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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으로 끌려간 왕자들, 슬픔이 큰 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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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으로 끌려간 왕자들, 슬픔이 큰 병이 되다 [낮은 한의학] 효종의 이명 ①
효종은 인조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다. 맏아들 소현세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고 나서, 인조의 뒤를 이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이 왕권을 계승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효종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며느리 강빈, 손자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

효종은 청을 공격하자는 '북벌론'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 효종 하면 건강한 강골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록에 나오는 효종은 강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즉위 초부터 매년 감기를 앓아 왔으며,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재위 4년째부터 귀 울림, 즉 이명의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당시 조선의 의관들이 감기를 비롯한 여러 질병에 어떻게 대응했지를 볼 수 있다. 더구나 효종의 증상과 처방에 따른 치료 효과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효종의 실제 건강이 어땠는지도 덤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감기, 소갈증으로 고생하다 종기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은 효종의 건강을 이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재위 4년(1653년) 4월 24일, 감기를 오랫동안 앓던 효종은 이명 증상을 호소한다. 효종은 즉위 초부터 유독 감기에 자주 걸렸는데, 이번에 이명을 유발한 감기는 재위 3년 12월 6일부터 수개월을 끌어온 오래된 증상이었다. 효종의 감기는 기침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즉위년(1650년) 8월 1일의 감기 치료 기록은 왕의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효종은 "원기가 부족하고 피부가 치밀하지 못한" 상태였다. 청수영폐탕, 해표이진탕, 구미강활탕, 소시호탕 등 감기약과 기침약이 계속 처방되었지만, 효종의 감기 증상은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지럼증과 대변을 자주 보는 설사 증세가 감기 후유증으로 도진다.

4월 18일, 감기가 다시 도지자 열을 내리는 귤피죽엽탕과 시호사물탕이 처방된다. 이 약 때문이었는지 효종의 열은 내렸다. 하지만 효종은 24일에는 이명 증상을, 5월 2일에는 어깨가 당기면서 노곤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호소한다. 설사 증세도 다시 나타났다. 이런 증상은 삼백탕을 처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호전된다.

감기뿐만이 아니었다. 효종은 소갈병도 앓았다. 즉위년(1650년) 2월 24일 황금탕, 재위 2년(1651년) 3월 12일 청심연자음, 재위 3년(1652년) 6월 4일 양혈청화탕을 투여한 기록은 그 증거다. 이 처방은 <동의보감> '소갈문'에 제시된 처방을 효종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소갈을 이렇게 해석한다. '소(消)'는 태운다는 뜻이다. 몸속의 진액이 소모되어 부족해지면서 윤기가 없어지는 증상을 불이 무엇이든 태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갈(渴)'은 목마름을 의미한다. 즉, 물을 자주 들이키는 증상을 목마름에 비유했다. 증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갈증은 현대의 당뇨병에 해당한다.

즉위 초반 한창 힘을 내야 할 왕이 왜 감기에 시달리고, 소갈증을 앓았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소현세자의 기록에서 찾아야 한다. <승정원일기>나 실록의 기록은 왕과 세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볼모로 함께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고생이 심했다. 1637년 2월 8일, 인조는 이렇게 자식들을 걱정한다.

"자식들이 깊은 궁궐에서만 생장하였는데, 지금 듣건대 여러 날 동안 노숙하여 질병이 벌써 생겼다 합니다. 가는 동안에 잠이라도 온돌방에서 잘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4월 10일, 심양에 도착한 후 소현세자는 한 달이 넘도록 질병에 시달렸다. 소현세자는 차도가 있는 듯싶다 다시 병세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소현세자뿐 아니라 강빈도 병들었다. 이에 소현세자의 의관이 강빈을 치료하기 위한 약재를 보내줄 것을 본국에 요청하여 하락을 받았다. 어의도 세자가 있는 심양에 파견되곤 했다. (기록이 무시하고 있지만, 효종의 건강 상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638년 5월 2일 의관은 소현세자의 산증(疝症)을 치료할 처방을 의뢰한다. 산증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으로 생긴다. 한의학에서는 간에 질병이 생기면 간과 관계된 몸 이곳저곳에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흥분을 잘하고, 눈이 나빠지며, 아랫배가 긴장되고 굳어진다.

<동의보감>과 중국 의학서 <난경(難經)> 등도 이런 증상-아랫배가 긴장되고 굳어지는 증상, 눈이 나빠지는 증상, 화를 잘 내는 성격-을 간질환의 징후로 봤다.

"간이 병들면 양쪽 옆구리 아래가 아프면서 아랫배까지 땅기고 성을 잘 낸다." (<동의보감>)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얼굴빛이 퍼렇고 성을 잘 낸다. 속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배꼽 왼쪽에 동기(動氣, 배꼽 주위가 뛰는 증상)가 있으며 눌러보면 단단하고 아프다. 병으로는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눈은 간이 허할 때 잘 보이지 않는다." (<난경>)

청나라 사람 용골대도 이런 산증의 병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세자를 만난 자리에서 심지어 이렇게 당부한다.

"세자의 병은 갑작스런 산증이 아닙니다. 분명 너무 염려해서 병든 것이 분명합니다. 국왕이 세자를 보낼 때,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라고 당부한 것들 때문에 너무 신경을 쓴 탓에 마음이 손상되어 병이 온 것입니다. 마음을 넉넉히 갖고 신중히 병을 다스리기 바랍니다." (<승정원일기>, 1638년 5월 11일)

소현세자의 독살설은 그가 7년 6개월 동안 청나라에서 볼모로 있다가 돌아오면서 생긴 학질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추측이다. 1644년 11월 20일 소현세자는 북경을 출발했다. 하지만 오는 길에 병을 앓으면서 이듬해 2월 18일이 되어서야 한양에 도착했다. 중간에 생긴 질병으로 심양과 평양에서 병을 다스리다 느려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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