 그리고 군비통제다. 군사적 신뢰조치 구축과 군축을 통해 평화체제를 굳힐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5년~10년 내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유럽을 봐도 20년이 걸렸다. 세 번째로 사회문화 공동체를 통해 동질성을 굳혀나가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네 번째로는 반통일적 법규를 폐지하면서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법규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법규가 김대중 정부 때 4가지였는데 계속 늘어가는 것이 통일로 가는 것이다. 그 다음이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군축, 북미관계 정상화, 비핵화 등이 어느 정도 진전되어야 한다. 여섯 번째로는 중립화 통일이든 어떤 통일이든 통일을 위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6가지가 남북관계에서 해야 할 6대 과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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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실천하기 위한 공통 인식이 있다. 화해협력 시대의 기본 장전은 남북기본합의서이고, 6.15 공동선언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실천하자는 합의, 10.4 선언은 이를 확대하자는 합의다. 국가연합으로 들어갈 때는 남북연합헌장을 제정해야 한다. 남북국가연합을 어떻게 구성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담는 것이다. 그 안에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이 들어갈 수 있겠다. 그리고 완전통일단계로 들어갈 땐 통일헌법이다. 이 3가지 기본문서를 갖게 될 것인데, 새 정부 기간 내에 남북관계를 원상회복 하고 신뢰를 조성해서 남북연합단계로 들어가야겠다고 추진하는 게 가능하리라 본다. 끝나면 연합단계가 통일은 안 됐지만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서로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이후 10~20년 뒤 완전통일을 들어갈 수 있다면 중립화 통일방안 등이 나올 수 있겠다.

프레시안: 큰 틀에서 화해협력 단계를 졸업하고 국가연합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밑그림을 제시했다. 손 상임고문은 구상하고 있는 게 있나.

손학규: 얼마 전 외신기자클럽에서 화해협력으로 들어가 남북연합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연합 단계의 핵심 과제는 임 전 장관 말대로 군비통제와 경제공동체, 사회문화 공동체, 평화체제, 법제도적 정비를 통한 환경조성이다. 다음 정부는 당연히 이를 추진할 것이다. 막혀 있던 남북의 길부터 뚫고, 금강산을 열고, 2000만 평을 준비해 놓고도 절반도 못 채운 개성공단을 늘리는 것이다.

화해협력만 되면 북한은 중국보다는 한국의 투자를 더 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 5. 24 조치를 폐기하고 인도적 조치, 식량지원을 재개해 기본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소위 상호주의, 비핵개방3000과 같은 메시지로는 안 된다. 북핵문제 해결 위한 선결조건이 북미관계 개선인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미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하는 것을 막은 측면이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함께 가자고 주도하려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해 그동안 어떤 평가를 받았나?

손학규: 큰 거부는 없는 것 같다. 중립화 통일방안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내용을 보면 중립화라는 개념이 낡은 얘기도 아니고, 진행하고 있는 화해협력 정책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장기적 환경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눈앞에 있는 것도 어려운데 먼 얘기를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모내기를 하다가 보면 손으로 안 하고 이양기로 하는데 옆에 막대기 하나가 붙어있다. 그 길만 보고 가라는 것이다. 그것만 보고 끝까지 가면 비뚤비뚤하다. 그런데 막대기를 보지 않고, 맞은 편 한 점을 목표로 정하고 가면 땅이 울퉁불퉁해서 뒤뚱거리기도 하지만 나중에 보면 줄이 곧게 나 있다. 중립화 통일방안이나 통일 한국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는 것도 같은 취지다. 조금 더 위험을 감수하고 얘기하면 북한에 불안한 사태가 왔다고 했을 때 한반도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없으면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잡고 있으려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정책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통합된 한반도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중국도 유연하게 갈 수 있다. 평화체제로의 전환과정에 주한미군의 위치가 문제가 될 것인데 큰 그림이 있으면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 박순성 동국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순성: 올해 대선은 소위 민주진영과 수구적이고 반민주적 세력의 새로운 선거라고 생각된다. 민주진보 진영은 과거 민주민족 진영이라고 불렸는데, 중립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민족이란 문제를 새롭게 상기시킨다. 낡은 단어이지만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 중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부상, 그리고 탈냉전이었음에도 사실은 탈냉전이 아니었던 미국 중심의 패권적 상황에서 이에 맞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화두를 던졌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손 고문께서 이양기 얘기를 했는데, 1980년대 후반 이후 통일문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인 경험도 했지만 김영삼, 이명박 정부 때처럼 부정적 경험도 했다. 부정적 경험을 통해 후퇴된 상태이지만, 우리가 먼 목표를 보고 갈 수 있는 노하우를 보여줬다고 본다. 두 분의 노하우가 실천된다면 5년이 짧아 보이지만 압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산업화도 압축적이고 민주화도 압축적으로 했지만 화해협력도 압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총평을 하고 싶다.

프레시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큰 꿈을 꾸자, 남한의 주도가 중요하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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