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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있는 프레시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를... [이 주의 조합원] 이은의 변호사
"정의는 이긴다"라는 만화 속 대사를 비웃게 되면서, 아이는 철이 든다. 승리를 보장하는 건 힘이지 정의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무래도 적당히 부정한 방법을 쓰는 쪽이 힘을 얻기에 낫다. '힘 있는 불의, 힘없는 정의'라는 공식은 그래서 생겨난다. 결국 현실에선 정의가 지는 경우가 많다. 힘이 없으니까. 옛날부터 그랬던 모양이다.

"사람의 간으로 회를 쳐 먹었던 도척은 천수를 누렸다. 반면,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던 안회는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이게 하늘의 도라면 과연 그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자주 인용되는 <사기>의 한 대목이다. 저자인 사마천은 절규한다. 착하게 살면 손해다.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는 이들이 오히려 잘 산다. 이래서야 자식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그렇다.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의 지시를 잘 따랐던 아이들이 죽었다. 뇌물 받고도 당당한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이긴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힘 있는 불의' 앞에 엎드려야 하나. 그건 싫은데…. 그래서 '승리한 정의'에 갈증을 느낀다. 찾아보면, 있다.

지난해 8월, 이은의 조합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보다 앞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뒤에 책을 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뜸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변호사 시험 합격, 실무 수습 중'이라는 내용이다. 어렵던 시절 힘이 됐던 이들 앞에 밝은 모습으로 '짠' 하고 나타나고 싶었단다. 그래서 연락이 뜸했던 거라고.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시험 낙방하고 주눅 든 모습이어도 상관없는데' 싶었지만, 일단 반가웠다. 인사동 골목에서 늦게까지 술을 펐다. (☞관련 기사: "청바지 입은 여직원은 성희롱 해도 되나요", "성희롱 피해자가 왜 얼굴 내놓느냐고요?", "여직원이 술자리 분위기 띄워야!" '블루스' 제안에 그녀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이 조합원은 대학을 마치고 바로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전기에서 해외영업을 하던 지난 2003년 6월부터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상사는 슬쩍슬쩍 몸에 손을 대곤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그리고 2년 뒤, 가해자와 해외 출장을 갔다. 또 성희롱을 당했다. 결국 회사 측에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 긴 싸움이 시작됐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이 모두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때가 2010년이다. 처음 성희롱을 당한 때로부터, 햇수로 8년째였다. 그 사이, 그는 진급에서 탈락했으며, 직장 내 따돌림을 겪었고, 몸과 마음이 몹시 아팠다. 다들 의아해 했다. 회사를 왜 관두지 않느냐고. 견고한 이유가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가 도망가는 걸로 끝난다. 가해자는 웃고 피해자가 운다. 그게 싫었단다. 결국 승소 판결이 난 뒤에야 사표를 냈다. 요컨대 그는 '승리한 정의'를 원했던 게다.

삼성을 떠난 이듬해 로스쿨에 진학했고, 지난해에 변호사가 됐다. 12년 9개월 직장생활을 한 뒤에 시작한 로스쿨 생활. 법학 전공자도 아니고 고시 준비를 한 적도 없었다. 한마디로, 고생길이다. 그래도 무사히 합격했고, 올해 초엔 대검찰청 앞에 사무실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이 됐다. 기회가 되면, 대의원도 할 생각이다.

초짜 변호사, 초짜 조합원인 셈인데 의욕은 대단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후 늦게 이 조합원에게 카카오 톡 메시지를 남겼다. 한참 뒤에야 연락이 왔다. 일하느라 메시지를 못 봤었다고 했다. 야근을 할 거라서, 야식 거리를 사러 가다가 메시지를 봤다는 게다. 맡은 사건이 많다고 했다. 성희롱 사건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까닭에 성희롱 피해자들도 종종 찾아온다. 폭력적인 갑을관계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도 찾아온다. 사실, 두 가지는 서로 통한다. 성희롱, 성폭력 역시 대개는 갑을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성희롱 사건들을 다루면서, 이 조합원이 깨달은 건 '한 사람'의 중요성이다. 사건이 발생한 조직 안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옳은 방향을 지지한다면, 피해자는 힘을 얻는다. 큰 조직 안에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듯싶은 '한 사람'이 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은의 조합원. ⓒ이은의
기자가 이 조합원을 처음 인터뷰한 건 지난 2008년 8월이었다. "청바지 입은 여직원은 성희롱해도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 기자 노릇 하는 보람을 깊이 느낀 인터뷰였다. 이 조합원 역시 두고두고 힘이 된 기사였다며 고마워했다. 이후 법정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프레시안>이 힘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될 준비를 하느라 한참 동안 <프레시안>을 못 봤었다. 지금 다시 보게 됐는데, 그의 눈에 비친 <프레시안>은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아쉬운 점이 많다. "제가 겪은 성희롱 사건을 최초 보도한 건 다른 매체였어요. 하지만 실제로 힘이 된 건 <프레시안> 기사였어요. 일간지에선 담기 힘든 내용을 짚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사실 그 전에는, <프레시안>을 거의 보지 않았었죠. 제 사건 기사가 나간 뒤부터 보게 됐는데, 다른 매체가 잘 다루지 않는 내용을 깊이 다루는 게 좋았어요. 또 여느 진보 매체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기사들도 있었죠. 그게 빛났어요."

'다른 시각'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기엔 맥락이 있다. 성희롱 피해자가 돼 긴 싸움을 치르면서, 이른바 '진보 진영' '노동계' 사람들을 만날 일이 종종 있었다. 평범한 삼성 직원으로 살았던 그에겐 낯선 경험이었다. 힘이 될 때도 있었지만,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이 조합원은 관성적인 진영 논리에 대해 반감이 깊다.

오랜 만에 만난 <프레시안>은 전과 다른 듯했다. 기사는 많지만, 그 속에서 '다른 시각'을 찾기 힘들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그 역시 '관찰자'가 아니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주인인 조합원이 됐다.

"확실히 더 관심을 갖게 돼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죠."

조합원이 되면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 말이 묵직한 자국으로 남는다.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조합원들의 질책이 기자의 신경을 팽팽하게 한다. '승리한 정의'를 또 찾아내려면, 그래서 불의에 맞서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기자가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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