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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사태' 일으킨 쇼트트랙 마피아는 '불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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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사태' 일으킨 쇼트트랙 마피아는 '불사신'? [프레시안 스포츠] "빅토르 안의 금메달, 손기정 옹이 봤다면"
빅토르 안의 금메달은 러시아에 기쁨을 남겼지만 한국에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 대표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 빅토르 안이 돼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한국 쇼트트랙의 파벌싸움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0년 넘게 지속돼 온 쇼트트랙 파벌주의에 대해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왜 쇼트트랙은 특히 파벌주의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었으며, 안현수를 러시아로 내쫓은 쇼트트랙 마피아는 누구였을까?

'각본 있는 드라마' 쇼트트랙 기술자와 폭탄의 비애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 가 보면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어이없는 장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저쪽에서 폭탄을 심어 놓았다. 넌 폭탄만 제거하면 임무 끝이야, 알겠지." 이게 과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일까? 상대 파벌에서 우리 팀 에이스와 고의적으로 부딪혀 탈락시키기 위한 선수를 배치했기 때문에 그 폭탄 선수를 레이스 중간에 제거해야 된다는 심오한 뜻이다.

군사작전 명령을 방불케 하는 폭탄 제거반의 존재는 쇼트트랙이 승부조작에 취약한 '각본 있는 드라마'라는 점을 분명히 해 준다.

하지만 폭탄 선수만 가지고 상대 파벌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는 없다. 폭탄 선수보다 교묘하게 상대의 레이스를 방해하는 고급 기술(?)을 가진 선수들도 필요하다. 상대를 철저하게 견제하면서 같은 팀 선수가 1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런 기술자들이 없었다면 국제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지금까지 최정상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트트랙 기술자들이나 폭탄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늘 이들은 희생양이다. 뼈빠지게 노력해서 대표팀에 들어간다 한들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지 않으면 ‘스턴트 맨’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본에 나온 대로 올림픽 등 국제대회 성적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토리노 올림픽 때 두 개의 쇼트트랙 대표팀이 출전"

그래서 선수들은 캐스팅 권한을 쥐고 있는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막강한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도 연맹 고위인사 입김에 의해 움직였다. 이 메커니즘이 한국 쇼트트랙의 파벌주의를 심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현 윤재명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은 2005년 팀을 떠났다. 병역특혜가 필요했던 한 국가대표 선수가 안현수에게 순위를 양보해 주지 않는다며 폭행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비한체대파'인 윤 감독은 여러 차례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파벌간 알력 때문에 야인 생활을 했었다.

윤 감독이 나간 뒤엔 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체대파'의 에이스 안현수를 제외한 남자 대표팀선수들은 태릉 선수촌 입촌 거부를 했다. 소치 동계 올림픽을 겨냥한 삼성 광고에 등장하고 있는 김기훈 코치가 대표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체대파'인 김기훈 코치는 1년 전 자신의 아버지 회사의 스케이트를 선수들에게 강제로 신게 했다는 문제 때문에 코치 직에서 해임됐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질적 이유는 '한체대파'인 김기훈 코치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한 남자 쇼트트랙 대표 선수는 안현수를 겨냥해 "주인공은 이미 정해졌는데 우리가 들러리를 설 수 없다"고 까지 말했다.

문제는 2006년 절정에 달했다. 토리노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대표팀은 파벌에 따라 두 개의 팀이 됐다. 당연히 훈련도 따로 했다. 남자 에이스 안현수는 한체대파 코치가 지도하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과 훈련을 했다. 반대로 여자 에이스 진선유는 비한체대파 코치가 지도하는 남자 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했다. 그 만큼 파벌싸움은 갈 때까지 간 상황이었다.

대외업무에만 관심 둔 삼성맨 파벌문제 수수방관

하지만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무려 6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업적만 내세웠던 대한빙상연맹은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동계 올림픽 유치활동 등 대외업무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탁구선수 출신의 박성인 전 빙상연맹 회장의 태도도 이 문제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과 돈독한 친분으로 삼성 스포츠단 사장과 레슬링연맹 회장을 역임했던 '삼성맨' 박성인 전 회장은 대부분의 국내 스포츠 협회 회장님들처럼 성적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나머지 문제는 그를 주변에서 보좌하고 있는 이른바 '쇼트트랙 토호(土豪)'들에게 일임했다. 이 토호들은 감독 및 선수 선발 문제에 깊이 개입하며 한국 쇼트트랙을 실질적으로 주물렀다. 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막강한 권한의 쇼트트랙 토호들도 연맹 밖에 있는 실력자의 압력에 따라 움직이기도 했다.

지금도 대한빙상연맹은 또 다른 삼성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삼성 가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 엔지니어링 사장이 빙상연맹의 회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체대파'의 쇼트트랙 토호들이 연맹의 업무를 장악하고 있다. 소치 동계 올림픽 한국 선수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재열 회장은 향후 IOC 위원에 도전하지 않겠냐는 소문이 무성한 실력자다. 하지만 연맹의 실질적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 빙상 계의 원로인 장명희 아시아 빙상경기연맹 회장은 올 초에 연맹의 한 고위 임원을 지적하며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 주지만, 눈 밖에 나면 출전 선수를 수시로 바꾸는 등 불이익을 준다"고 비판했다. 장 회장이 비판한 인사는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 정상에 올려 놓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이후 '한체대파'의 리더로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다. 과거 그는 '한체대파'의 전횡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한체대가 실력 있는 선수를 많이 키워냈기 때문에 이를 시기한 세력이 '비한체대파'를 결성해 파벌싸움이 전개됐다는 주장을 했다.

▲ 러시아 쇼트트랙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5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빙판에 키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체대파'에서 '팽' 당한 안현수, 빅토르 안으로 변신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안현수는 올림픽이 끝난 뒤 '한체대파'와 멀어지게 됐다는 게 국내 쇼트트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체대를 졸업한 안현수는 '한체대파'의 지시와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했다. 성남시청으로 진로를 택한 것도 '한체대파'의 의견과는 다른 것이었다.

부상당한 안현수가 국가 대표에 뽑히지 않도록 대표 선수 선발대회를 한 번만 치르는 등 '한체대파'가 연맹을 움직여, 지시를 무시한 안현수를 압박했다는 의혹도 무성하다. 얘기대로라면, 선수 생활 초기에 '비한체대파'의 극심한 견제를 받던 안현수가 이번에는 친정이나 다름없던 '한체대파'로부터 버림받은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남시청까지 해체하자 안현수는 러시아로 향했다. 처음에 안현수는 그저 러시아의 클럽에서 뛸 계획이었지만 소치 동계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있던 러시아는 한국의 쇼트트랙 영웅 안현수에 적극적인 러브 콜을 보냈다. 다시 쇼트트랙을 하고 싶었던 안현수는 러시아의 제외를 받아들였다. 이게 빅토르 안의 탄생이다.

빅토르 안의 금메달을 고 손기정 옹이 봤다면

지금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눈물의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옹이 빅토르 안의 금메달을 수상 장면을 봤다면 어땠을까?

1936년 손기정 옹은 금메달을 받은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 짧지만 강렬한 이 한 마디는 한국인이지만 '키테이 손'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울분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인이지만 파벌싸움 때문에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올림픽에 나서야 했던 안현수의 금메달은 손기정 옹의 금메달과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런 점에서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10여년 이상 미뤄 온 빙상연맹의 개혁의 신호탄이 돼야 한다. 정치권까지 나서 개혁을 요구하는 특수 상황이라고 해도 그저 빠르게 미봉책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조치가 나와야 한다. 파벌싸움의 역사를 살펴보면 쇼트트랙 마피아들은 불사신이다. 언제 또 부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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