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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남북관계마저 1970년대로 되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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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남북관계마저 1970년대로 되돌리나 [정세현의 정세토크] 사드, '전략적 모호성'으로 버티는 것 능사 아냐
2015년 3월, 한국은 두 가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우선 중국이 주도하는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 문제다. 미국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들을 비롯해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 동맹국들에게 AIIB에 가입하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영국을 필두로 가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잇따른 서방 국가들의 AIIB 가입 행렬을 두고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 질서로 이사를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구의 주요 국가들이 합류하겠다고 한 지금, 이들을 핑계 삼아서라도 우리도 들어가야 한다"며 "한미 동맹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우리는 중국과 경제 협력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며 "중국과 교역으로 연간 500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AIIB에 가입하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잘 계산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선택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내 배치 여부다. 미국은 사드 배치가 북핵과 미사일을 막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이미 후보지까지 탐색했지만, 중국은 한국에 "중국의 우려를 중시해달라"는 사실상의 경고장을 보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사드 배치가 미국에는 대중국 견제의 '플러스 알파'에 불과하지만, 중국에는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핵심 이익을 침해받은 중국이 상당히 격렬히 반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이 경제 보복 조치도 할 수 있다"면서 "중국이 한국산 제품 수입에 제재를 걸면 우리의 무역흑자는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정 전 장관은 "아직 요청이 없었고 협의가 시작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미국에 사드 문제는 그만 언급하자고 선을 긋는 것이 국익을 위해 현명한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중 양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돌파구로 삼을 수 있는 남북관계마저 현재는 경색된 상황이다. 대담에 함께한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부원장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전단 살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황 부원장은 "지난해 전단 문제 때문에 무산됐던 2차 고위급 접촉을 재개해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개성공단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문제는 당국 간 접촉으로 풀어야 하는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우선 전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중국과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사드와 AIIB 문제를 놓고 양국의 외교전이 치열한데요. 우선 AIIB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이 AIIB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만, 지난 12일 미국과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영국이 가입을 선언한 데 이어 17일에는 유럽 최대 경제국가인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국가들이 합류했습니다.

정세현 :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 질서로 이사를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도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국제 경제의 중심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이 세계은행(WB)을 주도하면서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경제 질서에 포함됐었죠. 그런데 중국이 WB와 맞먹는 AIIB라는 국제 금융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선 겁니다.

AIIB가 본격적인 닻을 올리게 되면 중국 중심의 국제 경제 질서가 수립될 것입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이에 함께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우리만 미국 중심의 국제 경제 질서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AIIB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동맹국들에게 AIIB에 가담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합류하면서 중국이 완전히 좌지우지하는 지배구조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과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AIIB가 IIIB, 즉 International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이 아니라 국제 인프라 투자 은행이 되는 것이죠. 이는 미국이 통제하던 WB에서 중국이 통제하는 WB로 변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정부가 그냥 흘려보내기만 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서구의 주요 국가들이 합류하겠다고 한 지금, 이들을 핑계 삼아서라도 우리도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미국과의 의리 또는 한미 동맹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특히 우리는 중국과 경제 협력으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중국과 교역으로 연간 500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AIIB에 가입하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잘 계산해봐야 합니다.

사드, 중국이 더 민감한 이유는

프레시안 : AIIB와 함께 최근 핫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 문제인데요.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 상황에서의 해답이라는 평가도 있는데요.

정세현 :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보다 지금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은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할 일도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경제도 좋지 않다는데, 사드에 신경 쓸 시간에 국민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권에도 더 이로운 일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지속적으로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고 최근 그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4일 중국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가진 한중 국방회담 자리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우려를 표명했는데, 지난 16일 방한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중시해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려에서 한 발짝 더 나간 겁니다. 이건 일종의 경고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들고나오는 데는 한미 간 물밑으로 진행되는 일을 간파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목 아래 '3NO'(No Request, No Consultatoin, No Decision), 즉 미측으로부터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한미 간 사드 배치가 많이 진척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정보망이 한미 간 물밑 협의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중국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 역시 한미 간 협의가 수면으로 떠오르기도 전에 중국이 자꾸 찍어누르려고 하니까 대니얼 러셀 미 차관보가 류젠차오 부장조리가 방한한 바로 다음 날 부랴부랴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사드 배치 문제의 공론화가 시작된 겁니다.

▲ 이경수(오른쪽) 외교부 차관보와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1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차관보 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도입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려면 우선 사드가 미국과 중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 무기체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대응은 여기에 맞춰서 진행하면 됩니다.

우선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는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전략에서 '플러스 알파' 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미 본토에 있는 사드는 국내용이고 괌에 배치한 것이 중국 견제용인데, 레이더 탐지 범위가 2000km이기 때문에 괌에 있는 것으로는 중국의 동북 3성을 비롯해 중국의 주요 거점 지역을 커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걸 한국에 갖다 놓으면 수도인 베이징을 비롯해 동북 3성, 심지어는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지역까지 감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의 핵심 이익이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은 사드가 배치되는 순간 핵심 이익에 타격을 받습니다. 자신들의 주요 거점 지역이 미국에 전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군사·안보 전략적인 측면에서 핵심 이익을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즉 미국은 한반도 내 사드 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잘 안됐네"하고 그냥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사드 배치가 이뤄지면 "우리는 망했다"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사드 배치가 사활적인 문제입니다. 양측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또 미국은 설사 사드가 한반도 내에 배치되지 않더라도 우리한테 화풀이는 못합니다. 아무리 해봐야 주한미군 감축 정도인데, 이것도 사실상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주한미군 주둔 이유로 남북한 대치 상황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은 자신들이 적자를 보고 있는 무역 구조, 즉 무역역조를 시정하라고 하면서 이를 바꾸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만 결국 시행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핵심 이익을 침해받는 중국은 상당히 격렬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 보복 조치까지도 가능합니다. 지난해 우리가 474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는데 중국이 한국산 제품 수입에 제재를 걸면 이는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중 FTA가 있다며 얘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문서로 맺어진 약속은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얼마든지 파기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논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아직 요청이 없었고 협의가 시작 안됐다는 현시점에서 미국에 사드 문제는 그만 언급하자고 선을 긋는 것이 국익을 위해 현명한 판단인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정부는 사드를 배치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핵이나 미사일로 위협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하면 사드를 배치하자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드 배치가 이뤄질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목소리를 좀 내야 하지 않습니까?

정세현 : 야당이 제대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야당이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입니다. 집권당이 되겠다고 하는데, 그럼 집권했을 때 골치 아픈 문제들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에 공청회를 하자고 제안하든지 논평을 내든지 공론화를 시키든지 해서 정확한 입장을 밝히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겁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여당과 같은 방식으로 국정을 바라봐서야 집권할 수 있겠습니까.

전단 문제 해결로 남북관계 돌파구 만들어야

프레시안 : 사드와 AIIB 문제로 한국 외교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는데, 그나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남북관계도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임기 3년 차로 들어섰는데도 남북관계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 황재옥 (사)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재옥 :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미국의 대북정책, 그리고 북한의 대외 메시지입니다. 남한, 북한, 미국 모두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면, 사실 집권 초기 때만 해도 이명박 정부 때 워낙 남북관계가 경색돼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보다 훨씬 고압적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원칙과 진정성을 이야기하면서 남북관계를 이전보다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통일'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 정권보다 많이 쓰고 있는데, 담론은 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길 만한 현실적인 정책 내지 전략이 없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강하게 저항할 수 있는 소재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먼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에 관계 개선을 추진해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전혀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핵을 포기하기 위한 북한의 이른바 '선(先)행동'과 중국의 역할만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개선 기미가 보이자 오히려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지난 1월 2일 휴가 중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전격적인 제재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라기 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을 신중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남북 모두에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정보 유입을 통한 북한 붕괴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남북관계에 대해 미국의 역할이 없어지는 겁니다.
북한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이전보다 도발이 심해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인신공격을 퍼부으면서 남한의 반(反)북 여론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남한 국민들 중에도 남북관계가 너무 경색돼있다고 생각하는 중도층이 있는데, 이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을 북한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남한, 미국, 북한 모두 이러한 입장들이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경색 국면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세현 :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중에 순위를 꼽자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 철학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특히 통일준비위원회가 대북 정책에 있어서 핵심적인 걸림돌로 보입니다. 남북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기 어려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북한이 남북관계에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준위를 만들면서 북한과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이러한 흐름을 '남한이 흡수통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로 규정했습니다. 이번에 "비합의에 의한 통일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는 정종욱 통준위 민간 부위원장의 발언 이후에는 흡수통일의 '돌격대'라는 표현까지 쓰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통준위를 그래도 두면서 남북관계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상태로는 북한이 남한의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한 때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 보다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는데요.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출범 첫해에 대북정책을 세팅하는 데 참여했던 멤버들의 성향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외교안보의 참모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모두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북한과 대화보다는 대결·굴복 등을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수립하게 된 배경이라고 볼 수 있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대선 당시 캠프에서 만든 겁니다. 이 캠프는 민간인이 주도했죠. 그런데 막상 정책을 추진하는 취임 이후를 보니 이를 실행하는 인사들이 군 출신들로 깔려버린 겁니다. 결국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군사적 사고방식을 가진 참모들에 의해 성형수술이 돼버린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에는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었지만 당선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약을 내팽개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됐다고 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 정부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우리가 남북대화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를 하나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 정부들은 남북대화를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라는 목적으로 방법론적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진행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만 해도 그랬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냉전이라는 국제정치 질서가 미·소 데탕트, 미·중 수교 등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소련의 그늘 아래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중소국가들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른바 '두목' 국가들이 화해하면서 자신들을 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와 김일성도 이런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보호자였던 소련이 자기가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생각했던 미국과 손잡으려고 하는 와중에, 그동안 국력이 커진 남한이 미국과 손잡고 자신들을 치면 큰일이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박정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남북은 서로의 의중을 떠봐야겠다는 측면에서 접촉을 시작한 겁니다. 물론 제안은 남한이 먼저 했지만 북한도 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결국 남북은 7.4공동성명을 만들어냈고, 이후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게 되면서 국내에는 유신 체제가 공고화되기 시작했고 김일성은 1인 지배체제를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월 연초 기자회견에서 '평양의 누구와도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남측 대통령이 '평양의 누구와도' 만난다면 그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역시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 국제 정세가 변하는 와중에 한반도의 상황 관리를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역시 각각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과 박철언 특보 등을 통해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상황이 나빠지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전임 정부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했던 이유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분단 상태에서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대통령의 소임 아니겠습니까?

북한이 못된 장난을 치지 못하게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접촉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남북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은 북한이 장난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6자회담을 봐도 그렇습니다. 2009년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제정세가 바뀌면 회담이 열린다는 것을 6자 모두 동의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과 관련된 소위 비밀스런 작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화를 하는 동안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도 하지 않았고 험악한 말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자기들이 어떤 성격을 가진 국가의 대통령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분단국가에서는 다른 한쪽이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이 된다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탐색 차원에서라도 접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대화의 효용이나 목적에 대한 생각이 과거 정부와 다른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하겠다'고 선을 그은 것부터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을 과거 정부가 어떻게 했는지, 남북대화 역사를 통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첫 남북대화(남북적십자회담)가 열린 1971년 8월 이전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황재옥 : 유독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르게 친미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주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한미관계만 든든하면 다른 것은 어떻게 돼도 크게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북대화나 관계 개선에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남북 간 경제 격차가 너무 많이 나니까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갑을관계에서 '을'로 보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조이고 압박하면 북한이 굴복하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군 출신 대통령이 북한 압박이나 붕괴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먼저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북한이 자행한 아웅산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바로 그 다음해인 1984년 북한이 제안한 체육 회담에 응했습니다. 물론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것이었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전 일을 문제 삼지 않은 것 역시 평가할 부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인이 이야기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실행하려면 남북관계를 푸는 것이 시작인데, 북한의 굴복에 의한 대화만을 고집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가 막혀있는 와중에 홍용표 신임 통일부 장관이 취임했습니다. 홍 신임 장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황재옥 : 우선 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당장 다음주(26일)에 민간단체가 전단을 살포하겠다는데, 그 단체들을 만나서 사정을 하든 설득을 하든 일단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전단 문제 때문에 무산됐던 2차 고위급접촉을 재개해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성공단의 임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공단 임금문제는 당국 간 접촉으로 풀어야 하는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우선 전단 문제를 잠재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 황재옥 (사)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개성공단 임금 문제는 지금 상태로 두면 결국 북한은 자기 방식으로 밀어붙이려고 할 것입니다. 정부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면 응당의 처벌을 할 것이라고 기업들을 겁주고 있는데, 이렇게 남북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기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지쳐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의 장래를 위해서 이런 방식은 지양돼야 합니다.

마침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대북 전단이 안전을 위협한다면, 아무리 민간의 표현과 관련된 부분이라도 정부가 적절하게 국민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는 상황이 돼야 한다"라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새로 취임한 홍 장관이 이러한 입장을 잘 활용해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관계의 첫 단추도 못 끼우고 3년 차를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전단 문제 정리하고 당국 간 회담 열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이 통준위를 해체하지 않으면 남한과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라 전단 문제 해결되면 바로 대화 테이블에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통준위를 비롯해 나머지 현안들은 대화로 해결하자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단 전단 문제를 해결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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