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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진짜 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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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진짜 야당'이다? [주간 프레시안 뷰] 박근혜의 레임덕 혹은 재기
새누리당의 '진짜 야당' 코스프레

새누리당이 '진짜 야당'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의 주축 세력으로서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 말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2일 원내대표로 유승민 의원을 선출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연말정산 논란에 대해 김무성 당대표와 함께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어오던 터였습니다. '원래 친박'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청와대 인적 쇄신의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유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정부를 '공식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다음 날 있었던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연말정산과 건강보혐료 문제를 두고, 정부가 국민을 속이려 하고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며 비판한 것입니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간에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가령 김 대표는 증세 없이 복지는 불가능하다면서도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가장 나중에 검토할 문제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복지예산 증대에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예산 축소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유 원내대표는 복지예산 축소에 비판적입니다. 줬던 것 빼앗는 것은 세금 올리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법인세 인상도 성역이 아니라는 입장인 거죠.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닙니다. 복지예산 축소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나, 법인세 인상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것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축소 안할 수도 있고, 인상 안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이니까요. 두 사람이 함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가장 크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복지예산 증감 여부 혹은 법인세 인상 여부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진짜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오만'과 '‘무능'입니다. 인적 쇄신, 증세와 복지 등의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은 물론, 당과도 소통하지 않는 오만을 보여온데다가, 정책적으로 갈팡질팡하면서 국민 지지를 잃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은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이나 정책이 아니라, 국정운영 방식에 있어서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진짜 야당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야당'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이것이 나쁜 것이라고도, 또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 성원으로서 그리고 원내정당으로서 당연히 보여주어야 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회주의적이라고 욕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심을 잃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집권여당답지 않은 비겁함'이라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 욕한다고 새누리당을 새삼 나쁘게 생각할 사람도 없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 욕해준다고 흐뭇해할 것도 아닙니다. 즉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변신이 가져올 세 가지 영향

오히려 새누리당의 '진짜 야당' 코스프레가 한국 정치 지형에 끼칠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진짜 야당'의 입지 축소

첫 번째는 한국 정치의 갈등 구도가 새누리당 내부의 '친박 대 비박'으로 짜인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이 대 친박'처럼 말입니다. 이미 그 조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지난 4일 있었던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불참까지 하면서 강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새로운 원내 지도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당의 중진들이 취할 태도는 아닌데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냥 인정하고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위기감이 큰 것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위해 당의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중 유 원내대표에 대해서 "자신이 대통령인 줄 아느냐"며 거세게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리더십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친박 대 비박'이든, '친이 대 친박'이든 계파 갈등 자체는 새로운 것도,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구도의 조성이 갖는 의미, 즉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의 기운을 새누리당 (비박계)가 대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진짜 야당답지 않은 진짜 야당들, 즉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당 세력들의 입지가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든 아니든 간에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은 '친박-비박' 갈등으로 쏠릴 테니 말입니다. 당 대표 경선과 전당대회를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수권 가능성을 높이는 비전과 전략과 정책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TV 토론회를 하고 나서는 당 대표 후보자들 스스로가 저질이라고 할 정도로 계파 갈등과 네거티브 전략만 선보였습니다. 국민신당 추진세력의 말처럼 더 이상 제1야당의 자격을 상실한 정당이라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친박-비박' 간 갈등은 참으로 격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의도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증세'와 '복지'라는 중요한 이슈를 갖고 일합을 겨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좋은 말'과 '대리인 정치'의 종말

바로 여기서 새누리당의 '진짜 야당' 코스프레가 가져올 두 번째 영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와 집권여당이 증세와 복지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것의 영향 말입니다. 단지 진보정당만이 아닌, 그리고 야당만의 주장이 아닌, 또 선거 국면이 아닌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그와 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의 영향 말입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아무리 엉망인 한국 정치라고 해도, 결국 도달할 것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한국 정치도 반민주-민주 구도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고, 또 의제 자체로 보수-진보 간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야말로 정치가 '누가 얼마나 어떻게 고통을 분담할 것인지'의 문제, 즉 비용부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추상적인 가치와 이념으로는 입지를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좋은 말'만으로는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낼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부분을 특히 진보정당 세력 그리고 국민신당 추진 세력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복지,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과 같은 구호 수준의 담론만으로는 사회적 지지기반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열정의 토대'를 만들어야만 진보와 새로운 정치를 세워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누구의 이익을 얼마나 보장하고 대변하고 구현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실제로 그리해야 진보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존립과 성장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세화 선생의 말처럼 서민들의 '계급배반 투표'가 있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호명하지도, 그 이익을 대변하지도 보장해주지도 못했기 때문임을, 즉 분명하게 효능감을 선사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인식해내야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도 못했다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에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이해 당사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사랑할 용기마저 빼앗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사랑은커녕 '생을 계속할 의지조차 빼앗긴 현실'에 살고 있는 약자 계층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직접 스스로를 대표하게끔 말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이 그들에게 시간과 조직과 지식이라는 재화를 제공해주면 될 뿐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민주주의를 구현시키기 위한 민중에 대한 '권능부여(empowerment)'에 더 효율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러 저러한 추상적 개념과 명제와 이론에 입각한 '계몽질'은 그만둘 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약자를 대표하는 정치체계가 아니라, 약자를 대표자로 세워낼 때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무상급식, 무상보육과 같은 정책들이 상황에 따라 이래저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 혹은 '재기'

끝으로 세 번째 영향은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레임덕입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이 '진짜 야당' 노릇을 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서 퇴임 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선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집권 2년 동안 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같은 편에게서 돌을 맞는 것이 결코 달가울 리 없습니다. 오히려 '집안 식구'의 공개적 비판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명한 신호가 될 테니 말입니다.

지위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무리수를 둘 공산이 큽니다. 그리되면서 소모적인 논란과 정쟁이 벌어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은 소외되고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하려면 혹은 최대한 늦추려면 비박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야당과 달리 의례적인 비판과 반대를 하고 있다며 몰아붙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적 쇄신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당-청 간에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진짜 야당의 정책 제안마저도 포용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정치적 경쟁자들과 소통하고 숙의하며 '호민(護民)'에 보다 좋은 결과를 내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적 질서를 바꿔내는데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음을 기억해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국가 재건에 기여했다고 존중의 마음을 전하며, 한 번 더 기여하자고 독려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보수와 진보와 지역과 세대와 계층으로 나뉜 현실을 극복하고 국가통합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 때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했던 것을 단지 레토릭으로만 놔두기는 너무나 아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꿈을 이룰 기초를 만들어내면 그야말로 아버지와 함께,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으로 길이 남을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면, 정권재창출 여부에 상관없이 박 대통령 자신은 물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마저 '딸의 실패'로 인하여 역사적 입지가 더욱 더 줄어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넘어선, 즉 아직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 그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조국 근대화', '공업입국', '성장과 안정', '반공·반북과 통일', '자주와 국방', '애국심과 근면·자조·협동' 등 시대 변화에 걸맞게 재구성해낼 수 있는 가치와 미덕들마저도 거부당할 것입니다. 그저 독재와 장기집권을 위해 조작된 것으로만 여길 테니 말입니다. 이를 잘 헤아린다면, 박 대통령 자신의 재기는 물론, 진보-보수를 넘어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조명의 지평도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든 아니든 간에 그러합니다. 언제, 어찌했을 때, 인재들이 몰렸고 국민들이 자신을 제일 좋아했는지, 그래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늘어났는지를 다시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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