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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히든 카드'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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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 대통령, '히든 카드'를 내라 [주간 프레시안 뷰] 새로운 사람과 새 출발해야
박근혜 정권이 나락에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요?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로 인한 정권 내부의 치부를 내보이고 있어 던져보는 물음입니다. 아직 나락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임기 2년차를 마무리해가는 시점에서 박 정권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파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파의 비판은 정권의 안정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판이 거세면 거셀수록 정권은 지지층의 결속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관건은 공격의 빌미가 된 문제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지지층이 보기에 '부당한' 비판이라고 여겨지는 성격의 것인지, 그래서 오히려 반대파에 맞서 정권 수호의 의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성격의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미워도 반대파의 비판이 갖는 타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지지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성격의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를 비롯한 정권 측은 정상적 절차를 위반한 '(단순) 문건유출 사건'으로 규정하려 합니다. 책임자를 색출해 엄단하면 해결될 성질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반대파가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대통령과 정권 전체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반대파는 '정권이 특정인의 농단으로 혹은 농단을 위한 암투로 허송세월을 보냈음을 알려주는 사건'으로 규정하려 합니다. 그리고 정권이 2년 동안 딱히 한 일이 없었던 이유를 그와 같은 정권 내부의 권력암투에서 찾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민생개선이나 세월호 참사 해결 등과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성격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그 의미를 어찌 해석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정권과 반대파 간에 담론적 쟁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 '문고리 권력'의 실세가 드러났다. 정윤회 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자신과 관련한) 문건을 조작한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유출자의 "일벌백계"를 명한만큼 누가 실세인지 명확해졌다. 집권 2년차에 벌써 '레임덕'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게 만든 '정윤회 문건'. 그러나 정작 이 문건이 나오게 만든 건 대통령 본인이라는 사실은 검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프레시안(손문상)

흥미로운 것(?)은 다른 때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 꽤나 신속하게 직접 개입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박 대통령이 12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에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이번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그 프레임을 앞서 제시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이 심각한 것임을 간파해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은 대통령이 놀아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권위의 현저한 약화 혹은 권위 자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감지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의 개입이 오히려 논란을 일으키면서 반대파의 거센 비판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 실상과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대통령이 가로막은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타당한 비판일 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정윤회 씨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진실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대응이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앞장서야 했습니다. 김무성 당 대표가 먼저 나서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주문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자면서, 민생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어려워진 사건 관계자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를 포함한 조기 수습책을 제안했어야 했습니다. 정국 혼란의 유지가 오히려 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 했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고 청와대 참모진 쇄신과 운영방식의 혁신을 감행하면서, 집권 3년차 이후의 국정 구상을 밝히는 식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예산안도 처리됐으니, 특히 그래야 했습니다. 그러나 또 검찰 수사에 맡기고 그 결과를 두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문제 해결에 늘 소극적이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계속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응 방식은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문제의 영향은 문제 발생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성격 짓고,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응 방식은 규범적 차원의 문제를 떠나, 실용적 차원에서도 썩 바람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4일 하루 일정을 비우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측이 맞을까요? 청와대는 다음 주로 예정된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준비에 공을 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절반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진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역시 사실일 것입니다. 문화체육부 국장, 과장 인사 등에 대통령과 정윤회 씨 관계가 영향을 끼쳤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박 대통령의 부담감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다소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애초 새누리당은 야당의 국정 농단 의혹 공세에 대해 '질 나쁜 정치 공세'라고 대응했었습니다. 하지만 국정 농단 의혹이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청와대의 고심과 새누리당의 입장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그간의 패턴을 볼 때, 뭔가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집권 2년을 경과하면서 뭔가 특별히 '업적'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지라 이 문제를 하찮은 문제로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연금개혁 등 굵직한 사안을 박 대통령의 요구대로 이번 연말까지 처리했으면 사정이 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집권세력의 처지에서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산업화 혹은 민주화 등과 같이 큰 시대정신 혹은 사회적 목적을 분명히 하고 추진 동력과 기반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 폭넓은 동의를 얻어 가는 방식으로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른 무엇인가를 내세워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 관피아 척결 등을 내세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해양수산부를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만들었듯이, 청와대 조직을 개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서관 라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장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대응 역시 이미 진부해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조급한 나머지 공무원 연금개혁 같은 큰 문제를 무리하게 강행 추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비판적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반대파는 조직적 차원에서 저항의 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박 정권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려면 먼저 변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박 정권은 아예 새롭게 시작하려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친박이냐 아니냐'를 떠나, '여(與)냐 야(野)냐'를 떠나 청와대의 진용을 새롭게 꾸려야 합니다. 국정 목표와 과제도 그 진용과 새롭게 상의해 정해야 합니다.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예측이 지배적일 때, 그 예측을 넘어서는 결단을 감행하면 오히려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울 때, 오히려 그리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대통령 자신과 정권은 물론, 나라 전체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 그리 욕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단을 통해 권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지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이전의 패턴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시작을 감행하는 결단과 용기라는 '히든 카드'를 손에 들고 하는 실천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이제 그 히든 카드를 끄집어내야 할 때에 도달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임기 2년차가 끝나가고,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히든 카드를 내밀지 않고서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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