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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탈정치인가? 민주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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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탈정치인가? 민주화인가? [김윤태 칼럼]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한국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대표작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후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층을 창출하는데 실패했다고 진단하였다. 특히 그는 야권이 운동정치에 매몰되고 정당정치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정당 연구소는 정책 생산의 능력을 갖지 못했고, 정치인은 보통사람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집권 후 행정은 관료가 맡았으며, 정치인은 대선후보 뒤쫓기에 바빴다. 결과는 정당의 왜소화, 그리고 정치의 실종이다.

탈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최근 야권은 신당을 창당하고 ‘새 정치’의 수단으로 ‘무공천’과 ‘약속’을 내세웠다. 그동안 정당이 정치를 잘못했으니 권한을 제한하겠다는 ‘탈정치’의 발상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에 볼 수 있듯이 진보정치는 언제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때 성공할 수 있었다. 정당 공천을 폐지하고 약속 이행을 촉구한다고 해서 곧 유권자의 마음이 움직일까? 의정활동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윤리위원회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면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커질까?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무당파층이 사라지고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질까? 

새로운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새로운 사고와 전략이다. 새로운 사고는 사람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꾼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전략이 없다면 진보정치는 정체되고 정당혁신은 공상에 불과하다. 

무공천이 아니라 정당의 민주화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듀베르제가 <정당론>에서 말한 대로 정당은 “사람들의 욕구를 정책 결정자에게 전달하는 통로이며, 결정된 정책을 사람들 속으로 침투시키는 소통의 효과적 메커니즘이고, 나아가 정치 지도자를 키우는 학습장”이다. 새로운 정치의 출발을 위해서는 정당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민주화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을 소수의 지도부가 아니라 더 많은 풀뿌리 당원과 유권자에 맡겨야 한다. 정당의 공직후보 선출권은 정파와 파벌이 아니라 국민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 정당 바깥의 제3후보만 쫓지 말고 정당 안에서 유능한 신인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  

만약 정당이 스스로 공천을 포기한다면 정당이 존재하는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 유권자는 후보 개인의 성격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 정당의 이념과 정책도 평가한다. 당연히 정당은 자신의 정강정책을 지지하는 후보를 선출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만 공직후보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정당을 심판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천하지 않는 정당은 책임도 없다. 

국회의 권한 축소가 아니라 확대가 필요

새로운 정치는 정당의 혁신을 넘어서 국회의 개혁과 새로운 국가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국회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반대로 행정부의 입법 권한을 제한하고 민의의 대표기구인 국회가 입법을 주도해야 한다.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고 감사원은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줄이는 대신 지방자치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여 지역주의 정치 대신 합의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의 소모적 정쟁을 중단하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초당적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정을 없애고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고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국민적 논의와 정치권의 합의를 거쳐 국가권력의 분산, 시민 참여의 확대, 보편적 인권 보장을 추구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정치는 사회정의를 확대하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다. 그렇다고 정당과 정치인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지금도 더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가 벌어질 것이다. 특히 힘이 없는 약자나 저소득층은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선거와 정당의 권력 획득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의 정상적인 작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정치 혁신을 이룬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정치는 한 가지 경로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과 전략적 선택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 경제 위기, 세계 경제의 통합, 탈산업화, 인구 고령화, 불안정한 국제정치가 단순히 진보정치의 쇠퇴를 야기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비정규직의 증가, 불평등의 심화, 기후변화, 남북관계의 악화가 만드는 사회적 위험은 진보정치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신당은 바로 이 문제에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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