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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불통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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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불통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대한민국, 대수술이 필요하다
독일 <슈피겔> 특파원의 '박근혜 걱정'

어제(8일) 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독일 <슈피겔>의 극동아시아 담당 특파원을 만났다. 한국에서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자 일본에서 건너와 메르스가 왜 한국에서 확산되고 있는지, 지역 사회 확산과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없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급히 한국으로 직접 오게 된 계기는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왜 그토록 많은 메르스 환자가 나왔는지, 혹 서울에서 메르스가 유행하지 않을지 궁금해서라고 한다. 이날 서대문서울적십자병원과 삼성강북병원을 둘러본 뒤 나와 만났다.

1시간30분가량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 박근혜 정부의 개혁(혁신, reform)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일본에 거주하면서 중국, 대만(타이완),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주로 남북 문제와 동북아 정세 등 정치·사회·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베테랑 기자였다. 그의 지적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지난해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뿐만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극도로 불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외교 안보, 남북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교육에 이어 복지·보건·안전 문제에까지 불통과 비밀주의란 암 덩어리가 퍼져 개방·투명·민주 사회의 목을 옥죄고 있다. 메르스 초동 대처 실패에 이은 후속 대응 실패 등 총체적 실패와 병원과 감염 경로 미공개 등 비밀주의는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분노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대통령은 불통 바이러스 전파자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철학이 그러하니 국무총리나 장관이 되려고 하는 사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신상과 관련해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거짓말 자판기들이 대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이미 강 건너 간 지 오래다. 이런 것을 <슈피겔> 특파원은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의 개혁을 인터뷰 중 계속 지적한 게 아닌가싶다.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을 거듭하자 청와대 대변인은 8일 "박근혜 대통령은 병원 명단 공개 나흘 전(6월 3일)에 이미 모든 병원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한 바 있다"며 실무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느라 나흘 뒤에 공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불신하는 사람의 생각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어느 안전(顔前)이라고 지엄하신 말씀(병원 명단 공개)을 사소한 일로 나흘이나 깔아뭉갤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각료나 청와대 비서진 가운데 그렇게 간 큰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사소한 토도 달지 못하고 눈만 한번 흘겨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부하들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병원 명단 나흘 전 공개 지시'는 사면초가에 놓인 '여왕 폐하 구하기'를 긴급 제작·상영하기 위한 어느 참모의 '시나리오'로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메르스 병원 명단 공개 불가는 질병관리본부장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선에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과 국민에게 보여준 것을 살펴보면 결코 그런 엄청난 결단(?)을 할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이다.

병원 명단 공개 나흘 전 대통령 지시?

그렇다면, 그동안 지탄을 받았던 병원 명단 공개 불가는 결국 청와대(대통령)의 뜻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여야 가리지 않고 목 놓아 병원 공개를 주장하고 <프레시안>과 같은 언론과 인터넷에서 주요 병원 명단을 공개했음에도 고집을 꺾지 않을 사람(곳)은 한 사람(한 곳)밖에 없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청와대 대변인이 '(자나 깨나 국민을 생각하시고 혜안을 지니신) 대통령께서는 일찍이 병원 명단을 공개하시어 국민이 메르스 확산 대응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시었다' 식의 발표는 나중에 이것이 드러날까 봐 미리 관계기관과 관계자들에게 지침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매우 중요한 지시가 있었는데도 모든 국민은 나흘간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어떤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있었다면 대통령 말씀이 있었으나 약간의 실무적 문제로 마무리 되는대로 곧 공개하겠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정상적일 것이다. 이처럼 감염병은 감염병 이상의 화두를 만들어낸다.

메르스 사태 확산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벌어진 측면도 있다. 의사나 보건의료인들은 인간(환자)의 심리나 행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또 사회과학을 공부했거나 자연과학, 특히 의학과 보건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감염병의 특성이나 병원 감염의 특성 등에 대해 더더욱 모르는 것 같다. 자기만 살기 위해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인간 군상의 모습도 이번 메르스 확산 과정에서 부끄러운 민낯으로 드러났다.

인간은 결코 도덕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치명적인 감염병의 유행 또는 그에 대한 공포는 인간을 평소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가 다니는 학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 인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메르스 감염자나 밀접 접촉자 자녀라고 해서, 아니면 그냥 요즘 기피 대상 1호가 돼버린 의사의 자녀라고 해서 학교에서 '은따(은밀히 왕따를 시키는 일)'를 하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현실까지 고려해 감염병 대책과 소통, 메시지가 필요한 것이다.

19세기 위대한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의학은 사회과학이라고 말했다. 질병은 문화, 인구 집단, 생태계, 인류사와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조지 엥겔도 1977년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에서 질병이 생리적·생물학적 원인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의 질환에 대한 취약성과 그에 대한 반응은 심리적·사회적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대응, 소통·사회·심리 전문가도 포함해야

이런 주장이나 견해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면 당연히 메르스 민관합동대책위원회에 감염병전문가뿐만 아니라 위해 소통 전문가, 질병사회학(보건사회학) 질병(보건)심리학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등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 등장하는, 낯선 감염병에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들과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메르스를 계기로 혁신해야 할 대상과 내용은 도처에 널려 있다. 혁신에 혁신을 해도 더 혁신이 필요할 정도다. 위기 관리 또는 위해(위험) 관리의 요체는 위기(위해) 소통이다. 이 또한 방역 당국과 박근혜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메르스 관련 소통은 낙제다. 위해 소통의 원칙에 반(反)하는 일만 기막히게 골라서 한다. 비밀주의 금지, 공개, 조직 CEO의 진심 어린 실수(실패) 인정과 사과, 대중 요구 들어주기, 실수 되풀이 하지 않기, 정직 등 소통 원칙의 '골든룰'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국민의 메르스에 대한 위험 인지는 결국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험 인지를 바꾸는 것도 결국은 소통이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바이러스는 인간이 소통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소통은 정직이다. 소통은 진심이다.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보다 정권의 안전이나 대통령의 위신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는 쇠하게 마련이다. 외국의 특파원도 알고 있는 해답을 우리가 모른대서야 되겠는가. 혁신은 대통령이나 정권이나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몫만은 결코 아니다. 우리 모두의 치열한 노력과 헌신이 중요하다. 혁신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과 세력, 기관에 대해서는 동참토록 하는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다.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메르스 사태를 제2의 세월호 사건으로 여기고 사회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혼령을 욕보이는 모든 세력을 메르스 바이러스 박멸하듯이 없애야 하는 것처럼 메르스 확산 방지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껍데기들이 더는 이 땅에서 활개 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외국에서 온 특파원한테서 부끄럽게도 '혁신' 이야기를 듣지 않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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