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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 그 돈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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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 그 돈은 어디로?

[이정전 칼럼] 경제가 어렵다고?

경기가 나쁘다느니, 경제가 어렵다느니 하는 말은 지난 수년 간 가는 곳마다 수없이 듣는 말이다. 옛날에는 이렇게 경기가 나쁠 때면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늘 변명 해댔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통령부터 장차관 그리고 여권 실세들까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이 말을 되뇌고 다닌다.

그러면, 이들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경기가 그렇게 나쁘고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가? 객관적 자료만 보면 정말 그런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대를 넘어 섰다고 환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3만 달러 대에 육박하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대통령도 이제 곧 3만 달러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큰 소리 쳤다. 1인당 3만 달러라고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이 1억3000만 원쯤 된다는 얘기다. 매년 무역수지 흑자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돈이 우리 경제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기업들은 돈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있다. 오죽하면 쌓아놓은 돈을 쓰지 않으면 세금을 때리겠다고 경제부총리가 엄포를 놓고 다니겠는가? 결국, 경기가 나쁘고 경제가 어렵다는 고위 관료와 여권 실세들의 말은 엄살같이 들린다. 엄살이라기보다는 복지논쟁을 잠재우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재벌총수를 사면하며, 야권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엄포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기가 나쁘고 경제가 어려우니 정부가 하자는 대로 잠자코 따라오라는 경고다. 답답한 것은, 많은 서민들이 고위 관료와 여권 실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나라 전체에 돈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모두들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어찌된 일일까?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이 가장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살아났고 성장이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업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서민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딜 갔을까? 미국의 전 노동부 장관이었던 어느 교수(R. B. Reich)는 그 돈 대부분이 저 꼭대기로 올라가 버렸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우리 경제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왔는데도 서민들이 돈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유는 그 돈이 대부분 저 꼭대기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권 실세들이 진정 민생을 걱정하고 우리 경제를 살리고자 했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저 꼭대기로 올라간 돈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게 만들면 그만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재벌 총수 사면하고, 야권의 입을 틀어막을 때가 아니다. IMF 경제위기 이전에만 해도 저 꼭대기로 올라간 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아래로 흘러 내렸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래 우리 경제에서 낙수효과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핵심 경제참모였던 곽승준 교수도 공언한 사실이다. 이제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저 꼭대기로 올라간 돈이 저절로 아래로 흘러내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구조화 되어 버렸다. 이것이 경제민주화가 절실했던 이유다. 그러니 우선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이것의 완화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아 각종 소득재분배 정책을 과감하게 펴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이 암담하다.
이런 주장은 얼마 전에 개최되었던 경제학회에서도 나왔다. 지난 2년 간 우리 학계의 최대 화두였던 피케티의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본 주상용 교수의 연구가 이 모임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피케티의 <21 세기 자본>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진국의 소득분배 불평등의 추세를 확인하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피케티에 의하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있고 완화시키는 요인이 있는데, 특히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1980년부터 앞의 요인이 뒤의 요인을 압도한 결과 선진국에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더욱 더 커졌다. 지난 200여 년을 돌이켜 보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심해질 때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국민소득에서 고소득계층이 차지하는 몫이 급증하며,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크게 앞지른다는 점이다. r이 g보다 크다는 것은 국민소득 대비 자본총량의 비율(자본-소득 비율)이 높아짐을 뜻한다. 주상용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자본-소득 비율이 5~7 내지 7~9인데, 이 정도면 선진국 수준이거나 선진국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값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자본소득분배율) 역시 IMF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높아져서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다고 한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EHESS) 교수.ⓒ연합뉴스


피케티는 자본-소득 비율의 상승과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이 합작하여 궁극적으로 21세기에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며,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앞으로 전대미문의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경고가 옳다면,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불평등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자본-소득 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급상승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주상용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성장으로 분배를 해결하겠다는 인식은 이제 너무 안이하다. 대신 분배가 악화되면 그것이 도리어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물론, 극보수 진영의 일부 학자들은 피케티의 저서에 온갖 트집을 잡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저서가 우리 학계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케티의 경고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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