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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 부른 야권 연대, 진보 정당의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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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환멸 부른 야권 연대, 진보 정당의 자충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해고 노동자가 나선 선거, 그 결과에 대한 짧은 리포트
"7.30 재보궐 선거가 야권의 참패로 끝이 났다." 이 문장이 아마도 모든 이가 이의를 달지 않는 평가 지점인 듯하다. 다시 말해 '여권의 승리'가 아니라 '야권의 참패'라는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간간이 다뤄지는 재보궐 선거 평가에는 '진보 진영의 연이은 참패'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지난 6.4 지방선거에 이어 존재감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던 선거였다는 평들이 많다. 진보 정당 운동을 포기한 인사들까지 동원해 이번 선거가 '진보 진영은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줬다며 진보 정치와 노동자 정치에 대해 사망 선고까지 내리고 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인사이드 경제'가 가끔 정치 분야로 외도를 하긴 하지만, 전문가들과 거시적 영역에서 논쟁을 벌일 만큼의 내공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 매우 이기적인 판단이지만 - '인사이드 경제'가 그나마 자주 다뤄온 쌍용차, 그곳의 해고 노동자가 나섰던 평택을(乙) 국회의원 재선거라는 미시적 영역에서 짧은 분석 보고서를 한 편 써보려 한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도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얘기를 풀어보려 한다.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와 관련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란, 기본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 뉴스와 정보들이다. 그중에서도 2가지 수치화된 정보가 있는데 하나는 이번 선거 개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에 앞서 언론 기관들이 실시한 여론 조사 데이터들이다.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여기서 주류 언론이 거들떠보지 않는 부분, 즉 무소속 김득중 후보가 보여준 결과물을 해부해볼 생각이다. 이미 기호 1번과 2번이 얻은 표에 대해서는 차고 넘칠 만큼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으니 거기에 하나 더 보탤 이유는 없지 않겠나. 지금부터 공개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무소속 노동자 후보를 향한 민심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추론해 보도록 하겠다. (관련 기사 : '김득중의 5퍼센트', 무능한 정치가 빚은 또 하나의 비극)

▲ 7.30 재보선 경기 평택을에 '무소속 노동자 진보 단일 후보'로 출마한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쌍용차 공장 안을 찾아 동료들을 만났다. ⓒ김득중 선거대책본부

5.64퍼센트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평택을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를 찾아보면 5.64퍼센트(3382표)라는 김득중 후보의 최종 득표율을 볼 수 있다. 새누리당 유의동 후보가 52.06퍼센트, 새정치민주연합 정장선 후보가 42.30퍼센트를 얻어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5.64퍼센트. 불과 선거 한 달 전에 출마 결정을 내리고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된 선거라는 점에서 보자면 '선전했다'고 봐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새누리·새정치연합 양당 정치가 1:1 대결을 펼치는 구도에서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2004년과 2008년 총선 당시 평택을(乙)에서 도전한 후보들이 각각 11.8퍼센트와 8.1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진보 정당의 분열, 민주 노조 운동의 약화로 인해 2012년 총선에는 아예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는 점을 정상참작 해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수준에서 분석을 멈추거나 끝내선 곤란하다. 하나의 지역구라 하더라도 노동자 밀집 지역, 도농 복합 지역, 어촌이나 항구 인접 지역 등 특징적인 읍면동에서 투표 행태까지 분석해 봐야만 선거에 드러난 민심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평택을 지역구의 세부적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선거구를 읍면동 단위로 쪼개 노동자 후보의 지지율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의 선거만 봐서는 읍면동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과거 평택을 지역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한 적 있는 2004년 총선(김용한 후보), 2008년 총선(이현주 후보)에서 나타난 지지율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오민규

위 그래프를 보면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 2004년부터 3번의 진보 후보가 도전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전반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둘째, 진보 후보들 모두 공통적으로 안중·포승에서 강점을 보인 반면, 팽성·오성에서 매우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셋째, 2014년 재선거에 출마한 김득중 후보의 경우 청북에서 매우 인상적인 지지율을 보여주었다. (위 득표율은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2004년·2008년의 경우에는 부재자 투표가 읍면동별 투표에 반영되어 있지 않고, 2014년의 경우에는 거소 투표와 사전 투표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선관위가 이 투표들을 읍면동별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한 지점이다. 하지만 전체 추세를 보는 데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

조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다

우선 그래프가 독자들의 눈에서 멀어지기 전에,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이 기존 민주노동당과 달라지는 특이 지점부터 정리해보도록 하자. 김용한 후보(2004년), 이현주 후보(2008년),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이 보여주는 추세선이 대부분 비슷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라지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우선 앞에서 밝혔듯이 청북에서 매우 인상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안중·포승 지역에서 과거 추세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비전1동과 비전2동의 경우, 과거 추세와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강한 반등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들 특이 지점 4곳에 대해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을 붉은 색으로 강조해 보았다.) 안중·포승 지역에서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 지역은 평택의 대표적인 노동자 밀집 지역이다. 특히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만도 평택공장을 비롯한 대기업 노조가 들어서 있는 사업장의 조직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과 2008년에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은, 이들 조직 노동자의 집결된 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이 이 지역에서 과거 추세에 비해 많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추세에 따르면 안중에서는 최소한 두 자릿수 지지율을 보여야 마땅하다. 포승에서는 최소한 전체 평균 득표율(5.64퍼센트)보다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어야 하는데 4.66퍼센트에 그치고 말았다. 과거 민주노동당도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라는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고, 김득중 후보 역시 민주노총의 '전략 후보'로 선택된 바 있기에 민주노총의 지지·지원이라는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중·포승 지역의 선거인 수도 별 차이가 없어서, 주민의 구성이 달라졌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해석은 조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평가뿐이다. 물론 민주 노조 운동 입장에서는 인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지점이다. 하지만 객관화된 수치가 분명히 말해주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분 나쁘지만 민주 노조 운동과 노동자 정치 세력화 운동은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신도시로 유입된 젊은 층의 지지가 확인되다

그렇다면 반대로 청북 지역, 그리고 비전1·2동에서 보여준 반등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 하나가 필요하다. 2008년 총선 당시 평택을 선거구의 유권자 총수는 16만4465명이었던 반면,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의 경우 무려 3만7000명 이상 늘어난 20만1765명에 달했다. 그런데 위 12개 읍면동 중에서 2008년 이후로 1만 명 안팎의 유권자가 늘어난 곳이 딱 3곳 있는데, 그게 바로 청북면과 비전1동, 비전2동이다. 기막힌 일치가 아닌가! 평택 지역에 새로 유입된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김득중 후보는 과거 민주노동당에 비해 인상적인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오민규

김득중 후보의 고향이 바로 청북면이다. 그는 이곳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45년 동안 평택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개표 당일 청북 지역에서 높은 지지율이 나왔을 때, 이른바 '고향 프리미엄'이 아닐까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청북은 과거 김득중 후보가 살던 농촌 지역이 아니다. 신도시가 개발되어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주로 30대 젊은 층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이기 때문에, 이곳에 입주한 계층이 아주 가난한 노동자층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 사업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 부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득중 후보는 전통적인 조직 노동자 층의 지지는 과거보다 덜 얻은 반면, 미조직 젊은 노동자층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투표소별로 집계한 결과 역시 이 사실을 입증해준다. 김득중 후보는 자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청북 1,2 투표소에서는 고작 4퍼센트대의 지지를 얻은 반면, 신도시 유입 층이 많은 3,4,5 투표소에서 10~14퍼센트대의 안정적인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 즉, 고향 프리미엄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이다. 비전 1동과 2동은 어떤 계층이 밀집되어 산다고 딱 꼬집어 얘기하긴 어려운 지역이다. 여러 계층이 복합적으로 몰려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김득중 후보의 득표율이 인상적인 수준의 특이점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예상되는 추세선의 위쪽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청북에서 보였던 특징, 즉 새롭게 유입된 젊은 층의 지지가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을 높여줬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여론 조사에서 동일하게 확인되는 특징들

각 정당의 후보들이 확정되면서 평택 권역의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중앙 언론사들도 여론 조사를 실시하며 선거 관련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여론 조사의 경우 중앙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사전 신고를 하고, 여론 조사 결과 역시 세부 내용을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누구나 각 지역에서 언론사와 여론 조사 기관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열람할 수 있다. 평택을 선거구에 대한 여론 조사로 총 4개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경인일보>가 7월 8~9일에 실시한 것, <중앙일보>가 13~14일에 실시한 것, <평택시민신문>이 18~20일에 실시한 것, 마지막으로 KBS가 22~23일에 실시한 조사이다. (물론 언론사가 직접 한 것도 있고, 특정 여론 조사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것도 있다.) 이들 4개의 여론 조사는 평택을 선거구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무소속 김득중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각각 성별, 연령별, 직업별, 지역별, 지지 정당별, 투표 의향별로 세분화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그중에서 '인사이드 경제'가 주목한 것은 연령대별로 김득중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어떻게 나오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오민규

ⓒ오민규

ⓒ오민규

4개의 여론 조사 결과를 활용해 20대, 30대, 40대의 김득중 후보 지지율 데이터를 그래프로 나타내봤다. 각각의 그래프에서 푸른색 선이 연령대별 지지율을 나타내고, 까만 점선이 각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김득중 후보 전체 지지율을 나타낸다. 50대와 60대의 경우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이 1~2퍼센트대로 거의 바닥 수준을 기록해, 그래프로 나타내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20, 30, 40대만 그려보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분명히 확인되는 지점이 있다. <중앙일보> 조사에서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낮게 나온 점만 제외하면, 나머지 조사에서 20~30대의 경우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이 안정적인 두 자릿수로 나오고 있다. 반면 40대의 경우 <평택시민신문> 조사 결과만 제외하면 거의 지지율 평균과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론 조사에서 나오는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은, 20~30대에서 한껏 올려놓은 것을 50~60대에서 거의 다 까먹고, 40대가 그 평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요약해볼 수 있다. 이 결과 역시 예상을 뒤엎는 대목이다. 민주노총 소속의 조직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40대에서 지지율이 두 자릿수가 나와야 정상인데 말이다. 김득중 후보 자신의 연령대가 40대 중반 아니던가. 오히려 노동조합 경험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20~30대의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 것도 특이한 지점이다. 앞서 투표 결과에서 추정했던 것처럼 전통적인 진보 정당 지지층인 조직 노동자들의 지지율이 후퇴하고, 미조직 젊은 노동자층의 지지율이 늘어났다고 본 것과 동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여론 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특이한 양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현실에 가까운 현상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5.64퍼센트

이제 다시 한 번 최초에 제시한 숫자 5.64퍼센트로 돌아가 보자. 김득중 후보가 보여준 특이점만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도 마주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당 소속도 아닌 무소속 신분으로 짧은 기간 준비한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2004년, 2008년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결과에 비해 왜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선 안 된다. 그 이유 역시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뽑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진보 정당의 분열과 타락이 조직 노동자들 내에서 노동자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불러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단순히 분열만이 아니라 '타락'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핵심에는 2010년 지자체 선거부터 본격화된 이른바 '야권 연대' 정치가 놓여 있다. 노동계급 대중에 굳건히 뿌리내린 독자적 정치 세력화의 길이 아니라, 야권 연대라는 수많은 편법과 변칙이 노동자 정치를 병들게 했다. 본래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민주노동당을 건설할 때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의결하게 된다. 사실 노동조합이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민주적 원리에도 맞지 않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 원칙이 대의원대회라는 최고 의결 기구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민주노총으로 뭉친 노동조합이라면 최소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는 분명한 계급의식이었다. 만에 하나 간부들이 그런 짓을 한다면 범죄 행위로 간주해 단호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민주적 원리에도 안 맞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배타적 지지' 방침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민주적 원리조차 훼손해가며 지켜주려 했던 노동자 정치의 원칙을, 이른바 '야권 연대'라는 미명 아래 진보 정당들이 앞장서서 배신하는 역사가 시작되고 만다.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대를 선택하게 되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손가락 두 개를 흔들며 '기호 2번 한명숙'을 외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배타적 지지' 방침이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 낯 뜨거운 범죄 행위가 말이다. 어안이 벙벙한 조직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동안은 찍지 않았던 '기호 2번'을, 투표소에 가서 어색하게 찍게 된다. 그러나 진보 정당에 대한 의리만은 버리지 않았다.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광역 및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조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기호 2번'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또는 진보신당, 사회당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진보 정당들은 노동계급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의리마저 배신하고 만다. '기호 2번'의 본류는 아니지만 하나의 지류라 할 수 있는 국민참여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으로 한 몸이 되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비정규 악법을 밀어붙인 노무현 정권에 봉사했던 바로 그들과 말이다. 그런 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제 거리낌 없이 '야권 연대' 정치를 밀어붙이게 된다. 2010년만 해도 어색해하던 노조 간부들 일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기호 2번'과 몸을 섞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한 그룹은 문재인 캠프로, 또 다른 그룹은 안철수 캠프로 떠나갔다. 심지어 민주노총·금속연맹을 비롯한 산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민주노동당 건설에 앞장섰던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을 쳐다보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기호 1, 2번은 절대로 찍어선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던 그들이 흔드는 손가락 두 개를 보는 심정이….

낮은 투표율

그런 심정을 가진 노동자들 상당수가 노동자 정치에 걸었던 희망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선거 때만 되면 신이 나서 가족과 일가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노동자 후보를 찍으라고 난리를 치던 그 모습을 이제 구경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투표장으로 가는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신이 나는 게 아니라 밀린 숙제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탓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득중 선거대책본부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투표장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준비 부족과 미숙함, 그리고 노동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책적 내용을 내어놓지 못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을 투표장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정책적 내용과 준비가 무엇이냐 하는 점은 '인사이드 경제'가 다룰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난다. 아니, 벗어난다는 말로 일단은 도망가도록 하겠다. 여하튼 그 내용과 준비가 무엇이냐를 떠나서 '인사이드 경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실증적 데이터를 통해 노동자들이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분명한 데이터가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조직 노동자 밀집 지역이자 전통적인 진보 후보 지지층인 안중 지역만 따로 떼어놓고 투표율을 비교해보면 된다. 이것 역시 2004년, 2008년 선거 데이터까지 함께 비교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 표는 3차례의 선거에서 안중읍의 투표소별 투표율과 진보 후보의 득표율을 나타내본 것이다. 비교를 위해 안중읍 전체의 투표율과 평택을 전체 투표율을 함께 기입했다. 다만, 안중읍의 투표소별 투표율은 부재자 투표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부재자 투표가 반영된 평택을 전체 투표율보다는 낮게 나온다. 따라서 평택을 전체 투표율보다는 안중읍 전체 투표율과 투표소별 투표율을 비교하는 것이 좀 더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오민규

어느 후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강세 지역에서 지지층의 투표 바람몰이를 통해 부동층을 끌어당기게 된다. 따라서 특정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는 지역에서는 투표율도 덩달아 뛰는 양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김용한 후보는 안중읍 4,5 투표소에서 무려 20~30퍼센트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지역의 투표율도 안중읍 전체 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4~9퍼센트포인트가 높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총선에 나선 민주노동당 이현주 후보의 선거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이현주 후보는 안중읍 7,8,9 투표소에서 20퍼센트대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곳의 투표율 역시 안중읍 전체 투표율에 비해 2~5퍼센트포인트 높게 나타난다. 그만큼 핵심 지지층인 조직 노동자들이 주변의 부동층을 함께 투표장으로 데려간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번 재선거에서 김득중 후보의 선거 결과에서는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8퍼센트 이상을 득표한 투표소가 안중읍 5,7,8,9 투표소로 나타났지만, 이곳의 투표율은 안중읍 전체 투표율과 거의 비슷하다. 5,9 투표소의 경우 오히려 평균 투표율보다 낮게 나타났다.

ⓒ오민규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김득중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은 청북면을 봐도 똑같이 나타난다.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청북 3,4,5 투표소에서, 4,5 투표소의 투표율은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김득중 후보의 지지층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지지자들이 부동층을 데려가기는커녕 일부는 아예 투표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 정치의 재(?)구성

지금까지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노동자 후보 김득중에 보여준 민심과 표심이 무엇인지 추론해 보았다. 물론 아마추어가 짚어본 것이라 여러 대목에서 부족하긴 하겠지만, 우리가 어떤 지점을 씁쓸하게 돌아봐야 하고 어떤 점을 희망으로 짚어야 하는지를 얘기하려 했다. 최소한 오늘의 노동자 정치가 처한 현실은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던 시절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환멸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지, 그리고 소규모이긴 하지만 미조직 젊은 층이 해고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 후보에게 다가오고 있는 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확대할 것인지, 노동자 정치의 재구성은 이런 대목을 반드시 포함해야 할 것이다.

후설(잡설?)

'인사이드 경제'가 정치 부문으로 외도를 한 김에 한 번만 더해보려 한다. 다음 번에는 마찬가지로 평택을 선거구라는 미시적인 영역에서, 야권 연대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짚어볼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비판과 지적, 토론이 뒤따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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