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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은 왜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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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은 왜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는가? [이정전 칼럼] 십상시(十常侍)가 나타나는 이유
대통령 최측근들의 권력 암투 및 국정 농단의 의혹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가가 또 한 바탕 요동치고 있다. 이 문건은 대통령 최측근들을 "십상시"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단어인데, 후한 말 황제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고 국정을 농단하던 열 명의 환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는 그런 뜻이었지만, 어리석은 황제나 국왕을 끼고 소수의 최측근들이 국정을 쥐락펴락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일이 역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그런 간신배들을 뭉뚱그려서 십상시라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십상시라는 말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십상시가 있다는 것은 혼군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십상시의 발호는 어리석은 군주의 묵인이나 비호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후한 말 십상시에 둘러싸인 혼군은 영제(靈帝)다. 이 황제는 환제(桓帝)가 후사 없이 죽자 추대를 받아 뜻밖에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돈을 무척 밝혔다고 한다. 황제가 된 다음에도 국정은 나 몰라라 환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돈 벌이에 정신이 팔렸다. 그는 틈만 나면 궁중에서 장을 열고 자신이 직접 상인복장으로 나와서 장사하며 돈을 벌었다. 이것도 모자라서 그는 드디어 궁중에 관직 거래소를 공식적으로 설치하고 관직을 팔기 시작하였다. 각종 '감투'에는 정가가 매겨져 있었는데, 관직이 높다고 해서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원리가 철저하게 적용되었다. 우선, 관직을 이용해서 돈을 얼마나 많이 긁어모을 수 있느냐가 가격 결정의 기준이었다. 국민을 직접 수탈할 수 있는 최 일선 지방 관직이 중앙 관직보다 훨씬 더 비쌌다.

가격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지불 용의액이었다. 삼국시대의 진짜 주인공은 조조인데, 대부호였던 그의 아버지는 시세의 10배를 주고 태위(오늘날로 치면 국방부 장관)의 자리를 사들였다. 감투는 단가가 무척 비쌌으므로 일시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거래의 활성화를 위해서 외상판매를 허용하였다. 외상으로 감투를 산 관리는 임기 중 열심히 국민을 수탈해서 돈을 긁어모아 외상을 갚아야 했다. 영제는 관직의 임기도 짧게 줄였다. 그래야 관직을 더 자주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기가 짧아진 관리들은 수탈의 강도를 그 만큼 더 높일 수밖에 없었다.

영제의 집권시대는 시장의 요건이 잘 갖추어진 '관직 시장'이 성황을 이루었던 시대였다. 영제가 전형적인 혼군으로 꼽히고는 있지만, 요즈음 말로 하면 그는 시장주의에 철저했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흔히 동취시대(銅臭時代: 돈 냄새가 진동하는 시대)라고 부른다. 잘 발달된 관직 시장은 관료의 극심한 가렴주구를 낳았고 이것이 황건적의 난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중국 국민에게 한족(漢族)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존심을 가지게 해주었던 한나라는 이 황건적의 난으로 망했다. 소설 삼국지는 십상시 때문에 한나라가 망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십상시 발호와 한나라 멸망의 궁극적 책임은 결국 어리석은 황제에게 있다.

후한 말 십상시의 횡포는 그 후 역대 군왕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은 특히 환관들을 경계하였다. 환관들에 대한 교육도 금지하였으며, 환관의 정치참여를 엄금하는 철폐를 궁중 문에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락제가 환관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를 몰아내고 제위에 오른 다음부터는 환관에 대한 그런 금기도 깨졌다. 그래도 영락제는 비교적 영특했기 때문에 환관에게 휘둘리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유능한 환관에게 중책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에 와서 잇달아 암군들이 나타나면서 환관들이 날치기 시작하였고 이 결과 명나라가 망했음을 잘 알려진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 같이 십상시가 나타나느냐 아니냐는 최고 지도자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결국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에 대한 조사가 검찰로 넘어갔다. 그러나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온 검찰이 과연 '그림자 권력'을 둘러싼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설령,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문제 삼으면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데, 늘 그렇듯이 뭔가 맥을 잘못 짚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우선, 대통령은 십상시 문건 유출이 왜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십상시 문건의 유출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관하여 이미 정치권에 쌓여 있던 불만에 불을 댕겼을 뿐이다. 만일 대통령이 평소부터 진솔한 의사소통에 바탕을 두고 인사행정을 비롯한 국정 운영을 투명하고 믿음직스럽게 수행하였더라면 애당초 십상시 문건 같은 것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만들어져서 언론에 유출되더라도 코웃음을 사거나 기껏해야 가십 란에 실리는 정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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