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빨갱이 사냥' 시대, 노무현처럼 '빨갱이'가 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빨갱이 사냥' 시대, 노무현처럼 '빨갱이'가 되자"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모든 노무현에게 보내는 편지
I. 넬슨 만델라와 노무현

아프리카 대륙 남단 끄트머리에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남아프리카의 국민을 구성하는 백인과 흑인 그리고 유색인과 수많은 남아프리카 원주민 종족뿐 아니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영국의 찰스 황태자, 그리고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를 비롯한 전 세계 대표들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만델라 대통령의 장례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가 지구촌 세계의 진실과 화해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의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까지 못하게 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침울한 장례식을 기억한다. 화해와 용서를 주장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했던 두 대통령의 장례식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대한민국에서 화해를 요청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구성원들로 거듭났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에 수많은 아프리카너 백인 법조인들, 교수 지식인들, 국가정보국과 경찰, 그리고 군인을 포함한 국가공무원들이 스스로 반성을 하고, '진실과 화해위원회(TRC)'에 출석해 역사적 사실을 진술하고, 마침내 용서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용서를 받은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을 용서해준 것에 대하여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달랐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하여 1980년의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반성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해주었다. 어찌 그들뿐인가? 박정희 유신정권과 일제식민지 치하의 제국주의 권력, 그리고 그들 밑에서 법정권력을 휘두르던 법조인들, 교육 권력을 휘두르던 교수 지식인들, 그리고 폭력과 이데올로기 권력을 휘두르던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군인과 경찰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반성을 하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용서를 비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은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단편적인 사람을 통해 그들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전혀 용서도 빌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정으로 스스로 반성을 하고, 잘못을 하였다고 용서를 비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변호인>에서 그렇게 스스로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이 바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이다. 서울대나 연대나 고대, 혹은 부산대나 동아대도 나오지 않은 고졸 출신의 변호사, 송우석은 지난 20세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밑에서 대졸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판사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개인적 능력을 믿고 승승장구하는 평범한 변호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자신들이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들, 혹은 서울대나 연대나 고대 출신의 변호사들은 더더욱 그렇다.

II. 평범한 사람들과 특별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갖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구성하고, 자식을 키운다. 그런데 자신의 일을 갖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구성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에는 일정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책임감을 돈으로 측정하는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사랑, 내가 구성하고 있는 가족, 그리고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자식들을 위하여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 변호사 송우석(왼쪽), 그리고 국밥집 아줌마 최순애(오른쪽)와 그녀의 아들 진우(가운데) ⓒ위더스필름

<변호인>에 등장하는 고졸 출신의 송우석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것을 보고 당장 먹고 살아야만 하는 돈 때문에 포기한 사법고시 시험을 다시 시작한다. 그것은 단골 국밥집 아줌마 최순애(김영애 분) 씨의 외상 친절을 36계 도망 행으로 죄를 지어 마련한 돈을 가지고, 사법고시 응시를 위한 서적을 다시 구입해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단골 국밥집 아줌마의 친절을 원수로 갚았다는 죄를 반성하고 정말로 용서를 빌기 위하여 7년 후에 다시 그 국밥집을 찾는다. 국밥집 아줌마의 용서와 화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변호사>에 등장하는 국밥집 아줌마처럼 지난 350년 동안 서구 유럽의 백인 이주민들이 그들에게 행한 인종차별과 폭력을 용서해준 것은 <변호사>에 등장하는 송우석처럼 남아프리카의 평범한 백인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정말로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밥집 아줌마와 송우석만이 아니라 최순애 씨 가족과 송우석의 가족이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갖게 된다.

송우석 변호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직업)에 대한 책임도 진다. 판사를 스스로 포기한 송우석은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자기 자신과 부인과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책임을 수행한다. 그것은 또한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를 만든 국밥집 아줌마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세상엔 돈으로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송우석보다 더 평범한 국밥집 아줌마와 그녀의 아들, 진우(시완 분)와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와 연대, 혹은 고대 등의 대학 출신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평범한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는 송우석은 그것을 진심으로 알지 못한다. 그는 또한 서울대나 연대, 혹은 고대 출신의 변호사나 판사, 혹은 검사들이 너무나도 잘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 등기나 세금 등의 사소한 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송우석 변호사처럼 평범한 법조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서울대나 연대, 혹은 고대를 졸업하였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서울대나 연대, 혹은 고대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두환이나 박정희처럼 자신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검사나 판사, 혹은 결찰서장이나 치안감, 혹은 보안사 대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국밥집 아줌마나 그녀의 아들, 혹은 노동판에서 일했거나 고졸 출신의 송우석 변호사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 경찰 차동영을 비롯한 판사와 강 검사는 변호사 송우석과 국밥집 아줌마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위더스필름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송우석 변호사처럼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사랑,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자식을 위한 책임으로 검사나 판사, 혹은 경찰서장이나 치안감, 혹은 보안사 대령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이데올로기나 돈의 노예로 전락해 그들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명백하다. 1981년 당시의 평범한 대학생들이나 평범한 시민들은 전두환 군사 쿠데타가 국가 범죄이고 무지막지한 폭력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반면, 특별한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도 전두환처럼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근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특별한 사람들의 너무나도 커다란 차이를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전두환 정권의 '부림사건(당시의 공안당국이 부산 지역 독서모임의 학생 등 22명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용공조작사건)'을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송우석 변호사는 국밥집 아줌마에 대한 고마움의 책임으로 그녀의 아들이 감금돼 있는 구치소를 찾는다. 온갖 고문과 폭행으로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국밥집 아줌마의 아들 진우를 보면서, 송우석은 1981년 당시의 대한민국이 평범한 나라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독재, 파쇼 국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책임이 뒤따르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림사건' 재판 과정은 근대 대한민국의 구성원들 속에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서민과 지식인들을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검사나 판사, 그리고 경찰서장이나 교수 등을 구성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근대 대한민국의 법정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보여준다. 군사 쿠데타의 수장이었던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가의 헌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경찰서장이라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헌법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리는 것이다. 고졸 출신이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송우석 변호사는 그것을 결코 참을 수가 없다. 당시의 국가보안법이 불법서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서적들을 밤새워 읽으면서 국가보안법이 근대 대한민국의 헌법에 얼마나 위배되는지에 대하여 절감한다. 송우석 변호사는 당시 '부림사건'을 책임지고 있는 판사(송영창 분), 강 검사(조민기 분), 경찰 차동영(곽도원 분)에게 자신이 국밥집 아줌마에게 용서를 빌었던 것처럼 고문과 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피고인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빌러 나온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고문과 폭행을 목격했던 파견 군의관 윤 중위(심희섭 분)이다. 그 윤 중위마저 그들의 악마 같은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공우석은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평범한 송우석 변호사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그들의 싸늘한 '냉소'와 '빨갱이 변호사'라는 딱지뿐이다.

III. 우리 모두 '빨갱이'가 되자!

평범한 송우석 변호사가 비록 특별한 판사와 검사, 그리고 경찰을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그는 스스로 변화하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부산의 모든 변호사 사회를 변화시켰다.

<변호인>은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의 장례식 사건으로 구속되어 변호사 업무 정시 처분을 당한 재판과정에서 부산 지역의 대부분 변호사들이 그의 변호인을 자청하여 재판장 방청석을 가득 채우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특별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부산 지역의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용서를 빌기 위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되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송우석 변호사처럼 '빨갱이 변호사'의 변호인이 되는 '빨갱이 변호사들'이 된 것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분노 덕분으로 1987년 민주화 대장정은 1988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마침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송우석 변호사가 노무현 대통령이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평범하지 않았다.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용서를 빌지도 않는 특별한 사람들을 용서해주었고, 국밥집 아줌마와 그의 아들 진우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민주노동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안하여 보기 좋게 거부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헌법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노무현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검사와 판사, 교수와 기업인, 그리고 경찰과 국회의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다고 착각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넬슨 만델라처럼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2013년의 오늘, 그들은 1980년대처럼 자신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대통령과 장관, 검사와 판사, 교수와 기업인, 그리고 경찰과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이 검사와 판사, 교수와 기업인, 그리고 경찰과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 특별한 사람들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을 하고, 대한민국 사회는 다시 1980년대의 '빨갱이 사냥' 시대가 되었다.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빨갱이 사냥' 시대가 등장했을 때, 당시의 평범한 아프리카 흑인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빨갱이 변호사'가 되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이 '빨갱이 사냥' 시대가 되었을 때, 당시의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노무현은 '빨갱이 변호사'가 되었다. 2013년 지구촌 세계의 서로 다른 한구석을 구성하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운명을 목격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남아공에는 수없이 많은 넬슨 만델라가 등장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노무현이 등장하는 길은 우리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넬슨 만델라나 노무현처럼 '빨갱이 사냥' 시대의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