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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세상을 유리병에 넣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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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세상을 유리병에 넣지, 그래!" [단박 인터뷰] <돼지의 왕> <사이비>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에 이어 세 번째 '센 놈'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연상호 감독은 "일반적인 '풍경 스케치' 정도"라며 "세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역>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일반 사람이 노숙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해 공권력 또는 국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알려진 대로 <서울역>은 재난 영화지만, 최근 4~5년 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을 풍경처럼 담았다. 다만, 영화 후반 작업을 한 업체에서 '시국이 이런데 개봉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

분명 "세지 않다"고 했는데, 감독의 입에선 "공권력·국가·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일련의 상이 머릿속을 스치며, <서울역>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5월 트위터에 쓴 것처럼 '현 정부에 대한 마음을 <서울역>에 모두 표현'했느냐?"라고 물었더니, 연 감독은 "그 말,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올 연말쯤 개봉할 계획이라는 <서울역>, 과연 '센 놈'일까?

"국민 입장에서는 공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서울역>에도 비슷한 시각이 나온다. 그러나 공권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울역>을 '세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공권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에 '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남산 근처에서 만난 연 감독은 굵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결코 '센'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캐릭터처럼 고집스러운 '콧방울'이 살아 있었다.(연상호 감독 첫인상으로 '콧방울'을 강조한 이유는 기사 본문에 나옵니다. 편집자)

▲ 연상호 감독은 '가족용은 쉽고 성인용을 어렵다는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요즘 장편 애니메이션을 계속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첫 실사 영화인 '부산행'(공유 주연)은 오는 4월 촬영에 들어간다. ⓒ프레시안(최형락)

"'세다'고? 내 영화 재미있다"
세면 셀수록, 사회 부조리를 까발리면 까발릴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연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도 그랬다. 종석(목소리 양익준)과 경민(목소리 오정세)이 15년 만에 마주한 그날 역시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대필 작가 종석은 경민에게 이끌려 중학생 시절 우상이었던 철이의 투신, 그 찰나와 마주한다. 자책감에 도망치듯 옥상을 벗어나는 종석, 그러나 경민은 종석이 보는 앞에서 자살한다. <돼지의 왕>은 일상 소재가 된 학교 폭력이 배경이지만, 진실을 마주한 순간 관객에게 묻는다. 누가 진짜 '돼지의 왕(탐욕의 왕)'인가.

"흔히들 '세다' '잔인하다' '충격적이다'라고 하는데,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뚤어진 아이였다. 이번 설 연휴에 TV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저런 것을 해서 무엇하나'라며 구시렁거렸다. 남들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나는 약간 삐딱하게 보는 것 같다. 특히 논리에, 이데올로기에, 종교에 기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딴죽을 걸고 싶다."

▲ '돼지의 왕'은 약자들의 배신, 연대의 허술함을 주제로 한 영화다. ⓒ스튜디오 다다쇼
감독의 '비딱한 세계관'은 일반적인 사건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장치 역할을 한다.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기댈 곳을 찾는 수몰 예정 지역 주민들. 사기꾼 최경석 장로(목소리 권해효)는 선한 얼굴을 한 성철우 목사(목소리 오정세)를 앞세워 주민들을 현혹한다. 사기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동네 건달 김민철(목소리 양익준)뿐,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이비>는 종교적 주술에 걸려 '믿습니다, 아멘!'을 반복하는 주민들과 이를 응시하는 관객에게 묻는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사이비)인가.

"<돼지의 왕> <사이비> 둘 다 특별한 소재를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제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한 소재를 추리극과 부조리극 등 장르를 활용해 전달하는 편이다. 관객과의 소통, 작품의 대중성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 내 영화는 재미있다. 재미에도 여러 측면이 있지만…."(웃음)

불편해 고개를 돌리다가도 '센' 연상호 표 애니메이션을 다시 찾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 때문이다. 연 감독은 이 역시 '재미'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세다'고 느끼는 건 작품에서 보이는 폭력성이 아닌 캐릭터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이 일반적인 정서와 달라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표현주의 특성이 강한 2D 역시 '센' 충격을 거든다고 말했다.

"'인상을 쓴다'고 하면 얼굴에 주름을 그리는데, 인상을 쓰지 않을 때는 주름을 아예 그리지 않는다. 많은 주름(정보)이 있는 배우의 얼굴과 달리, 단순화된 캐릭터에는 불필요한 나머지를 그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만을 그리기 때문에 감정이 보다 분명하게 전달된다. 관객은 이런 점을 세게 느껴 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예쁜 캐릭터를 쓰지 않는 것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송광호냐, 원빈이냐에 따라 영화의 내용과 장르가 많이 달라지지 않나."

연 감독의 캐릭터는 '송광호 스타일'인 셈. 스스로도 "일반적으로 '예쁘다'라고 생각할 캐릭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일상을 견디듯 사는 영수(<창>의 관심 사병)와 종석·경민(<돼지의 왕>), 민철(<사이비>)이 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래도 살아가는 영선·칠성 처(<사이비>)가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 이들을 영화에 담기 위해 연 감독은 '콧방울'을 고집한다.(연상호 감독의 첫인상으로 '콧방울'을 강조한 이유입니다. 편집자)

<센과 치히로의 모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 대부분은 콧방울 없이 코 선과 콧구멍만 있다. 반면, <인랑>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밝은 느낌의 최근작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에서도 캐릭터의 콧방울을 살렸다. 연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그림체가 <인랑>과 비슷하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 '사이비'에서 선한 사람은 거짓을, 악한 사람은 진실을 얘기한다. ⓒ스튜디오 다다쇼

"멍청한 사회에 희망은 없다"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밝은 빛을 보여줘야죠. 목사님, 여기에선 목사님이 희망입니다. 이 마을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라고요. 아시겠어요, 네? 희망, 빛, 메시아! 아, 좋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늘 희망을 좇는다. 그러나 <사이비> 최경석 장로의 말처럼 '희망, 빛, 메시아'라는 게 존재할까? 연 감독은 부정했다. 그는 "지금은 희망이 없는 상태"라며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피로감' 같은 게 쌓여" 뉴스도 자주 보지 않는다고 했다.

"'희망 부재' 한국 사회의 문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럼에도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옳은가, 그른가'와 같이 하나의 잣대로 결론을 내리려는 성향이 강하다. 사회가 각박해져서인지, '여러 관점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멍청해진 것 같다."

송파 세 모녀는 '죄송합니다'라는 유서와 함께 마지막 집세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으며, 빚에 시달리던 30대 가장은 설 연휴에 가족과 동반 자살했다. '88만 원 세대'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달관 세대'로 불리며 꿈과 희망마저 거세됐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6년째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며 굴뚝 농성 중이고,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노동자는 지난달 16일 사내 도급화를 반대하며 분신했다. 고위 공직자 청문회마다 등장하는 병역 문제와 논문 위조·재산 부당 축적은 이미 고리적 신파가 됐으며, 권력의 꼭짓점은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를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세수를 낭비하고도 웃는다. 한국 사회 병폐(病弊)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세월호 참사'에도 강자는 강자를 대변하며, 사회를 편 가르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가 딱 반으로 쪼개져 있다. 87년 민주화 항쟁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 증오'다. 좌든, 우든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한 증오가 기본적으로 깔렸다. 진영 논리에 얽매여 진실은 외면한 채 '선악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 정도라면 나라를 나눠서 각자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국가개조론'과 '국민행복시대'가 공존하는 현재, 스스로를 '삐뚤어졌다'고 말하는 연 감독의 딴죽걸기는 계속됐다. 그는 김영삼 정부의 '유흥업소 심야영업 제한', 박근혜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및 '3.1절 태극기 달기'와 같은 조치가 민주화 이전이 아닌 이후 90년대와 2000년대에 진행된 일이라며 어이없어했다. '국가'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에게 단결할 것을 요구하며 윤리적인 선함에 기대 기강 확립을 꾀하기 때문이다.

▲ 연상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세대 이슈'를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슈퍼맨:레드선-독재자가 된 슈퍼맨>(마크 밀러 지음, 시공사 펴냄)이라는 만화가 있다. 슈퍼맨이 구(舊) 소련에서 떨어져 영웅이 되는 내용인데, 슈퍼맨은 렉스 루터를 상대로 승리한 후 그가 남긴 편지를 읽고 갈등에 빠진다. 편지에는 "차라리 세상을 유리병에 넣지, 그래!"라고 적혀 있었다. 악당 루터가 슈퍼맨이 생각하는 '정의'를 한 문장으로 비꼰 것이다. 요즘 이 대사를 많이 생각한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해서 그런가?(웃음) 현 정권과 정치권 등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인터뷰 마지막까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던 그가 검은 뿔테 안경을 올리며, 마지막 질문을 남겼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 단박 인터뷰, 다음은 누구?

조국 서울대 교수를 시작으로 배우 김의성 씨, <송곳> 최규석 작가, <사이비> 연상호 감독을 만났습니다. 연 감독은 다음 인터뷰 대상자를 <프레시안>의 선택에 맡긴다고 했는데요, 막상 바톤을 넘겨받으니 고민이 되네요.

얼핏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단박 인터뷰' 주인공들. 하지만, 이들 모두 약자에 대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감시자 역할(워치독, watch-dog)을 마다치 않는 분들입니다. 그동안 만난 '단박 인터뷰' 주인공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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