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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돈 때문에 아이를…" 뒤늦게 깨달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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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돈 때문에 아이를…" 뒤늦게 깨달은 진실 [주간 프레시안 뷰] 세월호 가족들의 소박하고 절절한 이야기
'0416 기억저장소'(가족들의 요청이 있어 세월호 기억저장소의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2호관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네요. 경기도 안산시 와동에 있는 '이웃'과 함께 고잔동·와동의 사랑방이 되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곧, 그리되리라 믿고요. 오늘은 그간 진도에서,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들은 이야기를 일부 소개하려 합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0416 기억저장소'를 통해 더 풍성해지기를 바라면서요.

소박한 밥상의 행복
희생자 가족의 말을 듣다보면, 참으로 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밥상 이야기지요. 일상의 고단함에 평화롭기만 했던 밥상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소박한 밥상이 너무나 그립다고,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고, 어느 어머니가 이야기합니다. 담담한 어조에서 무한한 사랑과 허망한 마음이 고스란히 읽히지요. 가슴이 싸합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 악다구니하며 산 것이 후회되지요. 안 그랬다면, 아이에게 좀 더 편안한 사랑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 잘난 '고급 문화'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메이커'가 아니면 안 입었답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중형차에 선글라스 끼고 '폼' 잡으며 살았단 말입니까. 게다가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하는 학원까지. 사실 검소하게 살면 우린 얼마든지 착해질 수 있습니다. 고치는 값이 더 들어도 되도록이면 새것을 사지 않으려는 사람도 꽤 많답니다. '적극적 가난'까지는 아니어도 잘난 '고급 문화'의 때를 벗으면, 우리는 편안하고 착하게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희생자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돈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먹고살 만큼 법니다. 아이만 돌아온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누가 감히 이토록 아름다운 그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나요. 이런 세상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뜩 스칩니다. 출발은 삶의 지향과 방법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고급 문화'를 떨쳐버리고, 노동의 기쁨으로 번 돈으로 행복을 깨알같이 가꿔가는 그런 삶을 그려봅니다. 검소한 사랑의 삶이라는 담론이지요.

ⓒ프레시안(최형락)

사랑을 나누고 서로 감사하는 마음
진도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사랑'과 '감사'였습니다. 하늘로 간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는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리에게도 모두 큰 울림이었지요.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사랑을 자연스레 서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밥차에서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하는 자원봉사자에게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하고 진심으로 인사합니다. 처음에는 체육관 밖으로 나오지도 않던 그들이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곳이 바로 밥차였습니다. 조금 지나자 안산에 다녀온 분이 반찬을 챙겨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싸온 반찬이나 김치를 나눠주러 돌아다닙니다. 한마디 말보다 더 진한 사랑의 표현이었지요. "이거 먹고 우리 모두 힘내야 한다"는 말까지 보탭니다. 그 광경을 본 저는 자주 눈물을 훔쳤지요. 그 감동 덕에 저도 전보다는 사랑을 나누려 애쓰게 되었답니다.
당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랑을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사랑과 감사의 나눔을 잊고 살았습니다. 고립을 택했고 비평과 편 가르기에 익숙해져버렸지요. 희생자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하지만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에서 그들은 서로 위로하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해경과 잠수사가 미울 법한데도, 가족들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진도체육관에서 잠을 자는 이들은 매일 새벽 팽목항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오릅니다. 그때마다 주머니에 주섬주섬 뭔가를 넣습니다. 과자건, 초콜릿이건, 작은 과일이건 할 것 없이 욕심을 냅니다. 바지선에 가서 잠수사에게 고맙다고, 수고한다며 건네주고 싶어서겠지요.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해경의 수색 방법을 비판하고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또 특별법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현장을 지키고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는 사랑 나눔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 그들에게서 사랑과 감사의 삶이라는 담론을 배웁니다.

착한 기업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하지요. 가족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중 하나는 "그놈의 돈 때문에 아이들을 수장시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철학자나 정치가보다도 심연에서 나오는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이윤만 추구하는, 돈만 아는 기업은 잘못됐습니다. 그러니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르치는 교과서는 잘못된 것이지요. 결국 이런 잘못된 정의 때문에 우리는 청해진해운과 같은 기업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그 결과, 세월호는 침몰했고요.
한 아버지가 얘기하더라고요. "회사 일이 조금만 덜 고되었다면 술도 덜 먹었을 것이고, 그러면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결국 그러지 못하고 하늘로 보내고 말았다"고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하는 자가 좋은 물건을 쓸 사람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이었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회한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교육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착한 기업 담론도 가족들에게는 쉽고 명쾌합니다.

정직
희생자 가족이 그토록 심하게 화를 냈던 것은 '거짓' 때문이었습니다. '배도 여러 척 동원했고 헬기도 띄웠고 잠수사도 많이 대기시켰지만, 결국 바다에 들어간 것은 몇 명뿐이었고 수색 성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하고 해경이 말했다면,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겠지요. 마치 대한민국 국력을 모두 동원한 것 같은 발표만 듣다, 사고 해역에 나가 현장을 본 가족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배신감과 거짓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배에 남아 있는데,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대통령에게 가겠다고 진도대교에서 대치했던 건 당연하지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진도체육관이나 팽목항 밥차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정부의 거짓말에 대한 성토입니다.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믿을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정직의 가치'를 잊고 산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기본적인 가치를 언제부터 이렇게 쉽게 잃어버리게 된 건지 놀랄 지경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제대로 자각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또 놀랍고요. 정치권이나 정부 인사를 보면, 어떤 말을 할 때 자신에게 유리하게 포장하는 게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 혹은 의미 있는 '전술적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지요.

상관이 하급자의 성과를 가로채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든지, 룸살롱에서 술 먹고 엉뚱한 영수증을 받아 제출한다든지, 사실을 각색해 허위 보고를 한다든지. 이런 문화는 정직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不)정직의 현상'이 우리 사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거짓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제도와 문화가 절실하지요. 정직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작지만 큰 담론입니다. 믿지 못하는 정부, 믿지 못하는 정치인, 믿지 못하는 회사, 심지어는 믿지 못하는 선생님. 부정직은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종기 같은 존재입니다.

수평적 관계
희생자 가족은 매일같이 진도체육관에서 공무원을 봐야 했습니다. 모든 공무원을 싸잡아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문화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가족들은 "공무원은 항상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만 한다"고 합니다. 뭘 요구하면 '노력해보겠습니다' 하고는 보고하느라, 의사 결정을 위해 협의하느라 세월을 다 보냅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책임질 일은 아예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도대체 우리 공무원 사회가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이렇게 무능한지 처음 알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공무원 자신에게도 참 불행한 일이지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진도체육관에 있으면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장차관은 물론이고 국장급 공무원만 '떴다' 해도 공무원들 전화에 불이 납니다. '지금 어디 도착했다. 몇 명이 가고 있으니 어디로 나와 안내하라'는 식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몇 사람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할 때면 '어느 고위 공직자가 진도체육관에 왔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보고 있자니 '참, 안됐다' 싶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그 시간, 그 정력이면 시민을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더 움직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평적 관계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 세월호 참사 초기,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은 눈에 띄는 '특권 의식'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국 지난 7월 17일 면직 처리됐다. '서남수 황제 라면'으로 불린 사진. ⓒ'채널A' 화면 갈무리

'아드라코리아'라는 종교 단체의 지원으로 팽목항에서 밥차를 운영하던 자원봉사자가 지난 5월 말 진도 읍내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동승하고 있던 자원봉사자가 저와 가까운 사람이라, 밤 10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우선 구급차를 태워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해놓고, 보건복지부 천막을 찾았습니다. 쓰러진 자원봉사자는 모두 잘 아는 사람이니, 한국병원에 있는 복지부 담당자에게 연락해 치료 등에 차질이 없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알았다'라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여 분 후 복지부 공무원이 다시 제가 있는 기록 보존 천막에 와서 하는 말이 "외부에서 자원봉사자가 치료를 받는 경우 이를 지원할지 여부에 대해 결정한 바가 없어 내일 회의를 한 후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겁니다. 온 힘을 다해 분노를 다스렸습니다. "알겠습니다만 좀 서둘러주시고 중간중간 진전 상황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부탁하며, 다음 날까지 기다렸습니다. 결국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현장 공무원에게는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보고서나 쓰고, 본부에서는 탁상에 앉아 회의하고 근거 규정을 찾아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윗선의 '의중'을 확인해 결정해야 하는 사회. 이런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입니다. 가족이 공무원을 답답하게 여기며 자주 역정을 내는 건 당연합니다. 담당 공무원에게 상당 수준의 결정권이 주어져야겠지요. 또 규정보다 요구하는 사람, 상황 등을 중시해야 할 것이고요. 그뿐만 아니라, 결정하고 행한 자는 스스로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수평적 관계, 민주적 관계의 기본입니다. 희생자 가족은 이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수평적, 민주적 관계의 담론이 일반화되는 사회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

꿈, 재능, 자주성
특히 요즘 와서 제일 많이 나누는 이야기가 '아이들의 꿈과 재능'에 대한 거더라고요. 서촌갤러리 장영승 대표가 기여한 바 컸습니다. 예슬이의 꿈과 재능을 보고 '우리 아이도 저런 꿈과 재능이 있었는데…' 하고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많이 안타까워합니다. '아이의 꿈과 재능을 더 살려줬더라면, 기쁘고 신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지요.

가족들이나 하늘로 간 아이들이나 모두 이상한 교육 체계의 희생자입니다. 아이를 잃고 보니 교육 체계에, 입시 지옥 구조에 희생당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재능에 맞게 스스로 꿈을 이루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커지는 법입니다. 이렇게 후회하게 만든 주범은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이고요.
안산에서는 교육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입시 교육 체제 아래서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만, 중심은 아이들의 재능과 꿈을 이뤄주는 교육 운동을 해보자는 겁니다. 전국의 많은 전문가가 재능을 기부하고 학부모와 아이들이 모여 재능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결합하는 형태가 되겠지요. 잘만 하면 몇몇 아이들이라도 재능을 살려 꿈을 향해 나가는 그런 실천을 해볼 수도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주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부해라, 말 잘 들어라'라는 가르침이 사랑인 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공부도 해야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합니다. 또 그 결정을 스스로 하도록 놔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가족들은 희생된 아이의 형제, 자매를 그렇게 키우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이 일반화돼 아이들 모두 더 행복하게 자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주성과 재능을 중시하는 교육 담론도 희생자 가족이 이야기하는 중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안산에서 실천이 지속된다면, 이런 담론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불씨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픔을 딛고 이뤄가는 세상, 그 작은 세상이 우주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박하지만 진실한 또는 절절한 담론이 점차 세상을 변화시켜 갈 큰 담론으로 성장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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