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FTA(자유무역협정)가 한걸음 다가왔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高虎城) 중국 상무부 부장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중FTA 서명식 및 기자회견'을 열고 한중 FTA 협정문에 정식 서명했다. 이로써 한중FTA는 국회 비준동의 등 발효 절차만 남겨놓게 됐다. 하지만 한중FTA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막막하다. 수입이 늘어날 중국산 식품이 얼마나 안전할지, 한국 농민과 중소기업이 입을 타격은 어떻게 이겨낼지 등에 대한 걱정은 그대로다.
거저 내줄 상품에 값 치른 한중FTA
그렇다면, '자유무역협정'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취지는 제대로 구현됐나? 예컨대 수출기업들은 한중FTA로 실익을 얻을 수 있나? 정부는 '그렇다'고 한다.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향후 10년 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0.96% 추가 성장 △146억 달러 상당 소비자 후생 개선 △5만3805개 일자리 창출 등 효과가 나타나리라는 게 정부의 예상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물음표가 찍혔다. 중국의 시장 개방이 꼭 FTA 덕분이냐는 게다. FTA 협상 타결 뒤에, 중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시장을 더 열었기 때문이다. FTA 협상이 없었어도, 이미 열릴 시장이었다는 것. FTA 협상이란, 양국이 시장 개방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양보한 대가로 받아낸 게, 상대가 진작부터 내줄 작정을 한 것들이었다. 상대가 거저 내놓을 상품에 값을 치른 셈이다. 따라서 재협상을 통해 상대의 양보를 더 얻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통상위원회에 의뢰한 분석 결과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한중FTA 타결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던 지난해 11월 10일에 나왔다. 그리고 넉달 뒤인 올해 3월 10일, 중국 정부는 '제6차 외상투자산업지도목록' 개정을 통해 제조업, 인프라/부동산, 정보기술, 회계, 법률 자문,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제한을 전면 철폐하거나 대폭 완화하였다. 예컨대 중국은 이 조치를 통해 재활치료 서비스, 간병 서비스 등 노인복지 서비스 등을 자발적으로 개방했다. 한중 FTA에는 담기지 않았던 개방 내용이다.
올해 4월 28일에는,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가 '수입 생활소비재 관세인하'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화장품, 의류, 신발류, 기저귀 등 다수의 소비재 관세가 50% 가량 인하되었다. 관세 인하 폭이 한중FTA보다 높은 수준이다. 기껏 타결한 한중FTA가 무용지물이 된 셈.
"통상당국의 조급한 성과주의"
일련의 투자규제 완화 및 소비재 관세 인하 조치는, 중국 정부의 중장기적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에 대해 김제남 의원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한중FTA 협상을 추진한 통상당국의 조급한 성과주의는 비판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중FTA가 지난해 11월 타결될 당시에도, 박 대통령의 중국 지도부와의 회담 일정에 맞춰 성급하게 협상을 진행했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은 이밖에도 많다. 중국의 무역기술장벽은 악명이 높다. 중국에 수출하는 공산품은 중국의 고유한 기술표준을 따라야 한다. 수출업체 입장에선 골치 아픈 일이다. '자유무역'의 이상은, 기술 장벽을 허물고 세계 공용 표준을 만들자는 게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쓰이는 제품이 저 나라에서도 곧장 쓰이게끔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목에선 진전이 없었다. 수출업체의 민원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한편 지난 1일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5월 수출액은 423억9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9%p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대중국 수출도 넉달 연속 감소세다. 거저 내줄 상품에 값 치르는 식의 한중FTA가, 축 처진 수출 그래프를 일으켜 세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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