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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민족? 문창극, 한국인을 거지 취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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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민족? 문창극, 한국인을 거지 취급하다니 [이정전 칼럼]<95> 동포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인물이 어떻게 총리 노릇을 할까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는 문창극 총리 내정자의 망언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의 말이 정말 옳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전문가들은 우리 민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이다. "문화는 정말 중요하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한국과 가나를 비교하다가 깜짝 놀랐다고 술회하고 있다. 1960년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은 아주 비슷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도 비슷했고 경제 구조도 비슷하였다. 두 나라 모두 제대로 만들어 내는 공산품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두 나라는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하였고 민주 제도를 착실히 다져가는 중이었던 반면에 가나는 그러지 못한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으로 처져 있었다. 세계의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한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가나는 왜 아직도 지지리 못사는가? 헌팅턴은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 반면,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뮤엘 헌팅턴, "문화는 정말 중요하다", <문화가 중요하다>, 새뮤얼 헌팅턴 ‧ 로렌스 해리슨 공편, 이종인 옮김, 김영사) 사실, 세계의 그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불과 30년 사이에 그렇게 기적적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만, 싱가포르 등이 우리나라와 함께 4마리의 용이라고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유리한 경제적 여건에서 출발하였다. 우선, 대만과 싱가포르는 화교의 막강한 재력을 업고 출발한 나라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몸뚱이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기적을 이룬 나라다. 이는 게으름과 의타심이 DNA에 새겨진 민족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업적이다.

▲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 ⓒ연합뉴스

문 내정자는 식민지 시대 일본이 남긴 기술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였고 이들을 지배하던 나라들은 기술과 인프라를 남기고 떠났다. 그런데 그런 많은 식민지 국가들 중에서 왜 우리나라만 기적적 경제 발전을 이루었을까? 아무리 기술이 많이 있고 천연자원이 많은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부지런함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헌팅턴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한국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삼았다. 한국인의 부지런함이나 우수한 노동력을 높이 평가하는 학자는 헌팅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정치가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칭찬하지 않았던가. 게으르고 자립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교육열이 높을 수 있겠는가? 세계 곳곳에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어느 곳에서나 우리 교포들은 극성맞은 악바리로 악명(?)이 높다. 게으름과 의타심이 우리 민족의 DNA에 새겨져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조국을 떠난 해외 교포들이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을 떨면서 잘 살 수 있게 되었을까? 문 총리 내정자는 여러 가지 변명을 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없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기 동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인물이 어떻게 총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문 총리 내정자의 망언은 게으름과 자립심 부족을 탓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은 조선 500년 허송세월을 한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하느님이 벌을 준 것이요, 한반도 분단, 6‧25 전쟁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나 신의 섭리 탓으로 돌리는 논리는 옛날부터 체제와 기득권을 옹호할 때 자주 애용되는 논리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그 좋은 본보기다. 이 저서에서 맬서스는 빈부 격차가 자연의 섭리이며, 따라서 빈민 구호는 이 자연 섭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주장을 폈다. 빈곤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빈민 구호에 극력 반대하였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장로인 문 내정자는 성직자였던 맬서스를 닮았다. 문 내정자는 무상 급식 정책을 식량 배급 타려고 줄을 서는 북한 주민에 비유하면서 이 정책에 극력 반대하였다. 맬서스 논리의 밑바탕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는 자연도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런 생각이 다윈의 진화론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대체로 극(極)보수 인사들의 마음 역시 은연중에 그런 생각으로 물들어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 우리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지배 계급의 타락과 부패, 빈부 격차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이다. 고려가 그래서 망했고 중국의 그 많은 왕조들이 그래서 망했으며 로마도 그래서 망했다. 우리가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다. 반대로, 한 나라가 흥할 때에는 국민의 화합을 일구어 냄으로써 국민 모두 신나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탁월한 리더가 늘 등장한다. 조선 시대의 이태조와 세종대왕이 바로 그런 지도자였으며, 중국의 당 태종 이세민, 송 태조 조광윤, 그리고 가깝게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총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나아가서 참된 국민의 화합을 다질 수 있는 인물이다. 대통령이 이런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니 총리라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게으름과 자립심 부족이 우리 민족의 DNA에 박혀 있다며 동포를 깔보고 가난한 사람을 거지 취급하는 인물이 어떻게 그런 화합을 일구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문 총리 내정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는 자체도 문제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문 총리 내정자를 칭찬하면서 그의 말이 백번 옳다고 맞장구치는 것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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