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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4만 원 아파트…쫓겨나면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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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4만 원 아파트…쫓겨나면 어디로 가나요?" [현장] 강제퇴거 위기 놓인 구로직장여성아파트 거주자들
1호선 독산역 1번 출구를 나와 서울 두산초등학교를 끼고 좌회전을 하면 oo몰드, **자동차공업사, XX의료사 등 군소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곳을 지나면 한눈에 봐도 낡은 아파트가 보인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저소득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1989년에 지은 '구로직장여성아파트'다.

'월 201만 원 이하를 받으면서 일하는 여성'이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자격조건이다. 월세는 4만 원~7만 원(보증금은 20만 원~40만 원)이다. 총 100세대, 200명이 정원이다. 저렴한 월세 때문에 저소득층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한 세대에 두 명이 동거하는 구조다.

김명숙(가명‧35) 씨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도부터다. 이전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지은 인근 초원아파트에서 살았다. 월세 등도 지금 이곳과 비슷했다. 하지만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아파트를 팔면서 김 씨는 그곳에서 밀려났다. 신축 오피스텔이 들어선다고 했다. 기존 거주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말만 믿고 군말하지 않고 방을 뺐다.

하지만 새로 지어진 오피스텔, 즉 원룸은 김 씨가 들어갈 수 없었다. 20평대 보증금이 1500만 원(월세 40만 원), 10평대가 700만 원(월세 30만 원)이었다. 초원아파트에서는 한 달에 3만 원의 월세를 냈다. 김 씨 형편상으로는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우선권이라는 게 있어 봤자 '그림에 떡'이었다.

그렇게 이곳에 와서 살게 됐다. 12년 전 일이다.

▲ 구로직장여성아파트 전경. ⓒ프레시안(허환주)

빨리 돈 벌어 나가리라 다짐했는데…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빨리 돈 벌어 나가리라' 다짐했다. 생면부지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에 모인 대부분은 형편이나 상황이 몹시 좋지 않았다. 우울한 분위기가 전염되는 듯했다.

하지만 '탈출'은 쉽지 않았다.

충청남도가 고향인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상경했다. 자격증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피부관리업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일했다. 그래도 김 씨 손에 쥐어지는 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다. 돈은 죄다 사장이 가져갔다. 그나마도 월급을 주면 다행이었다. 가게가 망하면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규모 사무실 경리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단기 계약직으로 이곳저곳 사무실을 전전했다. 계약을 연장해주는 것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임금을 올려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경력도, 임금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얼마 전까지 일하던 곳에서 받은 월급은 125만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계약 기간 동안 일하게 해주는 곳은 감사하다. 갑자기 내일 당장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하는 사무실도 비일비재했다. 그럴 경우, 답이 없다. 카드 등으로 이미 쓴 돈을 메울 재간이 없다.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카드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일을 얻고 첫 월급 받을 때까지는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두어 차례 반복되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사는 구로직장여성아파트의 싼 월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는 어렵게 됐다. 근로복지공단이 그간 거주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았던 운영규정을 '거주기간 4년'으로 한정했다. 구로직장여성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자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2012년의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 대기자가 많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김 씨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1년 반 동안 대기자로 있어야 했다.

여기를 나가면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보증금을 마련하려 해도 모은 돈이 거의 없다. 아파트 관리비, 가스비, 전기료 등을 내고, 부모님 생활비에 김 씨 생활비 등을 쓰면 125만 원의 돈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김 씨 월급으로는 은행대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자가 더 비싼 저축은행을 이용할 수도 없다. 보증금을 낮추자니 높은 월세가 발목을 잡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추가연장을 요청했지만 대기자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김 씨, 그리고 김 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4년 이상 거주자들은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제 발로 나가지 않으면 강제로 끌어내겠다는 의미였다. 여기 소송에 김 씨도 포함됐다.

법원의 도움을 기다렸다. 하지만 2014년 12월, 김 씨 등 4년 이상 입주자들은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 꼼짝없이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었다. 하지만 동절기 강제집행이 부담스러웠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3개월 연장했다. 3월 28일이 3개월 연장 만료 시일이다.

"강제집행하게 되면 너희가 다 책임져야 한다. 용역 부르는 일당부터 이삿짐 이동하는 비용까지 모두 물어내야 한다. 기간은 다 됐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알아서 나가라."

그동안 근로복지공단 관계자, 아파트 관리자 등은 전화, 전단 등을 통해 지속해서 압박했다. 결국, 참다못한 4년 이상 거주자들은 하나둘 씩 이곳을 떠났다. 애초 50명 정도 거주했던 4년 이상 거주자들은 현재 20명 정도 남았다.

▲ 김명숙 씨. ⓒ프레시안(허환주)

"이곳에서 나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김 씨에게는 대략 4평 되는 방이 개인 생활공간의 전부다. 부엌과 화장실은 룸메이트와 함께 사용한다. 그런 방에는 에메랄드색 장롱과 서랍장, 박스 등이 빽빽이 놓여 있었다. 장롱과 서랍장은 이곳을 살다 나간 사람들이 남긴 물건들이다.

방에는 작은 창문이 있지만 책장으로 이를 막아놓았다. 외풍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방 공기는 무릎이 시릴 정도로 싸늘했다.

TV도 없었다. 대신 아날로그 라디오가 있었다. TV는 수신료 내는 게 아까워 끊었단다. DMB가 되는 스마트폰으로 퇴근 후 외로움을 달랜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보일러도 끈 채 지내고 싶다. 하지만 2010년께 가스비를 내지 못해 보일러도 틀지 못하고 자던 입주자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김 씨는 "어렸을 때는 이 나이가 되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겠거니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먹고사는데 바빠 하루하루 살다보니 지금 상황까지 온 듯하다"며 "이곳에서 나가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프레시안(허환주)

"무조건 쫓아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국세입자협의회,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등은 10일 근로복지공단 영등포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로직장여성아파트 입주자의 강제퇴거를 중단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일방적인 퇴거가 아닌 상생할 방안을 찾자고 당부했다.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지금부터라도 정부,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서울시 등이 합심한다면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임대주택 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무조건 쫓아내는 게 아니라 대기자를 포함해 모두가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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