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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음모'…두 개의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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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월호 특별법 '음모'…두 개의 특별법? [주간 프레시안 뷰] 여전한 '그들만의 리그'
'특별법'이 두 개?

너무 넋을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지원특별법'으로 줄임)이라는 또 하나의 특별법이 스리슬쩍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1월 벽두부터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참사 이후 1년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며 만든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진상규명특별법'으로 줄임)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누가 초안을 만들었는지, 가족들과는 충분한 협의를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12일 월요일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니 말입니다. 아무런 견제 수단도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또 다른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그동안 가족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지요. 정치권은 여야 합의에 의해 법안이 만들어졌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그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나라입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국회와 정부의 민낯을 이렇게 또 보게 됩니다.

'진상규명특별법'은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균형을 갖춘 법입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 진상규명 소위원회·안전사회 소위원회·지원 소위원회를 두게 했고, 위원 구성에도 여야추천위원과 가족추천위원이 모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넣었으니까요. 가족과 국민의 투쟁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이 법에도 구멍이 참 많습니다. 정부 여당이 하도 우기니,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다 생긴 일이지요. 우선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보했습니다. 또 보상, 지원, 재단 등과 관련된 내용들도 담지 않았습니다. 일간베스트 등이 설치니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는 '배려'의 산물이었습니다.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탑승했던 승객 304명 중 9명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점검'이라는 함정

그래서 지원 소위원회에서 할 일에 대해서는 거의 정의를 하지 않은 채 법률이 통과되어 버렸지요. 현재로 지원 소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 지원대책의 점검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것뿐입니다.

'점검'이라는 단어가 함정이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점검한다'는 것은 지원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원 실행은 다른 곳에서 하고, 지원 소위원회는 그것을 '점검'하는 일만 하라는 노림수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가족이 추천한 위원이 들어가 있는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지원과 관련된 일에는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새로 만들고 있는 '지원특별법'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배·보상, 다양한 지원사업,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교육정상화, 추모사업, 재단 설립 운영 등의 일은 모두 지원특별법에서 구체적으로 정의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진상규명특별법'에서 핵심 조항을 빼고 '지원특별법'을 별도로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는 '여야 합의'라는 미명 아래,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법 음모'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들의 노림수에서 놀아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비겁한 언론

'지원특별법'의 내용이 알려지자, 언론은 비겁한 선동을 시작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는 1월 6일 '지원특별법' 합의 기사 제목을 '단원고 2학년 대입특례, 세월호 배보상 특별법 최종합의'로 뽑고, "사고 당시 2학년이었던 단원고 학생들에 대해서는 정원 외로 특별전형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희생자 한 명당 7~8억 원을 보상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는 선정적인 내용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이라도 하겠다고 거리로 나선 가족들에게 '엄마부대 봉사단'등의 보수단체가 퍼부었던 비겁하고도 비인간적인 공격이 재연되는 대목입니다. 대입 특례도 주고, 엄청난 돈도 주니 잠자코 있으라는 것이지요.

언론이 덩달아 춤추는 것은 '지원특별법'의 문제를 은폐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지원특별법'이 지닌 핵심 문제는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한 지원 소위원회의 역할을 무력화하는 데 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는 이 같은 문제를 덮어두고, 특례 입학과 지원금이라는 선정적인 이슈 속에 가족들을 묶어두려는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유가족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떼를 쓰는 집단이냐 아니냐를 놓고 다시 공방을 벌여야 할지 모릅니다.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논쟁할 공간마저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정부 주도의 '지원'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도 자신들이 뭐든 잘할 수 있다고 믿나 봅니다. '지원특별법'을 보면 국무총리 산하에 두 개의 위원회를 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배상 및 보상 심의회(이하 배·보상심의회로 줄임)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 지원 및 희생자 추모위원회(이하 지원추모위원회로 줄임)입니다.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한 위원회의 산하에 세 개의 소위원회가 있는데, 또 무슨 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배·보상심의회는 법원행정처장이 추천한 법관, 대한변협이 추천한 변호사, 기획재정부, 교육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공무원과 검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구성하게 되어 있고, 지원추모위원회는 위원장은 국무조정실장, 위원은 국민안전처 차관, 기재부 차관, 행안부 차관, 교육부 차관, 문체부 차관, 보건복지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토교통부 차관, 해양수산부 차관, 안산시와 진도군 단체장이 지명하는 사람 등 학식이 풍부한 자 중 국무총리가 위촉하는 사람으로 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배·보상, 다양한 지원사업,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교육정상화, 추모사업, 재단 설립 운영 등에 대해 심의 의결한다는 것이지요.

▲ 지난 3일 오후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프레시안(손문상)

그 어디에도 가족들의 의견이나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집행을 중앙행정기관과 안산시 등이 하도록 한 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완전한 관치'를 '지원특별법'을 통해 관철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부분 부분에 가족들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는 거의 의미 없는 조항에 불과합니다.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질 위원회와 산하 소위원회에 시민사회와 가족들의 의견을 대변할 사람들이 다수 들어가게 되므로, 다른 특별법을 제정해서 진상규명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관치를 관철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정말이지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관치의 전형인 개별 조항들

지원특별법에는 배상금, 위로지원금, 보상금을 지불하고,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에 필요한 생활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며, 교육·건강·복지·돌봄·치유휴직 등 피해자 일상생활 전반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받는 자와 지원하는 자와의 협치적 구상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법에서는 지원 집행 주체를 모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정의해 또다시 형식적이고 규정에 얽매인 관치적 폐해가 재현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안산시가 연구와 실행을 전담하고, 공동체 복합시설을 국가와 협의하여 설치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공동체 운동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계속 이슈가 된 트라우마 센터 설립 운영도 법조문의 하나로 들어가 있습니다. 기본 구상은 '국립으로 한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모공원조성, 추모기념관 건립, 추모비 건립, 해상안전사고 예방 훈련시설, 추모제 시행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예산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 역시 국가 혹은 안산시가 주체가 돼 건물이나 시설을 조성하고 공무원을 배치해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심지어는 가족이 중심이 되어야할 4.16재단의 설립·운영조차도 국가가 5년간 자금을 출연해 직접 할 생각입니다. 재단이 수행할 사업에 대해서도 추모시설 조성 운영관리, 추모제 시행, 안전사고 예방 교육장의 설치 및 운영, 안전 재난사고 예방 관련 문화학술사업 및 국내외 교류, 안전사회 확립을 위한 정책 개발 및 제언, 장학사업으로 못 박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도 책상에 앉아 마음대로 펜대를 굴리면, 법이 되고 정책이 되고 실행마저 된다고 착각하나 봅니다. 그들의 눈에는 희생자 가족도, 시민사회도, 국민도 보이지 않나 봅니다.

이 엄동설한에 다시 거리로?

2014년 한 해 국회와 광화문, 청운동에서 길고 긴 농성이 이어졌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단식도 불사했지요. 상상할 수 없는 국민 서명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진상규명특별법'이 겨우 통과됐습니다. 미완의 법률이지만, 그만큼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2014년의 그 과정을 까맣게 잊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날 갑자기 '지원특별법'이라는 또 다른 특별법을 이렇게 마음대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지원특별법은 진상규명을 제외한 영역의 모든 내용을 규정한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데도 가족들의 뜻과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고 이렇게 마음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법의 내용을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해에도 우리는 희생자 가족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슬픈 현실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또다시 정부와 정치권의 전횡을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고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적어도 배·보상, 지원사업, 공동체사업, 추모사업, 4.16재단의 준비와 관련해서는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한 지원 소위원회에서 사안을 심의, 의결하도록 법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또 대부분의 사안을 정부와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가족,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이 엄동설한에 다시 가족들이 거리로 나서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 지난 1일 새벽 팽목항 세월호 등대. ⓒ프레시안(손문상)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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