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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을 쥐다가 맥 빠질 수도 있다! 당신의 취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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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을 쥐다가 맥 빠질 수도 있다! 당신의 취향은?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휴 하위의 <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매체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그 중 ‘미드(미국 TV 드라마)’나 ‘영드 (영국 TV 드라마)’같은 약어로 통하는 영미권 TV 시리즈물의 경우,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 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고 한 화의 말미에 새로운 사건이나 비밀의 존재를 암시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딱 하나 예를 들자면 미국 드라마 <로스트>가 좋을 것이다.

▲ 미드 <로스트>. ⓒABC


언제부터였는지, 그 시초는 무엇이었는지 가리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방식의 이야기 전개에 익숙하다. 비단 TV 시리즈물만이 아니다. 문장이나 작품 전체의 심미성보다는 대중적인 흥미를 목표로 하는 소설들 또한 그런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큰 사건의 추이를 배경으로 삼아 그 위에서 각 장 별로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사건이나 단서를 배치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울 Wool>(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 펴냄)은 그런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훌륭한 효과를 거둔 SF다.

▲ <울>(1권,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사실 이 소설의 1부 <홀스턴>은 어떤 줄거리 요약보다도 멋들어지게 작품 전체를 소개한다. 작중 세계의 사람들은 지하 144층까지 내려가는 사일로 안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사일로가 세상 그 자체이다. 1부의 주인공인 홀스턴은 사일로의 보안관이며 아내와 사별했다. 아내는 사일로에 폭동이 여러 번 있었다는 비밀을 유추했다가 ‘청소형’을 선고받는다. 지하세계인 사일로 사람들은 대형 화면을 통해 지상의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청소형이란 그 화면과 연결된 카메라를 닦으러 지상으로 나가는 벌이다. 그리고 청소를 하러 나간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다. 홀스턴의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홀스턴은 보호복을 입고 나갔던 아내가 쓰러지는 모습을 화면으로 봤지만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청소형을 자청한다. 독자는 홀스턴의 회상을 통해 사일로의 생활상을 엿보게 된다. 사일로는 제한적인 자원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산아제한도 철저하다. 그리고 시장이 행정을, 보안관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으며 화면과 통신을 관리하는 IT부서는 사일로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핵심적인 구조를 소개하고 나서 이야기는 곧장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홀스턴은 아내와 똑같이, 그동안 청소형을 받았던 사람들과 똑같이 보호복을 입고 지상으로 나간다. 그에게는 아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서 정말로 아내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것 외에 또 하나의 궁금증이 있다. 청소형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추방당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청소하러 나간 사람들은 그러는 대신 정말로 카메라를 닦는다. 이유가 뭘까?

홀스턴은 지상에 올라가서 사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본다. 그러면서 추방자들이 왜 카메라를 닦았는지 깨닫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여기서 1부의 결말을 섣불리 짐작해서는 안 된다. 작가가 주도면밀하게 마련해 놓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반전 역시 작중 세계의 참모습을 소개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1부에서 일단 마무리된다. 2부를 펼치면 독자는 살짝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울>은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한 소설이 아니다. 작가인 휴 하위는 전통적인 출판 과정을 선택하는 대신 아마존의 전자책 체계를 통해 1부 분량만큼을 직접 게재했다. 독자들은 이 단편에 매료되어 뒷얘기를 원했다. 휴 하위는 사건과 비밀을 직접 알려주지 않고 에둘러 조금씩 드러내는 데에 재능이 있었고, 그렇게 계속 이어진 것이 바로 <울>이다. 앞서 얘기한 영미권 TV 드라마 제작자들은 새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1화 (또는 0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를 방영해 시청자의 반응을 보곤 한다. 이 1화를 ‘파일럿’이라고도 부르는데, 말하자면 <울>의 1부인 <홀스턴>이 곧 소설의 파일럿이었던 셈이다.

TV 드라마의 파일럿과 마찬가지로 1부 <홀스턴> 역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요소들이 압축되어 있다. 과연 사일로 세계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누가, 어떻게 밝혀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다음을 읽을 수밖에 없다. 파일럿은 성공했고, 독자는 2부부터 세계의 상세와 더불어 더 많은 인물들을 접하게 된다.

문제는 이 <울> 역시 드라마의 파일럿 시스템과 같은 단점을 함께 안고 나아간다는 데에 있다. 국내 번역서 기준으로 1부가 50여 페이지였던 데에 비해 장편 전체는 두 권을 합쳐 700페이지에 육박한다. 이 긴 이야기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할까. 1부에서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전형적인 디스토피아의 모습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노동을 분담하고 있는 부서 간의 갈등, 진실을 알려는 자들과 숨기는 자들의 대립, 폭동. 1부는 그토록 간결하고 효과적이었건만 2부~5부는 냉전시대 SF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뻔한 폐쇄형 디스토피아를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조금씩 밝혀지는 바깥 세계의 비밀 역시 맥이 빠질 정도로 진부해서 1부에서 독자로부터 끌어냈던 호기심을 낭비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그러면 <울>이 재미없는 작품이란 이야기일까? 그건 아마도 독자의 기호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필자처럼 반복되는 계단의 묘사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상투적인 작중 세계에 한숨을 쉬는 독자도 있겠지만, 작품 전체보다는 인물들의 생사와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폭동의 진행에만 몰입하면서 순간적인 재미에 침을 삼키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독자라면 즉시 <울>을 권해줄 수 있다. 한 번 손에 쥐면 놓기 힘든 매력은 분명히 있으며, 작가 역시 그 부분에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작은 아이디어로 장편을 만들면서도 일반적인 독자들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지 그 기법을 알아내고 싶은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1부에 감탄하고 그 이상의 커다란 이야기와 반전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을 손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도한 묘사와 느린 사건 진행 때문에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스토피아 SF에 익숙한 독자의 경우, 어쩌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상스러운 말을 한두 마디 쯤 내뱉을 지도 모른다.

아, 한 가지 더. 혹시 이 작품에서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기 바란다. 작가가 도대체 무엇에 쫓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마지막에서 남녀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부분은 작품 전체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느낌을 더해주는 것 외에 아무 역할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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