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불거진 북핵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핵 해결의 모델이었던 6자회담은 제대로 가동되지도 못한 채, 동북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소용돌이로 빠져들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강태호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는 영문 외교전문지 <글로벌아시아> 봄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미국과 북한 모두 과거와 같은 핵문제 해결 방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건 없이 북한과 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경제적 지원이나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강 기자는 “북한이 지난해 6월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시한 ‘국방위원회 중대담화’에 깔려있는 내용을 보면, 북한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과 같은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는 국제사회가 자국을 ‘핵을 가질 수 있는 위험국가’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북한의 속내가 담겨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강 기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이처럼 과거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는 까닭은 핵보유라는 현실 말고도 더 이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건설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은 미국의 강경 대응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중국의 유례없는 북·미 중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게다가 미국은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대북 정책 목표는 대화재개가 아니라 비핵화의 실천이라고 말하고 있고, 중국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꺼내 들고 있어 양국이 여전히 북핵 해법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 평행선이 만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강 기자는 그러한 변화가 미국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면서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 2월 1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왕이(外交部部长) 외교부장을 잇따라 면담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면담 이후 중국이 북한 비핵화 이행의 강력한 ‘보증자’로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이 걸어 잠궜던 대화의 빗장을 여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취한 것과 관련해 강 기자는 “중국의 적극적 중재에도 북핵 문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도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핵 없는 세계를 주장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이대로 둔 채 핵 없는 세계의 진전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의 입장 변화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강 기자는 “케리 국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중이 새로운 안을 주고받은 만큼 북핵 문제의 새로운 협상 국면이 열릴 가능성은 있다”면서 “북이 올해 들어 보여준 과감하고 일방적인 평화 공세적 정책 전환은 일본과의 적십자 접촉에 나선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남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래 글은 강 기자가 <글로벌아시아>가 최근 북한 상황을 특집으로 다룬 2014년 봄호에 기고한 영문 칼럼의 한국어판이다. <글로벌아시아>는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이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주요 현안 및 관련 이슈를 아시아의 시각으로 심층적으로 다루고 이를 전 세계의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회원 가입 후 로그인을 하면 <글로벌아시아>에 게재된 글을 볼 수 있다. ()<편집자>
2012년 오바마 1기 들어 첫 합의이자 유일한 합의였던 2.29 합의가 실패하면서(1) 미국 내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협상파는 설 자리를 잃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북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헌법상에 핵보유국을 명기하고 두 번의 인공위성 발사 그리고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과의 협상은 시간만 벌어줄 뿐이며, 합의는 무의미하다는 협상 무용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렇다고 전쟁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지난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차관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봉쇄든 포용이든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오바마 1기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 역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바마 1기 때 북이 핵 무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년 오바마 2기 정부가 보여준 대북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2기 출범에 앞서 북한이 핵실험과 한반도를 전쟁상태로 몰아가는 전면 대결전에 나서자, 대북정책은 유엔을 통한 제재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응징만 남고 아예 실종상태에 빠졌다. 북핵 문제는 더욱 심각한 현안이 됨과 동시에 잊혀진 현안이 돼버렸다. 이런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결구도는 지난해 오바마 정부가 이뤄낸 외교적 성과라 할 이란과의 핵 합의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9.19 공동성명 합의의 주역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말했듯이 “국내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오바마 정부에게) 북핵은 외교적 투자가치를 못 느끼는 현안”이 돼버린 셈이다.(2)
2013년 봄-‘전면 대결전’과 ‘플레이북’
2013년 봄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3월 26일 1호 전투근무 태세를 발동시켰다.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은 “지금 이 시각부터 전략로켓 군 부대들과 장거리 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 포병군 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킨다”고 밝혔다. 1호 전투근무 태세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최종적으로 전략로켓군의 미 본토 괌 일본 등의 미군기지에 대한 타격계획을 비준했다는 걸 의미했다. 실제로 그 뒤 북은 사정거리 4000 킬로미터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 무수단을 동해안으로 이동시켜 발사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총련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이는 2012년 12월 12일의 “인공위성 발사를 불법시한 유엔의 안보리 제재 결의에 대응한 북한의 전면 대결전”이었다.(3)
<월스트리트저널>(2013. 4. 3.)에 따르면 미국은 이른바 ‘플레이북’으로 대응했다. 작전계획의 하위 개념인 플레이북은 2012년 12월 미 태평양 사령부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응해 새롭게 마련한 일종의 ‘전술교본’이었다. 그 목적은 북이 위협을 가할 경우 훨씬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정부의 지나친 군사적 대응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3월 11일을 기점으로 실제 무기를 동원한 ‘도상(圖上)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3월19일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3월에만 세 차례 이상 B-52를 출격시켰다. 또 20일엔 전략핵잠수함인 샤이엔을 연습에 참가시켰으며 이런 사실들을 모두 공개해 힘을 과시했다.
그러자 북한은 20일 B-52가 재출격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전략로켓군 부대들과 장거리포병 부대들에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28일 B-52를 능가하는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B-2를 미 본토로부터 출격시켰다. 북도 물러서지 않았다. 29일 김정은은 전략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사격 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북한도 이 회의를 언론에 공개했다. 미국은 31일 주일미군의 최신예 스텔스 F-22 랩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킴으로써 이 또한 무시했다.
무수단 발사 중단-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조짐
평양주재 외국공관에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철수권고를 내리며 발사 단추를 누르겠다던 북이 무수단 발사 중단 움직임을 보인 건 4월 12일이었다. 정면충돌에서 벗어나려는 첫 신호였다. 미 방송은 이날 미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이 무수단 미사일을 기립 상태에서 아래로 내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호는 미국이 먼저 보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플레이북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미국이 속도 조절에 나섰다고 전했다. 실제로 헤이글 국방장관은 4월 3일, “복잡하고 불붙기 쉬운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길 원하지 않는다면서 느닷없이 예정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III의 시험발사를 연기했다. 또 한미 군사위원회 회의(MCM)도 연기하는 조처를 취했다. 헤이글 장관은 그 이유를 “한반도 긴장 고조와 북한의 오판에 대한 우려”때문으로 밝혔다.
북이 미사일 발사대기 상태 해제에 나선 4월 12일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한미외교장관회담을 한 날이다.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대화의 조건과 목표가 ‘한반도의 비핵화’임도 분명히 했다. 국무장관 취임 뒤 첫 한중일 순방에 나선 케리 장관의 이 발언은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은 것이었다. 한미가 함께 대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케리 장관은 또 오바마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연기한 것을 상기시키며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몇 개의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명령해 긴장 완화에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김정은의 것이다. 그는 책임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결단을 요구했다.(4) 북은 중국을 통해 그 답을 내놨다. 5월 22일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해 ‘전면대결전’의 정책전환을 분명히 했다. 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에서 밝힌 ‘6자회담 관련국과의 대화’ 방침은 6월 6일 남북당국간 회담 제의와 6월 16일 국방위원회 중대 담화를 통한 북미 고위급 회담 제의로 나타났다.
또 다시 전쟁은 회피됐다. 그러나 대화의 문을 열었을 뿐 본격적인 협상이 전개된 건 아니었다. 북미는 지난해 중국이 적극적 중재에 나섰음에도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공방만 거듭했을 뿐이다. 남북도 개성공단 중단사태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이어갔지만 개성공단 정상화의 원상회복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올 2월 들어 북이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도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합의한 것은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남북은 단순히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남의 청와대(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와 북의 통일전선부(원동연 부부장)간의 고위급 접촉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다. 물론 지난 2월 14일 이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3개항 합의를 보면 남북이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남북은 “상호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계속 협의하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조선신보>(2월10일자)의 표현을 빌리면 북은 지난해와 달리 ‘직설적이고 강력한 화해공세’로 나섰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화해과정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정책변화를 가져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지난해 12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이 북의 이런 정책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장 부장의 처형은 김정은 후계체제의 권력 재편이면서 보다 젊은 세대로의 권력교체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처형이라는 폭력적 수단이 동원된 것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후유증을 최소화한다면 김정은 중심의 유일영도체제는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특히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제도적 권력의 중심에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경우 그동안 경제개발구 설치 및 경제관리 개선조처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대외협력과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정책 방향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다.
실제로 <조선신보>(2014년 2월4일 “최고수뇌부의 결심-분렬사에 종지부를”)는 올해 들어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에 대해 내놓은 정책 전환의 배경으로 “적대세력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해 국가 전복을 노리던 반역의 무리들이 제거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김정은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에서 “종파숙청으로 조선의 일심단결이 백배로 강화됐다”고 했듯이 “최고 수뇌부에 대한 신뢰, 집단의 다져진 결속이 령도자의 대담한 구상을 정책화 해서 밀고 나가는 담보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장 부장의 처형으로 외부세계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이 대미 관계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처럼 지난해와 대비되는 정책전환을 공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키리졸브 군사연습 이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4월 방한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에서 본격적인 협상 국면을 기대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핵문제의 진전 없이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북미 서로 과거와 다른 협상 방식 고수
과거의 방식을 거부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제시한 국방위 중대담화에 깔려 있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1994년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과 같은 비핵화 협상 방식의 거부다. 예를 들어 지난해 3월 말 핵 무력 강화 및 경제건설 동시추진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직후인 4월 1일 <로동신문> 사설은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자신들도 이제는 핵보유국이니 주변에서 이를 인정하고, 특히 미국과는 ‘대등한’ 입장에서 핵군축의 구도에서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과거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는 까닭은 핵보유라는 현실 말고도 더 이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건설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변의 실험용 경수로(ELWR) 건설 현장을 위성으로 분석해 온 미국 전문가들(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38노스’의 닉 핸슨과 제프리 루이스)은 북한이 이르면 2014년부터 100 메가와트(㎿t, 전기출력용량으로는 25~30MWe) 경수로를 시험 가동하기 시작해 내년에는 상업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당의 병진노선이 주체적인 원자력공업에 의거하여 핵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긴장한 전력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게 한다”고 말해 이 경수로가 병진노선의 핵심임을 밝힌 바 있다. (<로동신문> 2013년 5월 3일 논설 “우리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은 항구적 노선이다”)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교수는 지난해 <연합뉴스>(10월9일)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현재 비핵화로 종결되는 ‘다단계(multi-stage) 협상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미국 내 대북 전문가이며 이 내용은 9월 말~10월 초 베를린, 런던에서의 북미 1.5 트랙 대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입장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비핵화 협상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러나 대화의 전제조건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대화 초기에 또는 대화를 위한 신뢰구축 단계는 가능하다. 세 번째로 비핵화, 정치, 군사, 경제분야 등 다단계 협상 프로세스다. 그건 과거 제네바 합의 또는 일련의 6자회담 합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치며 양쪽이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핵 프로그램의 해체는 종착역이다. 그러나 위트는 2013년 또 다른 인터뷰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으로 핵문제를 푸는 단계는 지났다”면서 “북한은 안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으며, 북한과 직접 대면해 그들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대량파괴무기와 프로그램의 폐기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5)
중국의 새로운 접근-한반도 재균형 전략
북의 이런 핵보유국 논리에 입각한 새로운 접근법은 ‘비핵화의 조건 없이 대화 없다’는 미국의 강경 대응을 자초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의 유례없는 적극적 중재를 무색하게 만들어 왔다. 지난해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과 유엔제재 이행을 공언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성균중국연구소의 이춘복 책임연구원이 중국의 ‘한반도 재균형전략’이라고 적절히 명명했듯이 이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불안-북미, 남북관계를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6) 여기엔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작동하는 아시아 중시전략(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 전략)에서 북핵 문제가 한미일의 대중 포위전략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과 미·중 신형대국관계 추진에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3년 9월 19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워싱턴서 케리 장관과의 회담 전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 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7)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이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과 우라늄 농축작업 일시 중단 등을 수용한 2012년 2월 29일 북미 합의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는 6자회담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9.19 공동성명 합의를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던 북한의 팔을 비틀어 입장을 바꾸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9월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서 김계관 북 외무성 제1부상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핵화가 북한의 정책목표라고 밝히고, 6자회담의 전제조건 없는 즉각 재개와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는 케리 국무장관이 10월 3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발언을 이끌어냈을 뿐 대화 재개로 이어지지 못했다.(8) 앞서의 베이징 토론회에 참석했던 문정인 교수(연대 정외과)에 따르면(<중앙시평> 2013년 9월23일 “북핵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려면”) 한미 두 나라를 대표한 참석자들은 6자회담의 선행 조처로서 ‘2.29 합의에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포함해 플러스 α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재는 이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올 들어서도 북미는 외견상 접점을 찾지 못한 듯하다. 한중일 순방에 나선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2월 17일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는 ‘대화재개가 아닌 비핵화 실천’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북한에 들어갔다 20일 곧바로 남한에 온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북한이 여전히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국쪽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케리 국무장관은 2월 14일 베이징에서 왕이 외교부장에 이어 시진핑 주석과 면담 뒤 “미·중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을 제시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기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테이블로 돌아와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며,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고 현재의 위협 행동에 관한 합의된 기준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비핵화 정책 목표 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처를 취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9) 중국이 북한 비핵화 이행의 강력한 ‘보증자’로 나서는 걸 조건으로 미국이 비핵화 없이 대화 없다며 걸어 잠갔던 빗장을 여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법의 변화를 보인 데는 여러 가지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우선 지난해 9월 이래 중국의 적극적 중재에도 북핵 문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도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미국의 요구는 상대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내건 북한의 명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에 반해 미국이 일단 양보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보장받겠다는 것은 중국에 공을 넘기면서 더 큰 부담을 떠안게 하는 이점이 있다.
또한 핵 없는 세계를 내세우며 노벨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3월 하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북핵 문제를 이대로 둔 채 핵 없는 세계의 진전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중시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북핵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정책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지금처럼 중국 역할 확대론에 입각해 북핵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면 중국의 발언권 확대와 미국의 헤게모니 퇴조가 맞물려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점점 더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케리 국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중이 새로운 안을 주고받은 만큼 북핵 문제의 새로운 협상국면이 열릴 가능성은 있다. 북이 올해 들어 보여준 과감하고 일방적인 평화공세적 정책 전환은 일본과의 적십자 접촉에 나선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남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6자회담은 이미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와 2007년 2.13, 10.3 합의에 따라 핵 불능화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북핵 폐기를 전망하기에는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6년여에 걸친 6자회담의 긴 공백 기간만큼 너무나 멀리 뒷걸음질쳤기 때문이다.
□ 필자주석
(1)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영변 핵 활동 중단과 미국의 대북 영양식지원 등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및 6자회담 재개
(2) <한국일보> 시론 (2013. 11. 26)
(3) <조선신보>, “최고수뇌부의 결심 / 분열사에 종지부를 (1) (2),” (2014. 2. 4, 10)
(4)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 2013년 4월12일자 한미 외무장관 공동기자회견
(5) 조엘 위트, "북, 작년 7월 ‘핵실험’ 경고…오바마-MB공조정책 실패” <한겨레신문> 인터뷰 (2013. 2. 19.)
(6) 이춘복, “북한 3차 핵실험 후 중국의 대응과 북중관계: 시진핑 시대 중국의 대북정책은 진화하고 있는가,” JPI정책포럼 No.2013-04
(7) 케리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
(8) 2013년 10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 뒤의 공동 기자회견
(9) 2014년 2월 14일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의 면담 뒤 케리 장관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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