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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서 으르렁대는 미·중, 물밑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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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서 으르렁대는 미·중, 물밑에서는··· [이수훈의 동북아시대] 적대적이면서 협력적인 미·중 관계
동아시아가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후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은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도 나름의 대응을 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와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세를 과시하면서 미·일 동맹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가 충돌할 뻔 했던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갈등에 대해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순수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와 동북아 구도 속에서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에서는 미·중이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미·중 관계는 여전히 상호 협력적이고 호혜적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동북아에서의 미·중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판단 착오가 나올 수 있다"면서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중 간 협력과 갈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분석 틀에서 우리의 입장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이후 한국은 이전보다 미·일 동맹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은 셈이 됐다. 균형적이거나 유연한 외교가 아니라 한쪽에 편중된 외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상당히 머쓱한 처지가 됐다"며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구상도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향후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배치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6일 경남대학교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필리핀 군사기지를 10년 동안 조차한다고 밝힌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오바마가 순방을 끝내고 돌아가자마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석유 시추에 돌입했다. 이후 중국은 상하이에서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를 통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관계를 과시했다. 여기에 지난 24일에는 중국의 공군 전투기와 일본의 자위대기가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곳에서 30m까지 접근하는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데 어떻게 평가하나?

이수훈 : 순수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와 동북아 구도 속에서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영토, 동맹, 북핵, 군사훈련 등 긴장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미·중 관계가 하나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경제 전략대화를 한다든가 중국과 미국의 전직 고위 인사들이 물밑에서 접촉하는 등 다양한 대화 채널이 돌아가고 있는 미·중 관계가 있다. 이 둘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

순수한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는 큰 변함이 없다고 본다. 미·중 간 접촉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제도적으로 구축돼있는 대화를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양국 관계는 상호 협력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로 계속 진전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동북아 구도 속의 미·중 관계인데, 이것은 꽤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내에서의 미·중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에 동북아 정세 전체가 악화됐고 불안정해졌다. 마치 냉전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정세를 맞이하고 있다. 상호 쏟아내는 말도 그렇고 실제 군사 훈련도 이러한 대결과 대립을 반영하는 듯한 형태로 진전되고 있다.

실제 현재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다. 역내 군사 훈련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훈련 내용도 몇만 명이 동원되는 대규모훈련이다. 이런 훈련을 연중행사처럼 1년 내내 하고 있다. 한쪽의 군사 훈련이 다른 쪽의 방어 및 대응훈련을 불러오고, 이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또 훈련을 하게끔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는 동북아에서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동중국해가 이제는 화약고의 전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중국 공군기와 일본 정찰기가 충돌할 지경으로까지 갔던 일이 있었으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 측면의 미·중 관계가 상황이 매우 다르다보니 동북아에서의 미·중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판단 착오가 나올 수 있다.

프레시안 : 미·중 관계 자체와 동북아 구도 속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의 주요 행위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중 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반드시 미·중 양국이 군사적, 대결적으로만 가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수훈 : 그렇다. 실제로 미·중 양국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협력과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스탠포트 대학교에 도날드 에머슨이라는 동아시아 전문가가 있는데, 이 분이 오바마 대통령 아시아 순방 전에 인터뷰를 통해 "미·중 관계를 너무 대결과 경쟁 쪽으로만 보지 마라. 미·중 간에는 어마어마한 교류 채널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중 양자 간 소통이 아주 긴밀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전직 정권에서 근무했던 미국 내 원로들인 키신저, 페리와 더불어 중국의 외교 안보 쪽 임무를 맡았던 분들이 워싱턴과 베이징을 상호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있다. 양국이 두터운 대화 접촉 채널을 갖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꼭 일본 편만 드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오바마가 "모든 무력 충돌마다 미군이 개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 같은데?

이수훈 : 그렇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오바마가 일본에서 한 발언은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일본 편을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스스로 동북아 분쟁, 동북아 이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적으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중·일 양자 간 문제니까 대화로, 외교로 해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센카쿠 열도가 미일 방위조약 대상이라면서 노골적으로 일본 영유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가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이 상당한 탄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군이 필리핀에 다시 군사기지를 들여 놓고 남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이 있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동아시아에서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셈인데, 결국 오바마 1기 때 구상했던 '아시아로의 귀환', '재균형' 정책에 부합하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4월 24일 미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다만 오바마에게는 2가지 생각이 혼재돼있는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이슈들, 예를 들면 이란 핵 문제나 시리아 문제 등에 대해 중국과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하나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은 인권도 탄압하고 신장 위구르 사태도 있고 언론 자유도 없어서 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점이다. 그래서 국면·상황과 어떤 사람들한테 호소해야 하는지에 따라 다소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오바마 방한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나오지 않았고 한미 양국은 오히려 북한에 선(先)행동만 요구했다. 여기에 한미 간 미사일 방어체제(MD) 상호 운용성 증대를 골자로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나간 것 같다. 이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미·중 간 군비 경쟁에 끌려들어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수훈 : 처음에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계기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 양국 정상회담 전에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워싱턴에서 만났고 중국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또 북한의 선행동에 대해 이전보다 조금 완화된 듯한 메시지가 한미 양국 6자회담 수석대표로부터 나오기도 했고. 그래서 기대가 있었는데 북핵 문제보다는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북한이 여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매우 거친 반응이 나오면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지 못했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핵문제가 진전이 안 되면 가동되기 어렵다.

내용적인 측면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합의가 있었다. 우선 이미 연기한 전시작전통제권의 재연기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 등의 동향을 보면 이미 연기를 결정한 것 같다. 아마도 올가을 연례 SCM(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건이 되면'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조건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지금은 북핵, 미사일 등 안보 환경이 좋지 않아 전작권을 환수할 수 없다는 것인데 앞으로 이 조건을 충족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충족됐다는 평가도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하기도 하고.

사실 지금 전작권을 환수해도 우리 안보나 대북 억지력 측면에서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한 미군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도하는 곳이 한국군이냐 미국군이냐 하는, 이른바 '역할'만 바뀌는 것인데 또다시 연기 결정을 한 것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째가 미사일 방어체제(MD) 문제인데, 이번에 진도가 꽤 나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와 미국 MD와의 상호 운용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서로가 거의 단일한 체계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MD 편입에 직전 단계까지 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형식은 아니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편입된 것과 다름없는 셈인데, 형식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을 비롯해 이를 우려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한미일 군사협력 문제다. 지난 4월 26일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함께 연합사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는 한미일 3국 정보 교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상회담 이후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MOU) 체결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언급을 한 배경에는 오바마나 아베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한미일 3각 안보동맹에도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동북아 역내에서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번 CICA 때도 확인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협력을 비롯해 밀월 관계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 동맹을 강화하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동북아에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프레시안 : 오바마가 원래 한국에 오지 않으려다가 마지막에 순방 스케줄에 한국을 넣었다. 우리가 무리해서 오바마 방문을 유치하다보니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기보다는 우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 것 같다는 평가가 있다.

이수훈 : 오바마는 미·일 동맹이 아시아 안보의 토대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에 발을 담근 셈이다. 그래서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상당히 머쓱한 처지가 됐다. 한러 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대륙에 진출하겠다는 구상도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정부의 대외전략이 수미일관하게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을 추진하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그다음에 나오는 조치는 이와 상충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앞으로 러시아와 프로젝트가 가능할지 의문이고,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도 곧 방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중 양국이 '공동 미래선언'과 같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CICA 회의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대표로 나섰다는 것이 현 정부 대외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CICA는 우리가 정식 멤버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안보 신뢰 구축과 통합 등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에 갈 것이 아니라 이 회의에 참석했어야 했다. 본인이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인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가시화된 회의가 CICA인데 여기에 총리도, 외교부 장관도 아닌 통일부 장관을 대리로 보냈다는 것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실천적 의지가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CICA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천연가스 계약을 타결하면서 양국 협력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했다. 러시아는 이번 계약으로 매년 380억 제곱미터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한다. 이 계약을 실행하기 위해 양국 간 많은 실무적 접촉과 기능적 협력이 진행될 것이다. 이러다보면 양국 간 안보 동맹에도 상당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에 목을 매달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엑스포센터에서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마지막날 행사가 시작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대륙 국가들은 여러 기제를 통해 상호 협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대륙국가들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구상이다. 이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놓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할 생각 없는 미국, 부담스러워하는 중국 사이에서

프레시안 : 북핵 문제에 관해 미국은 여전히 중국이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수훈 : 현 상황에서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올해 시종일관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도 북핵 용납하지 않겠다,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한 다음에 중국의 역할이 더 발휘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중국 역할론으로 방향을 가지고 간 것이다.

북핵 문제가 초기에 불거졌을 때 북핵은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었다. 즉 북핵 문제는 북미 간 이슈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북핵 문제가 초기에 제기됐을 때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이제는 북핵 문제가 중국 문제인 것처럼 돼버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꾸 도발적 행위를 하면 중국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렇다고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의장국으로서 자리를 마련했고, 대화가 잘 안 풀릴 때 북한에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기도 했다. 중재안을 들고 나온 적도 있다. 물론 중국의 중재안에 대해 MB 정부 5년, 또 현 정부에서 계속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북핵 해결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6자회담을 통해 대화해보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또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은 측면도 있다. 협상 분위기 자체가 거의 없다.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북핵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나올 동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 역할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다. 당사국이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로 임명될 국가안보실장을 축으로 외교안보 진용이 다시 짜여질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 구성되는 외교안보팀에서 동북아 외교를 너무 한 쪽에 편중되게 해서는 곤란하다.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여러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외교 행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가 중국 문제처럼 돼버렸고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동력도 없다면, 당분간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남북 교류든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 정부는 선(先)비핵화, 후(後)남북교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수훈 :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에서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같이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의지가 없고 북핵 해결은 더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의 역할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훨씬 넓어진 측면이 있는데 북한과 미국, 일본을 잘 끌어들여야 한다. 외교를 이런 방향에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가 6자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창의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또 미국이 아예 6자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의 이러한 적극적 역할을 내심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대통령과 참모가 손발이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 우리가 역할을 발휘해서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돌리고, 이것이 선순환이 돼야 비핵화 진전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내치에서 어려움에 직면해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그것으로도 평가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사실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인적 배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 평생 군에 있던 분들을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할 위치에 포진시키면 오히려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 및 평화협력구상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시키겠다는 강한 동기를 갖는 것과 동시에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임무에 맞게 배치해 외교안보진용을 짜야 한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아닌 민간 교류는 정부 간 관계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장려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한일, 한중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남북 간 민간교류는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우리가 한미일 편에 서길 강요받았는데, 이를 극복하고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돌파구는 안정적인 남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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