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제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실무 협상에서 1273개의 괄호가 담긴 86쪽에 달하는 협상문 초안이 나왔다. 이제 12월에 예정된 파리 총회까지 무수한 쟁점을 정리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6월 본에서 열리는 차기 실무 협상은 2라운드인 셈이다.
2014년 리마 총회의 결정에 따라 각국은 자발적 감축 목표(INDCs)를 유엔(UNFCCC)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 3월로 정해진 1차 마감 결과를 보면, 예상대로 비관적인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차 마감된 INDCs(스위스, 유럽연합, 노르웨이, 멕시코, 러시아, 미국 제출)를 분석한 결과, 2도 상승으로 제한하려는 목표 달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기후 변화 연구 집단인 '기후 행동 추적자(Climate Action Tracker)'는 INDCs의 '2도 달성 가능성'을 "부적합-중간-충분-모범" 등급으로 평가하는데, 유럽연합, 스위스, 멕시코, 노르웨이를 "중간"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준조차 2도 달성 가능성에 미달한다는 걸 의미한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중간 등급을 받는다면, 2도 제한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가기 :)
물론 이런 감축 목표 '베팅'은 의무 감축에서 자발적 감축으로 변경된 감축 방식을 채택한 리마 선언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디언>의 환경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는 기후 총회가 23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한 이유를 따져봤다. (☞관련 기사 : )
기후 총회는 온실 기체 감축을 논의하지만 정작 온실 기체를 배출하는 주요 원인인 화석 연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식 협상에서 화석 연료 소비를 제한하자는 말은 하지만, 화석 연료 개발과 생산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이 문제를 회피한다. 대신 주요 국가들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화석 연료를 장려하는 데 몰두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기후 변화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는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지 몬비오는 화석 연료 신규 개발 중지와 함께 채굴 한계선을 결정하는 것이 파리 총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기후 변화 대응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보다 구체적인 협상 목표에 대해서는 남반부 초점(Focus on the Globe South)의 파블로 솔론에게서 들을 수 있다. 첫째, 화석 연료 확인 매장량의 80%를 개발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온실 기체를 2025년까지 44기가톤, 2025년까지 40기가톤, 2030년까지 35기가톤을 감축해야 한다. 셋째, 전 지구적으로 군비를 축소해 1.5조 달러 상당을 가난한 나라의 기후 적응, 완화와 손실과 피해에 사용해야 한다. 넷째, 인권과 자연권을 인정한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관련 자료 : )
이것이 바로 기후 정의 관점에서 볼 때, 파리 총회가 다뤄야할 핵심 의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기후 총회의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건 몽상에 가까운 일이다. 그만큼 기후 변화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 온실 레짐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차선' 혹은 '차악'의 합의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넓게 자리 잡고 있다.
6년 전 코펜하겐 총회의 실패를 반복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적어도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적잖다. 그런데 성공적인 협상이란 무엇일까? 중단 없이 1년에 한번 '기후 변화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의미에 대해 선수단과 응원단의 고민이 필요하다. 협상을 체결하라?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협상의 내용이 중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파리 총회를 앞두고 기획되고 있는 대중 행동(11월 28일~29일)이나 '브뤼셀-파리 기후 기차', 스웨덴 북부에서 파리까지 매 4킬로미터를 1000명이 이어달리는 '죽도록 뛰어', 바스크 지역에서 브뤼셀까지 200개 마을이 참여하는 '대안' 프로젝트(9월 26~27일에 절정), 그리고 1000개의 지역 기후 행동(5월 30일~31일) 같은 지역적 움직임을 상상해보면, 파리 총회는 더반 총회와는 전반적으로 다를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회의장 밖에서 대중 행동이 크게 벌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도 이런 장외 투쟁일 것이다. 협상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충격 요법'이 절실하긴 하지만, 선명한 주장과 직접 행동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기후 협상만큼이나 기후 운동도 제 자리 걸음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 총회를 준비하는 정부와 NGO에게도 원칙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도 2주간 회의가 아니라 5년, 10년을 내다보는 전망 속에서 세워야 한다. 기후 운동은 어디에 '베팅'을 해야 할까.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풍문으로 들어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기대치를 낮추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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