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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동산이 된 핵 공장!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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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동산이 된 핵 공장! 무슨 일이 있었나? [초록發光]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 정당은?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보자. 2007년 정부는 핵발전소 부지 내 사용 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2016년에 이르면 포화되기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소를 2015년까지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가 바로 정부가 계획한 2015년이다. 그 동안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계속 미루어왔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재처리가 처음부터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 고리 핵발전소 1호기가 가동된 이후 무려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영구 처분한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수립한 바 없다. 한마디로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지 아직도 아무런 공식적인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를 핑계로 여전히 재처리 옵션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곁에서 보수 언론은 '핵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재처리를 옹호하고 있다.

1950년대 핵에너지는 인류가 직면한 모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무한 에너지로 각광받았다. 그 장밋빛 비전의 중심에 바로 고속 증식로와 핵융합 발전이 있었다. 고속 증식로는 경수로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한 후 나오는 플루토늄을 연료로 이용한다. 이론적으로 투입한 연료보다 더 많은 연료를 '증식'하기 때문에 '꿈의 원자로'로 그려졌다.

고속 증식로는 1950년대만 해도 몇 십 년 후면 곧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고속 증식로와 재처리는 이른바 '닫힌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하는 핵심 기술로 간주된다. 하지만 고속 증식로는 세계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로 판명되었고 재처리는 플루토늄을 분리함으로써 핵 확산이라는 국제적 위협 요인이 되었다.

독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소 폐쇄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에 기초한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독일에서는 핵에너지 개발 초기부터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통해 핵연료를 '재활용'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처분의 대상으로 삼았다. 1994년 법 개정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영구 처분하는 옵션을 재처리와 동등한 처분 방식으로 인정할 때까지 독일은 재처리 방식을 영구 처분 방식보다 우선했다.

그러나 재처리 설비 건설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970년대 말 고아레벤에서 포기되었다. 1980년대 바이에른 주 바커스도르프에서 재처리 프로젝트가 다시 수행되었으나,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재처리 설비 건설 반대 운동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결국 1980년대 말 원자력 발전 업체가 이 프로젝트에서 철수하고 프랑스와 영국의 재처리 공장과 재처리 계약을 맺음으로써 독일에서 재처리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재처리 기술과 함께 '닫힌 핵연료 사이클'을 구성하는 고속 증식로 프로젝트는 어떠한가? 독일에서 1970년대 수행된 300메가와트급 고속 증식로 프로젝트는, 기술적인 미숙함으로 인해 수차례에 걸쳐 기술 기준이 수정되고 이 과정에 건설이 지연되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1980년대 완공된 이후에는 당시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주 정부에서 운영 승인을 하지 않았다. 발전 수익보다 운영 비용이 훨씬 더 든다는 이유였다. 이 고속 증식로 프로젝트는 독일 역사상 가장 큰 투자 실패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현재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동산이 되어 있다.

▲ 독일의 고속 증식로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나서 어린이들이 뛰노는 놀이동산이 되었다. ⓒwikipedia.org

재처리를 하더라도 재처리 후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처분되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공장에서 재처리 후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이 밀폐 용기인 CASTOR(cask for storage and transport of radioactive material)에 실려 독일 국내로 반송되고 있다.

독일은 2005년 7월 이후부터는 해외에서도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으나, 아직 돌아와야 할 CASTOR가 26기나 남아 있다. 독일 정부는 이 CASTOR를 어디에 보관할지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 CASTOR는 독일의 유일한 최종 처분장 후보지였던 고아레벤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고아레벤을 둘러싼 오랜 갈등 끝에 2013년 4월 독일 정치권은 최종 처분장 후보지 선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연방환경부 장관은 CASTOR도 더 이상 고아레벤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아레벤 대신 새로운 보관 장소가 선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2013년 독일 정치권은 이 '난감한 문제'를 슬쩍 2013년 가을 연방의회 선거 뒤로 미뤘다. 2015년 3월에도 주지사들과 연방정부는 CASTOR 보관 장소에 대한 협상에서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가 CASTOR 일부를 수용할 의사를 밝혔으나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2013년 6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고등행정법원이 지역 내 핵발전소의 사용 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최신의 군사적 무기 공격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안전하지 않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최종 처분장 프로젝트를 이미 1970년대 핵발전소 건설이 한창일 때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된 고아레벤 최종 처분장 프로젝트는 결국 36년 만에 15억 유로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과 심각한 사회적 갈등만 남기고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독일 정부는 최종 처분장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든 후 2031년까지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에만 주력했을 뿐 핵발전소 해체를 포함한 사후 처리 문제(back-end management)에 대해서는 정부도, 정치권도, 한국수력원자력도 서로 공만 돌리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국회 국정 감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국회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회의원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조속히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의 사용 후 핵연료 대책이 마련되면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방사성폐기물 처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걱정만' 할 뿐 정치권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이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서 고민되고 결정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10월 말에 공론화위원회를 수립하여 사용 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의 활동은 다음 달 말로 종료된다. 곧 그간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사용 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할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 어떤 방안을 내어놓든 우리 사회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편리한' 원자력 이용의 이면에 숨어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진실을 직면하고 공감하는 순간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통제 불가능한 위험에 대처하는 가장 최선의 길은 위험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핵 기술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핵발전소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핵에너지를 탈피하는 길을 모색하게 함으로써 위험에 대응하는 사회적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은 더 이상 핵에너지의 불편한 진실 앞에서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 첫 걸음으로 사용 후 핵연료 처리에 대한 정당의 공식 입장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정당이 관여하지 않는 핵에너지 정책의 사회적 공론화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난 수 십 년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의회가 행정부를 통제하지 못하면 핵발전소 정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출되지 않는' 관료의 '계획'에 따라 '결정하지 않은 듯' 결정될 것이다. 핵발전소 설비를 둘러싼 갈등은 중앙 정부와 지역 주민의 갈등으로 축소될 것이고, 사회 대다수의 구성원은 무관심할 것이다. 관심 있는 유권자는 투표소에서 핵에너지 정책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표출할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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