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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대통령, 스스로를 묶은 규제부터 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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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대통령, 스스로를 묶은 규제부터 풀라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8> ‘내 탓’도 생각해야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는 군사독재정권의 공권력이 죄 없는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빨갱이’를 만드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빨갱이 조작 담당 공안경찰 간부가 고문과정에서 한 청년을 쥐어박으며 버럭 내지르는 기막힌 대사가 있다.
“왜 너는 계속해서 모르냐.” 빨갱이였을 리도 없고 빨갱이일 리도 없는 젊은이에게, 빨갱이로 활약했던 내용을 자술서에 그럴듯하게 사실처럼 만들어서 쓰지 못한다는 닦달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는 내용까지는 시키는 대로 써 내려갔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써야 빨갱이 활동을 한 것처럼 비쳐질지를 모르는 청년으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겁에 질린 대답을 하지만 그저 어쩔 줄을 모른다. 매질이 무서울 뿐이었다. ‘셀프 조작 빨갱이’가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로 보였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사람이 그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 대목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시청 공무원 유우성 씨가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갈 때, 화교출신인 유 씨의 여동생은 ‘1인 생활실’이라는 국정원 독방에 갇혀 179일 동안 오빠의 ‘간첩 만들기’ 작업에 시달렸다. 구속영장도 없었고 변호인 접견도 금지된 상태로, ‘오빠는 간첩’이라는 진술을 강요당했다. ‘법정증언’을 앞두고 결국 ‘오빠는 간첩’이라는 진술을 조작시켜 놓고는, 국정원 조사관이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로 사전 ‘입단속’을 시킨다.

“남한에서는 간첩죄보다 ‘진술 번복죄’가 더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오빠는 간첩이라는 진술이 고문·협박·회유에 의한 거짓”이었다고 법정에서 폭로할까봐 사전에 ‘못질’을 한 것이었다. ‘진술 번복죄’는 이 나라 법전에는 없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속 대사가 아니었다. 40년 전 유신 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 ‘변호인’의 부림사건이 일어나던 30년 전 5공 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바로 작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안에서, 생사람을 간첩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국정원 조사관들은 그녀에게 “아무리 아니라 해도 오빠가 나라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는 없다”고도 했다.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그런 일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나라 공안기관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빨갱이나 간첩 만드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고 말한다. 유 씨 사건은 국정원 대선부정을 덮기 위해 조작되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유 씨가 서울시 공무원이므로 박원순 시장에게 정치적 타격을 안기기 위해, 기를 쓰고 간첩조작을 시도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 사건이었는데도, 대통령은 “유 씨 사건의 증거는 위조된 것”이라는 중국정부의 공식 통보가 온 지 25일 만에야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윤창중 씨 때처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뜻’을 표했다.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겨우 그거였다. 생사람을 간첩 만들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관들이 외국의 정부 문서까지 위조해다 법정에 ‘증거’라고 제출한 사건이었는데도 그랬다.

인색해도 너무 인색했다. 목젖 떨어지게 기다리던 국민들의 갈증에 비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고, 수준도 너무 낮았다. 그저 인심 쓰며 은혜를 베푸는 듯했다. 안 들은 것만 못한 찜찜한 시혜성(施惠性) 유감 표명이었다. 자상한 측면은 있었다. 거의 겁만 먹고 있던 검찰에는 “수사에 착수하라”했고, 감히 누구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던 국정원에는 “수사에 협조하라”했다. 이에 따라 그날 저녁 검찰은 ‘압수수색한다’며, 기세 좋게 ‘전격적으로’ 국정원에 ‘쳐들어’갔다.

그러나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 팀은 이날 조작사건의 핵심 고리로 알려진 수사국장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국정원 측이 임의로 만든 서류를 주는 대로 얌전히 받아 왔을 뿐이었다. 지난번 대선부정사건과 관련된 압수수색 때 검찰이 남재준 원장의 반발로 손도 못 대고 되돌아 나왔던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이런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국정원의 생사람 간첩 만들기 사건은 바야흐로 전 세계 언론의 화제 거리가 되어 날로 번져가고 있다. 이른바 국격(國格)이 사정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건 한마디로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능멸한 대선부정사건을 주도한 기관이 국정원이었다. 그 대선부정을 덮기 위해,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원장이 멋대로 공개한 범죄를 놓고도, 대통령은 그 국정원에 ‘셀프 개혁’하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대선부정과 관련해 원세훈 전 원장을 기소했다하여 검찰총장을 목 잘랐다.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부정 범죄를 추가로 밝혀냈다고 담당 검찰 수사팀을 산산조각 냈다.

그걸 대통령 의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가 감히 그런 국정원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바로 대통령이 스스로 만들어 둔 국정원에 대한 규제였다. 그 규제를 풀 수 있는 사람도 대통령 밖에 없다. 그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사태는 또 터지게 되어있다. 전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그러도록 되어있는 것을 사람들은 역사에서 보아왔다.
▲10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 대통령. 이날 회의에서 유우성 사건에 대한 발언이 처음 나왔다. ⓒ 청와대

때마침 대통령의 거칠어진 화법(話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규제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많아지고, 사태가 꼬여가서 그런지 몰라도 근래 들어 대통령의 말씨에서는 확실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규제 완화와 관련해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협회 파업 등 ‘정당하지 못한 저항에 대응하는 자세’로 “천추의 한을 남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 덩어리”라 했다. ‘발언 과격’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사생결단하고 붙어야한다…규제라는 걸 쉽게 생각하고 던져놓는데…개구리는 거기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화법을 놓고 ‘이른바 언론’들은 부정적 여론을 우려한 나머지 규제완화 의지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는 분석 기사를 열심히 써댔다. 부산의 29세 여성 정치인 손수조 씨도 좀 걱정스럽게 느껴졌는지 라디오 방송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세어지는 이유는 “인자하신 어머니께서 불호통을 치셔야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감쌌다.

그러나 ‘인자하신 어머니’는 진돗개의 끈질김을 비유하면서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시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재벌의 힘을 움직여서라도 서둘러 ‘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대통령 말대로 ‘쓸데없는 규제’는 혁파하는 게 옳다.

그러나 규제완화는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 자칫 어느 한쪽만의 불편과 불만을 해소해 주면서 욕심까지 채워주는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싶다. 그렇게 ‘극언’을 써 가면서 까지 사정없이 몰아칠 일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규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히려 대통령이 풀어야 할 규제에 대해 고언(苦言)을 말해 보고자 한다. 앞서 ‘국정원 규제’에서 보았듯이 대통령이 스스로를 묶어 놓는 규제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규제부터 완화해야한다고들 보는 것이다. ‘내 탓’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슴을 활짝 펴고 열린 마음으로 국정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들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야한다.

소통을 가로막는 스스로에 대한 규제는 없는가. 민주주의 활짝 꽃피는 것 못마땅하게 느껴 스스로 가시 울타리 쳐 놓은 규제는 없는가. 답답해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너무 열어 주어서도 안 되고, 적어도 약간은 국민들이 으스스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규제는 없는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되돌려가며 거기서 배워야하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중용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느끼는 규제는 없는가. 나라나 사람이나 다 건강한 게 좋다. 대통령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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