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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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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주간 프레시안 뷰] '진보된 일상'으로 돌아가야
고잔동 풍경

가족들이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앞 천막에 모이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 때문이지요. 분향소에 걸린 아이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다시 가족용 천막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를 반복합니다.

"학교가 끝날 시간이면 둘째 아이 건사 때문에 할 수 없이 화랑유원지를 나서요.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도 서글프고 쓸쓸하기만 한지…. 둘째에게 밥을 차려주기는 하지만,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평생을 해온 일인데도, 하늘나라로 간 아이 때문인지 매번 낯선 느낌이에요.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마치 구름위에 둥둥 떠다니듯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습니다.

둘째가 방으로 들어가면 먹먹한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쳐봅니다. 남편은 오늘도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 농성장에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목청껏 요구해도 성이 풀리지 않아요.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으니, 그럴 밖에요.

그러다 현관을 나서면, 어느덧 호프집. 언제나 그렇듯이 몇몇 엄마들이 모여 맛도 없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켭니다. 그리고는 아이 이야기, 나라 이야기 등 '특별법 싸움에서 그건 잘했어', '아냐 이런 점은 문제가 많아'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는 않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하는 갈망이 용솟음칩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밤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합니다. 내일 아침 일찍 목포 재판장으로 가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고…. 자다 깨다 뒤척이기를 반복하다 새벽이 돼서야 잠시 눈을 붙이지요. 목포로 가는 버스에서 겨우 부족한 잠을 채웁니다."

고잔동에 사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누군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이들의 일상을 빼앗는가.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무능력이 이렇게 싫을 수가 없습니다. 일상을 빼앗긴지 무려 6개월이 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온 몸에 힘을 빼고 나지막이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이것이 고잔동, 와동, 선부동의 풍경입니다. 세상이 서서히 잊으려 하는 지금, 희생자 가족들은 마음속 전쟁이 한창이랍니다.

▲ 4월 19일 자 '손문상의 그림세상'. ⓒ프레시안

왜 그러냐고요?

유민 아빠가 왜 단식을 시작했냐고요? 우리는 단식까지 하는 그를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특별하게 봤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달랐습니다. 가족들 대부분은 유민 아빠의 행동이 그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일종의 공감이지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해야 했고, 유민 아빠 역시 그런 선택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농성을 하다가 단식을 결정할 때 가족들끼리 논의해서 역할을 나누더군요. 그때 유민 아빠는 광화문에서 단식하는 역할을 맡았고, 하다가 보니 제일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사실 더 중요한 건 유민 아빠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과정입니다.

김영오 씨는 아이를 찾아 장례를 치른 다음 직장에 복귀했었습니다. 얼마 전 정규직이 된 터라,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수시로 유민이가 떠올라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왜 유민이가 그렇게 갑작스레 죽어야만 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지요. 유민 아빠에게 정규직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우리 모두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돈을 많이 벌어 그동안 아이들에게 못해줬던 것을 맘껏 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아빠노릇 제대로 한번 하고 싶었을 겁니다.

마음의 부대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민 아빠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왜냐고요? 세상이 유민 아빠를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억울해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 아닙니까. 가족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비정한 세상 때문에 그들은 매일같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유민 아빠는 결국 휴직했고, 안산으로 돌아와 국회 농성에 참여했다 처절한 단식투쟁을 선택하게 된 겁니다.

유민 아빠의 단식은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든 건 세상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왜 특별나게 그러느냐'고 말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유민 아빠도, 다른 가족들 대부분도 항상 하는 말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입니다.

아이 방을 바꾸고 싶은 마음

진도에 있을 때부터 만난 아빠 한 분이 안산 분향소 유가족 부스 앞에서 담배를 한 대 물며 말했습니다. 아이 방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해서 방을 고치고 싶다고 말입니다. '0416 기억저장소' 일로, 건축가들과 일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내게 방을 새로 꾸미는 일을 부탁하고 싶었던 거겠죠. 난 놀라서 '그래서는 안 되며, 아이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옳다'고 설득했습니다. 슬픔과 분노의 기억을 상징과 실천으로 극복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아이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마음에 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부재의 슬픔을 상징화하라는 거였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스스로의 삶을 더 성장시켜가는 실천'이라는 논리를 그에게 들이댔던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 바로 후회했습니다. '어디서 선생질이야!' 하는 비난이 귓가를 맴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상징과 실천으로 승화시키는 건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많은 지원과 함께 하는 이들의 도움이 동반돼야 실제로 가능한 일이고요. '상징화의 방법' 역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꼭 아이 방을 그대로 놔두고 견뎌야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점을 무시하고 당위론만 주장한 꼴입니다.

실제로 아이 방을 바꾸고 가구 배치도 새로 한 분이 있습니다. 아예 이사를 간 경우도 있고요. 그들은 과거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미안해하며,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처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이상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누가 그들에게 '정상적인 일상으로의 복귀'를 요구할 수 있습니까. 가족들에게는 지금 비정상이 정상이라는 점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들이 정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할 바를 하고, 가족들 스스로도 슬픔을 가라앉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중에 그 아빠와 마주쳤을 때 "그때는 청을 제대로 듣지 못해 죄송했다"고 말했더니, 밝게 웃으며 "정돈 좀 하고 벽지만 발랐는데도 훨씬 괜찮아졌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더군요.

악플을 검색하며 밤을 새우는 성호 누나

성호 누나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졌지요. 그래도 가족의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꼭 다시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호 누나야말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의 여린 그녀가 이제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현장 실천가가 되어가고 있답니다.

워낙 마른 체질에다가 눈이 퀭해서 볼 때마다 걱정이었답니다. '성호 엄마·아빠도 열심인데 누나까지 저렇게 밖으로 돌면, 집에 남은 동생들은 어쩌나? 건강이 나빠지는 건 아닌가? 겉으로는 잘 견디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타들어 갈 텐데, 혹 상처가 너무 깊어만 가는 거 아닌지…' 등. 그래서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어? 또 늦게 잔거 아냐? 화가 차서 힘든 거 아냐?" 하고 물었습니다.

성호 누나는 한동안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악플을 검색해 찾고 정리하는 일을 했었죠. 어처구니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꾸 보다 보면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그녀에게 꽂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심정으로 성호 누나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의연했어요. 문자 그대로 외유내강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걱정하는 날 보며,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시는데 걱정까지 끼쳐 죄송하다"고 인사합니다. 그리고는 또 악플을 검색해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하는 동시에 국회, 광화문, 안산을 수도 없이 오가는 그녀가 어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호 누나는 예상을 뛰어넘어 점차 안정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악플 검색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대신 가족대책위원회가 운영하는 '0416 TV' 촬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꼬박 새는 일도 줄었고, 표정과 목소리에 건강함이 묻어납니다. 물론 젊은 나이에 견디기 힘든 마음의 상처는 깊이 남아 있겠지만요.

하지만 그녀는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한 듯합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실천 영역을 하나씩 개척해하고, 그 실천을 통해 다시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내년에는 복학도 해서 학생으로서의 일상도 서서히 찾을 것이고, 또 세월호 참사 가족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도 안정적으로 해 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영정을 품에 안은 부모의 표정은 어떤 단어로도 묘사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최형락)

진보된 일상으로

세월호 유가족에게 미안해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비교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내 일상도 깨져 힘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가족들 가까이에서 함께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답니다. 고잔동 '0416 기억저장소'를 책임지고 있는 김종천 사무국장은 5개월 이상 본업도 팽개친 채 노숙자처럼 살고 있지요. 늦은 밤, 가끔씩 전화해 힘들다고 하소연하곤 합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해도 역시 사람이니 어찌할 수 없이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 모두의 일상을 흩트려 놓은 건지도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고통, 이 지루한 싸움의 과정, 그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작지만 아름다운 담론,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 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해 새롭고 가치 있는 일상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성호 누나가 한 걸음씩 성장하며 아픔을 딛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려 애쓰듯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일상을 만날 수 있겠죠. 이전과는 달라진 일상, '진보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길게 싸워 사회를 하나씩 고쳐가는 일상, 그 실천을 통해 하늘로 간 아이와 그나마 편안하게 대면하는 일상,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안하고 도우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상으로 말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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