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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당파성과 처세술,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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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당파성과 처세술,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이렇게 읽었다] 주대환의 <좌파논어>
비록 시작은 옳았으나...

위대한 인물, 혹은 세상을 뒤흔든 인물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예수, 소크라테스, 마르크스, 레닌, 공자 등을 떠올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원래 본인의 생각과 의도는 좋았으나 후대에 의해 처음의 생각이 심히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 모두가 올바른 지식을 익히는 아름다운 세상, 착취와 수탈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 수단을 가리지 않고 혁명하여 사회주의를 이루려는 이상 등을 말했다. 그러나 그 끝은 처음의 생각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

▲ 중국 당나라의 화가 오도자가 그린 공자의 초상. ⓒWikimedia Commons
공자의 사상은 아시아 전제주의와 차별주의의 근거가 작용하여 노비, 평민,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예수의 생각은 전도되어 인간은 신의 뜻을 어긴 원죄를 지녔고 예수를 죽음에 내몬 죄까지 뒤집어쓰고 참회를 통해 죽음 이후에 올 천국을 예비하며 사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변증법이란 상승원리를 얘기했지만, 결국 진리의 표준이 외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의 근거가 되어 버렸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스탈린-모택동-김일성-김정일을 거치면서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일성-김정일에 이르러서는 아시아 전제주의의 사상적 근거인 공자 제자들의 사상과 결합하였다. 레닌은 죽음을 앞두고 스탈린이 자신이 한 말을 이용해 어떻게 그의 철권 독재체제를 구축하는지 바라보며 괴로워하며 죽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무엇보다 그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도그마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인의 말과 행위가 무오류라고 강요되기 시작하면 누군가 그것들 중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권력자들에게 그 논리는 결국 독재자나 전제군주를 보호하는 논리가 된다. 다수 시민이 논리와 수사만으로 논쟁하여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그리스 민주정에서는 이런 도그마가 발생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하든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특정 시민이 그에 반대할 것이고, 반대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면 그 사상은 채택되지 못하고 폐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행적 중에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 논리를 전개하고 지금의 교회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여기에 구약의 논리와 플라톤 철학을 끌어들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무오류성을 주장하였고 거기에 기대어 교회와 성직자의 무오류성을 말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진리의 표준은 인간 내부의 토론과 사태에 대한 실험에 있지 않고, 천상의 이데아를 알아내는 것과 본받는 것이라고 하여, 진리의 외부 레퍼런스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런 레퍼런스를 완벽하게 알아낸 철학자가 군주로서 세상을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주장하고, 민주정을 어리석은 자들의, 다수의 힘에 휘둘리는, 바보들의 정치로 폄하했다.
공자의 사상은 후대로 이어지면서, 공자가 원래 꿈꿨던 '모든 사람들이 군주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배불리 편히 먹고 사는 대동 사회'에 대한 이상은 희석되고, 공자가 예를 중시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을 분리하여 등급화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주희에 이르러 마침내 사람은 그의 도덕적 품성이 하늘의 품부에 따라 달라지고 한번 받은 품성은 개선되기 힘들다고 선언하여, 성인은 왕이 되고 군자는 사대부로 관료가 되고, 소인은 생산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왕과 신하, 연장자와 연하자, 귀족과 평민, 평민과 노비,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합리화되고 공고화되었다.

잘못은 어떻게 고쳐졌나

이런 잘못된 방향이 어떻게 고쳐졌는지 서구의 정치발전의 과정을 통해 알아보자. 봉건제와 절대왕정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정치철학자들이 우선 복원해 낸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정과 공화정이다. 로마 공화정적 정치 기구에 그리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과 정치 프로세스를 결합시켜,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치 체제를 탄생시키고 거기에 걸맞은 정치철학을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중세의 전제정적 정치 체제와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인 플라톤적 기독교신학체계를 공격해 무너뜨렸다.

그런데 기독교과 플라톤 철학은 그 내부에서 파괴되지 않았다. 그 내부적 해체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가능해졌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서구의 도그마 해체 과정을 보면 공자에 대한 새로운 해체적 독법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크리스티아노 반티의 <로마 종교재판소에서의 갈릴레오>(1857). ⓒWikimedia Commons

진리의 담지자이자 판단자인 교회는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그 논리가 무너졌다. 코페르니쿠스를 사형시키고 갈릴레이를 굴복시켰지만, '(가설)–관찰-분석 및 해석 –일반화 혹은 증명–이론화–이론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방법론에 과학적 지식의 판단자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이와 함께 진리가 인간 외부의 이데아에 있다는 플라톤 철학이 과학적 방법론에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해 더 이상 진리의 보증자로 자리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과학적 방법론은 물리학, 화학 등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심리학, 진화심리학, 근래에는 심지어 윤리학의 방법론으로까지 확장하여 인간 지식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적 사유는 다른 방식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인간 외부의 이데아가 자리를 바꾸어, 선험적 주관이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혹은 민족/국가 등이 진리의 보증자가 되었다. 선험적 주관에 기댄 마지막 철학 현상학은 그 대표적 철학자 하이데거가 1930년대에 파시즘에 굴복하면서 좌초하였고, 민족/국가를 진리의 보증자로 본 파시즘은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미증유의 학살을 자행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인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뒤 패배함으로써 총파산하였다.

오랜 기간 살아남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에 기반한 관료사회주의 체제는 최종적으로 1990년대 변화하는 지식중심사회의 압력과 시민의 불복종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였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플라톤주의는 해체되었다.

최근 한국의 대중매체에 어떤 의사가 등장해서 '독재가 나쁘다는 것도 도그마이다. 플라톤도 철인정치로 독재를 주장했다'라고 우겼는데, 서구의 정치사가 이 플라톤주의의 극복의 과정임을 알지 못한 데서 나온 무지의 소치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것은 그리스에서 민주정이 회복되었는데도 그 일파들이 참주정과 독재정을 오랜 기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과학적 방법론이 아주 오래 전에 발견되었음에도 독단적 철학이 정치를 지배했을까? 그것은 과학이 이미 발생한 사실을 규명하는 데는 유력하지만 인간의 정치적 영역에서 다루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결정'하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정치는 시민 간의 토론, 합의, 논쟁, 최종적으로는 다수의 의견이 잠정적인 진리로 간주되는 시스템이다. 과학도 그 논쟁의 승리를 위한 도구이다. 과학이 더 명백히 현실을 밝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시민들이 그만큼 훈련되고 교육 받았다면, 민주주의적 과정에서 올바른 결정이 선택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은 시민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에 따른 선택, 또는 그 이익에도 불구하고 진실, 신념 혹은 윤리에 따라 선택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독일 시민이 파시즘과 독재 체제를 선거를 통해 선택했듯이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가능성까지도 존재한다.
플라톤주의가 해체되었는데도 기독교는 여전히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종교는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고 개인의 윤리와도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며 존재이유 또한 담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와 상관없이 처음의 예수, 예수 출현의 의미를 가진 '예수 그 자체'를 복원해야 한다.

▲ '오병이어'의 기적을 담은 그림. 작자 미상. ⓒWikimedia Commons
해방신학자와 민중신학자는 플라톤주의에 갇힌 예수를 그의 말과 행적이 뚜렷한 복음서를 통해 복원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간음한 여인을 율법에 따라 죽이려 하자, 예수는 "죄 없는 자들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외치며 여인을 구원하였다. 그 여인이 간음한 이유는 아마도 자식들 먹일 양식이 없어 몸을 팔아 풀칠을 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율법에 따라 돌을 던지기 이전에 이 여인과 그 자식에게 먹을 양식을 주거나 일자리 잠자리를 제공했다면 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죄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지 율법을 어겨서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고사는 더 적극적이다. 몇 개의 빵과 물고기로 모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니 굶는 사람이 없어지더라는 얘기일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는 게 아니다. 많이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빼앗기 때문이다. 착한 바리새인과 이방인 고사는 인간이 종족이나 민족에 따라 도덕적이나 지적으로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기독교에 사람들이 여전히 붐비는 것은, 교회 공동체 내에 이런 예수의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복원이 전면화할 때, 교회는 사실 정치와 무관해진다. 각 개인의 역량이 최대한 길러지도록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 그런 개인이 사회에 골고루 많아지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진보적 정치 세력,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동료 시민들과 연대하는 선한 사람들과 같이 가는 길이니, 교회는 국가, 정치 및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개인의 구원 문제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공자 해체' 복원 가능성을 열고 있는 '좌파논어'

▲ <좌파논어>(주대환 지음, 나무, 나무 펴냄). ⓒ나무, 나무
이제 멀리 돌아와, <좌파논어>(주대환 지음, 나무, 나무 펴냄)를 보자. 사실, 도덕과 진리의 보증자로서 유교 이데올로기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과정에서 철저히 파산되었다. 하지만 그 폐해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여성과 직업에 대한 차별, 갑을 관계, 독재자에 대한 숭배, 관존민비, 지식인의 출세주의와 권력지향, 지역차별주의 등등이 모두 이런 유교이데올로기의 유산이다.

그리고 이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과 같은 전체주의 사상에 쉽게 물드는 것은, 성리학이 가지고 있는 철학 체계와 플라톤주의의 유사성과 유교 지식인의 권력 지향성과 전체주의 사상의 권력성과의 일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 과거에 합격해 임금에 잘 보여 입신양명하는 과정이나, 마르크스주의를 열심히 공부하여 문건 만들어내 이론가 행세하며 권력 잡는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도덕적 실체가 하늘에 있고 사람의 도덕성은 하늘의 품부에 따른다는 성리학의 가르침은, 플라톤주의의 인식론적 체계와 유사하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 당시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가능케 했던 인간들의 생각의 얼개를 다시 복원, 발전시키고 있다. 이것이 현대 철학의 기본 방향이다. 그리스 자연주의, 스토아주의, 스피노자, 니체 등이 복원되고 있다.

<좌파논어>는 예수를 복원하듯 공자를 복원하고 있다. 저자는 <논어>에서 무엇보다 연대(連帶)의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연대는 자유, 평등과 함께 좌파의 전통적인 이상이다. 공자가 인간윤리의 핵이라고 얘기한 효제(孝弟)를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라는 원리라고 해석한다면, 저자는 이것을 정당의 조직원리의 핵이라고 재해석하여 공자를 복원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라면, 사회운동을 함에 있어 그 이상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동지들을 사랑하고 그 삶을 보듬는 활동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본 것이다. 그가 남한의 새로운 좌파 운동에 오랜 기간 몸담으면서, 동지들의 분파적 행위와 적대적 감정, 동지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친구(親舊)라는 한자 단어를 쓰지만 나는 이것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붕우(朋友)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친구는 동무와 벗으로 나뉜다. 북한에서 동지를 동무라고 불러 무시무시한 뜻이 되었지만 동무는 그냥 시골 마을에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같이 놀았던 친구를 뜻한다. 그런데 선비들이 벗이라고 했을 때는 이런 동무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벗이라고 얘기했을 때는, 동문수학을 하던 때부터 그 이후 서로 마음과 감정이 맞아 정신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그래서 강세황은 자신보다 수십 년 아래인 김홍도에게 '그를 제자와 스승으로 만나, 직장의 동료로 지내다가, 마침내 말년에는 예술 안에서 벗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큰 목표를 위해 작은 차이를 극복해 가는 것

▲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의 플랭카드
벗들 간의 사랑, 이것이 우애(友愛)다. 형제애라는 것이 벗들 간의 사랑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 불어로는 'fraternity'다.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인 자유, 평등, 우애다. 여기서 'fraternity'를 박애라고 번역하면, 당시 좌파의 이상과 정면 배치된다. 당시 혁명가들은 봉건귀족까지 사랑하자는 뜻이 아니라, 같은 뜻을 지닌 벗들, 시민들 간의 사랑과 연대의식을 'fraternity'로 불렀다.

이는 또한 모든 이를 사랑하자는 묵가의 겸애(兼愛) 사상을 반대하여,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자는 공자의 체계였던 유가의 인간관계론과도 연결된다. 프랑스 혁명가의 우애는 묵가보다는 유가에 더 가까운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당파성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어떤 정당의 일차적 목표는 그 당을 지지하는 시민들과의 연대, 그들의 이해관계의 대변이다. 정당은 그 연대와 이해관계가 전체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행하여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권력과 이념이 목표가 아니라, 지지하는 시민이나 행동하는 당원들의 이익 증진이 일차적인 목표이고 그를 통해 전체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자가 자신의 학파와 정파를 이런 원리를 통해 조직하고 후세에도 이런 방식을 권고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그의 사상이 최상의 정치적 지도원리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오랜 기간 지배적 정파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가 공자와 남한의 소수파 진보세력의 지도자들의 처지를 자기동화하고 있다는 점은 지적될 수 있다. 또 이런 자기동화란 점 때문에 <좌파논어>의 최강점이 될 수 있으며, 최극단까지 밀어붙였어야할 '공자해체'란 공정이 머뭇머뭇할 수 있다는 점도 말할 수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생각 중에 저자가 발췌 번역하고 재해석하고 해설한 부분은 대개 동지나 벗, 경우에 따라 권력자들과 상대함에 있어 어쩐 자세나 처세로 대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이는 자칫 품성론으로 이어질 기미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거기까지 빠지지 않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그는 군자들이 지배자가 되어 다스리는 국가보다, 소인들이 견제와 균형, 그리고 시민들의 감시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정이 훨씬 낫다고 얘기함으로써 공자 해체의 발단을 마련하고 있다.

지역과 국가의 모든 정부와 의회, 그리고 교육기관, 법원, 검찰, 경찰 등 가능한 한 많은 공공 기관이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되고 시민에게 감시받음으로써, 권력이 균형적으로 분산되고 견제되어야 한다. 또한 격렬한 토론과 논쟁, 때로는 정파 간 대결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참여하는 정당이 꼭 이렇게 구성될 필요는 없다. 정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혹은 지지할 시민들의 의사를 가장 잘 대변하도록 조직되어 있으면 된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할 때도 있고, 당내 민주주의가 필요할 때도 있고, 동지들 간 끈끈한 정으로 어려움을 돌파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큰 목표를 위해 작은 차이를 극복해 가는 공자의 방법론과 사상을 드러냄으로써 공자를 해체 복원하고자 하는 단초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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