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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 세균이 우릴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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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 세균이 우릴 행복하게 한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흙에서 건강을 만지다
꽃에 물을 주며
-1932년 늦여름

한 번 더, 여름이 시들어 가기 전에
우리는 정원을 보살펴야겠다.
꽃에 물을 주어야겠다, 꽃은 벌써 지쳐,
곧 시들어 버릴 것이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한 번 더, 또다시 이 세계가
미치광이가 되어 대포 소리 요란하게 울리기 전에
우리는 몇 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며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줘야겠다.

-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 두행숙 옮김, 이레

"아빠, 흙냄새가 신선해."

일요일 아침, 호미로 흙을 파고 있던 아이가 던진 말에 마음이 둥~ 하고 울립니다. 아이는 다시 아무 일 없이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저는 그런 모습에 왠지 미안해져서, "그래~ 앞으로 자주 놀러오자"라고 답했습니다.

올 봄, 사는 곳 근처에 정말 손바닥만 한 텃밭을 분양받았습니다. 작년 봄 이사 와서 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부러워만 하다가 올해는 놓치지 않고 신청한 것이지요. 농장 문을 여는 날,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흙을 갈아엎고 잘 고른 후에 쑥갓과 상추 씨앗을 뿌리고 근처 시장에서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사다 심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텃밭일을 하는 내내 그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아이가 종알종알 이야기 하면서 호미 하나만으로 참 놀더라는 것입니다. 또 오자는 것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었던 모양이구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에 살아도 우리 몸속에는 흙과 자연에 대한 끌림이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 외에도 텃밭 일에는 건강에 실질적인 효용이 있다고 합니다.

2007년 영국 브리스틀대의 크리스 로리(Lowry) 박사는 <신경과학(Neuroscience)>지에 "흙에 사는 세균이 뇌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흙에 사는 마이코박테리움(Mycobacterium)은 인체에 해가 없는 세균이다. 연구진은 이 세균을 생쥐에게 주입했더니 뇌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세로토닌을 증가시킨다. 폐암 말기 환자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세균을 처리했더니 삶의 질이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세균이 면역력을 향상시켜 뇌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흙에서 놀면서 우리 몸에 침입(?)하는 세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건강하게 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각종 항균제와 소독제로 씻어내기 바쁜 것이 요즘 현실이지만, 흙장난도 좀 하고 너무 말강물만 쪽쪽 흐르게 키우지 않아야 몸이 튼튼하다는 어르신들 말이 사실인 셈이지요. 물론 애완동물의 분변이나 중금속이나 유해물질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건강한 접촉마저 포기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 외에도 텃밭에서 노는 것은 건강에 좋은 점이 더 있습니다. 우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소에는 쓰지 않는 근육들을 움직여 주는 운동효과입니다. 직업적인 농사일은 과도한 노동이 되어 근육과 관절의 노화를 유발하지만, 본인에게 무리 없을 정도의 밭일은 특히 평소 오래 앉아서 일하는 도시인들에게는 매우 좋은 운동이 됩니다. 또한 밭을 갈고 흙을 고르고 풀을 뽑는 것과 같은 작업이 주는 몰입효과가 있습니다. 단순반복 작업이지만 흙과 풀냄새를 맡아가며 손을 쓰고 몸을 움직여 일하다 보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보낸 일주일간의 피로와 긴장이 풀려나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와 가슴 속 파문들이 가라앉고 잔잔해져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촉촉하게 땀을 흘리고 난 후 마시는 물 한잔의 달콤함은 보너스지요.

▲텃밭 가꾸는 아이들. ⓒ연합뉴스


또한 작은 자연이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 밭을 보면서 봄의 생동감과 여름의 열정 그리고 가을의 고독과 겨울의 침잠을 경험할 수 있어,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본래 리듬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물결에 정신없이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텃밭 일을 마치고 마을 농장 입구에서 아이의 신발에 뭍은 흙을 털어주고 근처의 작은 막대기로 신발바닥을 두들겨 주며, 어릴 적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제가 해주셨던 말을 아이에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제가 해준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겠지요. 그래도 뭔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상이 조금 밋밋하고 건강이 걱정된다면 집 근처에 씨를 뿌릴 수 있는 작은 땅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소소한 재미와 함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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