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교과서' 파동의 주역들
'역사전쟁 2013', 즉 교학사 교과서 파동은 세 악역 배우를 주연으로 하는 블랙 코미디였다. 첫 번째 악역을 맡은 주인공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이다. 그들은 권력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기에 자신들의 교과서가 무난하게 채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일천한 교수와 교사들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수능과 연계되어 있어 이미 교과서 집필 경력이 상당한, 그렇게 검증과정을 거친 교수나 교사들이 쓴다. 이런 상식을 가벼이 무시한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권력은 물론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나머지 7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친북좌파 교과서라 매도하는 파상적인 이념공세를 펼치며 학교 현장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교과서는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곤란한 탓에 철저히 외면받고 말았다.두 번째 악역을 맡은 배우는 교학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국사편찬위원회와 검정위원들이다. 그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함량미달 교과서의 검정 통과를 용인했다. 만일 그들이 학자적․교육자적 양심을 걸고 필사적으로 검정 통과를 막아주었다면 소모적인 역사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든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교과서를 집필하고 검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해당 교과서가 역사 교과서로서 합당한지를 검정하는 수고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검정위원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채택률 0%의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그들이야말로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야기한 데 대해 일차적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세 번째 악역을 맡은 주연배우는 단연코 교육부다. 권력의 '시녀'로서 교육부는 검정제도의 근간을 흔들며 교학사 교과서의 비호에 나섰다. 본래 검정 통과한 교과서는 검정위원이 요구한 수정, 즉 단 한 번의 수정을 거친 뒤 최종 합격을 받아 검정 교과서 시장에 나온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의 부실 논란이 커지자, 편법적인 구조 작전을 펼쳤다. 유독 한국사 교과서만 전체 교과서 검정 시스템에서 빼내어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를 빌미로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8종 모두에게 재차 수정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교육부의 편애도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교학사 교과서에는 계속 오류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때마다 교학사측은 수정할 것을 약속하고 교육부는 애써 그 기회를 부여해오고 있다. 검정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탈하여 무법의 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셈이다.세 악역 모두 2013년에 출범한 '권력'을 의식하면서 함량미달의 교과서라는 진실을 외면하거나 호도하다가 채택률 0%라는 참사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권력이나 이념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상의 삶'이 더 중요한 시민의 상식적 선택에 대한 그들의 화답은 다름 아닌 국정화였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권력이 기획한 역사교육 강화 씨나리오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지난 8월 한국사 교과서의 최종 검정 합격 발표를 목전에 두고 교육부는 한국사의 수능필수화를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역사관을 품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오류투성이 부실 교과서라는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는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교두보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교학사 교과서의 완패에 당혹감을 느낀 새누리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역사교육 강화 씨나리오의 마지막 수순인, 낡고도 낡은 국정화 카드를 꺼냈다.40년 전 역사가 반복되다!
1974년은 훗날 우리의 역사교육사와 사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일제시대 이후 국정 국사교과서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한 해로서의 하나의 획기적인 의미를 주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사를 서술할 학자들에게도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는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이다.(강만길 「사관(史觀): 서술체재의 검토」, 『창작과비평』 1974년 여름호, 4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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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을 드러낸 권력의 무리수
교과서 발행제도상으로도 국정화는 분명한 퇴행이다.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아직 초등학교 5학년 사회시간에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이라는 점이다. 이 교과서의 부정확한 내용과 허술한 편집, 게다가 저명한 대중 역사서와의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결국 교육부가 사과했던 소동 등을 감안하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자와 출판사가 전력투구하는 검정 교과서와 의무적으로 만든 국정 교과서는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다.오늘날 모든 교과교육은 학계와 교육계가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유독 역사교육만 정치가 학계와 교육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전횡하며 독점하려 하고 있다. 권력이 국정화 카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제2의 역사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만일 한국사 교과서가 오직 하나라고 할 때, 거기에는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참여하여 오늘날 역사학의 통설을 충분히 녹여내야만 비로소 모두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하지만 지금 권력의 의도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국가대표급의 학자나 교사로서 거기에 동참할 이는 아마 없을 듯하다. 교학사 교과서를 거부한 시민적 상식이, 좋은 저자와 검증된 내용을 담보할 여지가 거의 없는 국정 교과서의 탄생을 용인할 가능성 또한 없다. 그럼에도 권력이 국정화의 무리수를 감행하려 한다면, 그건 '역사전쟁 2013'의 씨즌2를 여는 선전포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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