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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검과 마법' 판타지,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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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검과 마법' 판타지, 설계할 수 있다! [프레시안 books] 강인태의 <상상력 공학 101>
<상상력 공학 101>(강인태 지음, 나무·나무 펴냄)은, 일단 표지에 나와 있는 광고용 문구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아주 야심만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판타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판타지 작품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독자 (…) 들은 판타지 안내서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만의 판타지 세계를 창작하고 싶으면 (…) 하나씩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사 제품 (책을 놓고 제품이라고 하면 반감이 생기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①본서에서 판타지 제품의 감상자를 '고객'이라고 표현하는 바 그 문맥에 맞춰보기 위해서 ②필자는 책을 제품이라고 표현한다 한들 그 본질이 손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품이라 칭하겠다.)에 대한 광고는 예외 없이 과장되게 마련이며, 심지어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으로 볼 때 이 광고 문구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책을 완독한 결과 광고 문구와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지 파악이 되어 이에 소개를 해볼까 한다.

▲ <상상력 공학 101>(강인태 지음, 나무·나무 펴냄). ⓒ나무·나무
우선 본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책의 17쪽에 등장하는 '신화와 SF, 그리고 판타지'라는 부분은 조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본서가 '판타지 설계'라는 주제를 표방하는 만큼 간단하게라도 판타지의 정의를 소개하는 것은 당연하며, 16쪽까지 소개하는 판타지의 정의에는 별 무리가 없다. 하지만 '판타지와 SF는 (…) 상상력의 대상이 마법이냐 과학적 테마냐의 차이가 있을 뿐 굉장히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 요지다.' 라는 단정은, 특히 판타지와 SF 양자에 모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마법이나 초자연현상이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판타지와 '과학적인 개연성이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SF 사이에는 쌀알을 뿌려서 그 결과로 미래를 예언하는 점술과 천체망원경만큼의 방향성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둘은 핵심적인 구성에서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실제 본서에서 SF의 예로 들고 있는 <스타워즈>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나 <아바타>는 판타지와 SF양쪽에서 '사이언스 판타지'라는 별개의 명칭을 붙일 정도로 혼혈 취급을 하는 것들이다. 저자가 이처럼 판타지 안에 모든 것을 뭉뚱그리려는 것은 아마도 판타지와 SF에 공통되는 상상력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하지만 SF까지 판타지의 하위 장르로 묶는 진술에 있어서는, 저자가 (어쩌면 본서 전체의 방향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의로) '허구'와 '(장르로서의) 판타지'를 혼동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본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판타지를 그처럼 거대한 범주로 설정해놓고 정작 시야를 극히 좁게 설정했다는 데에 있다. 본서는 '판타지'를 전반적으로 다룰 것처럼 도입부를 열었지만 명시적인 언급이 거의 없이 방향성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운다. 이는 책의 244쪽, '불덩어리 (…) 초인적인 전사가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 작품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라는 진술에 이르기까지 쭉 이어진다.

여기서 본서의 성격을 재정의해보자. 앞서 인용한 광고 문구에서는 어떤 수식어도 없이 '판타지'를 다룬다고 했지만, 사실 본서는 판타지의 특정 하위 장르만, 즉 모험담을 주로 하는 '에픽(Epic) 판타지' 및 '로우(Low) 판타지'만 다루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검과 마법(Sword and Sorcery)' 계열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부분으로 과도한 일반화를 이끌어내려 하는 바람에 판타지에 입문하고픈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이런 성격은 본서의 내용 중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통한 현실 세계와의 거리 두기' 부분과 연계해 명시했더라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표가 되었을 거라 본다.

자, 그러면 검과 마법 판타지는 어디에 포진하고 있는가. 조금 농담 삼아 영미권 판타지를 셋으로 나눠보자. 수상작, 흥행작, 숨은 걸작으로. 이 중 흥행작에 검과 마법 계열이 압도적으로 많다. 본서는 다소 중언부언하는 서론부가 지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검과 마법 계열 판타지의 기본 요소들을 다룬다. 그러면 서론과 달리 본론부는 그런 목적에 충실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협의의) 판타지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런 판타지를 소비하고 이해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들, 인간이다. 따라서 그 세계 전체의 모습은 상당부분 우리들의 세계, 우리들의 꿈과 한계와 닮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 점을 십분 파악하고 있으며, 그래서 통치 체계, 계급, 종교, 교육 등으로부터 시작해 이른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을 목록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실 본서가 (검과 마법) 판타지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줄 수는 없지만, 그 충실성을 논할 수 있는 있을 것이다. <상상력 공학 101>은 독자가 충실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숙제를 빠짐없이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3부를 통째로 할당해 (검과 마법) 판타지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회상의 각 요소들을 조목조목 골라주고 있고, 4부에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과도한 용어로 포장해 놓은 면이 있긴 하나 판타지에서 창의적 활용도가 극히 높은 종족 문제를 다루고 있다. 5부는 대중적인 검과 마법 계열 서양 판타지에서 전형적으로 설정해두는 마법 체계의 예를 아주 상세하게 분류해두고 있는데, 특히 256쪽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기반으로 한 마법의 설계' 부분은 꼭 한 번 읽어볼만하다. 이렇게 세 개의 장에 걸쳐 사회상, 종족, 마법을 꼼꼼하게 펼쳐놓고 있으니, 검과 마법 계 판타지의 배경이 되는 세계를 설계하는 데에 있어 기초적인 점검을 해보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본서는 전체적으로 검과 마법 계열을 중심으로 한 협의의 판타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서론부에서는 일반화가 조금 도를 지나쳐 넘어 오해의 소지가 크기도 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범례보다는 추상적인 용어를 너무 많이 도입해서 단숨에 이해하기 힘든 단점도 있다.

(롤플레잉 게임의 팬으로서 덧붙이는 여담이지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가 왜 여러 검과 마법 판타지 중에서 마법 체계의 정수를 보여주는지 비교는 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과 마법'이라는 용어와 '마이트 앤 매직'이라는 상품명 간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CRPG와 TRPG의 여러 걸작 판타지 게임 시스템들, 예를 들어 <울티마>, <위자드리>, <파이널 판타지>, 3rd Rule 이전의 던전 앤 드래곤스 기반 여러 세계관들,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시리즈의 세계관 등과 비교할 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가 왜 좋은 견본이 될 수 있는지 비교해 주었더라면 읽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마이트 앤 매직 : 히어로즈 6'. ⓒmight-and-magic.ubi.com

하지만 본격적인 대중 판타지를 만들려는 분들에게, 다른 세계를 그리더라도 감상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는 점에 무엇보다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으로 엮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리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에서 상당수의 요소들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어떤 참고 서적이 모든 걸 줄 수는 없다. 설사 모든 걸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전부 욱여넣는다고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창작자란 더하기보다 '빼기'에 능숙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척도가 큰 도움이 될 텐데, 수많은 요소들을 다루고 있는 <상상력 공학 101>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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