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박 대 박'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세월호 슬픔'을 압도했다는 사회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 대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앞선 까닭이다.
역병이 돌아 언제 어디서 역귀(疫鬼)가 붙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군주는 우물쭈물했다. 반면, 서울 사또는 "야밤(4일)에 경보사이렌을 울"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16일 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박근혜) 정부는 안일했고, 삼성서울병원은 과신했다"며 박 시장이 "잠자는 정치권을 깨웠"다고 평가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 소장은 같은 날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런 탓에 박 시장은 메르스와 싸우고 박 대통령은 박 시장과 싸운다는 말까지 나왔다"며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현직 대통령이 생각이 다른 이들과 사사건건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에 해롭다. 인간적으로 쪼잔해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국난(國難) 앞에 대결 구도는 마땅치 않을 터, 그럼에도 현직 대통령과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정치인의 한판승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은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 두 진영 간의 대화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통해 들을 수 있다.(☞바로 듣기 : )
이소장 : 오늘(16일) 신문을 보니, '박원순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고 하더라. 메르스 국면에서 대권주자 또는 정치인으로 박원순 시장은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보다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이평 : 100% 플러스다. '정치는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박 시장이 그 타이밍을 정확히 잡았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일각에서 말하는 '기회주의적으로 치고 들어왔다'가 아니라, 국민들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정부에 기대하는 바를 박 시장이 적시에 해줬다. 진정성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그 진정성이 대국민적으로 강한 흡입력을 보였다. 대권주자의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줬다. 득을 봤다.
이소장 : 송호근 교수가 칼럼에서 "지자체와 민간의 자발적 협업을 조용히 끌어내는 리더십이 더 절실하다"며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추켜세웠다.
이평 : 박 시장에 대한 국민의 칭찬이 높아질수록 집권여당은 남 도지사의 행보를 더 띄울 것이다. '남경필 모델'을 메르스 대응의 모범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소장 : 그런 건 좋다. 잘한 것은 칭찬해야 한다. 그런데 대권주자 중에서도 박 시장이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니까, 새누리당이 남 도지사를 띄우려는 것 아닌가. 이런 것이야말로, '대권 놀음'이다. 냉정하게 보면, 남 도지사의 메르스 초기 대응은 엉망이었다. 메르스 1차 진원지인 평택과 성남 모두 경기도 아닌가.
이평 : 남 도지사를 대권주자로 띄우기보다는, 박 시장 쏠림 현상을 희석하려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원유철 의원 지역구가 '평택시갑'이다. '평택시을' 역시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인 유의동 의원 지역구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여당 출신 도지사와 실세 의원들이 포진한 경기도 평택이 '메르스 도시'가 됐다. 초기 대응 실패다. 새누리당도 메르스 사태에 안이했다.
이소장 :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은 이번처럼 큰일이 발생하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낡은 관행을 박 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깼다. 이후 너도나도 나서서 지금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송 교수는 "(박 시장이) 잠자는 정치권을 깨웠"다고 했는데,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면에서 아주 긍정적이다.
이평 : 하지만 박 시장이 메르스 대응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보긴 어렵다. 서울시가 "삼성서울병원은 그동안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국가방역망에서 열외였고, 그게 큰 화를 불렀다"며 병원 비정규직 2900여 명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정된 자원에서 가능한 일일까? 구멍이 날 수 있다. 메르스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 박 시장의 행정적 측면은 다시 평가해야 있다.
이소장 : 메르스 대응에 대해 박근혜 정부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박 시장에 대해서도 공과 과를 나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경보사이렌을 울"리고 "잠자는 정치권을 깨웠"다고 해서 다른 문제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 시장의 행보를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미국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대응을 잘한 덕에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어떤 행위를 잘해서 국민에게 평가받고,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 공학 아닌가. 당연한 것이다.이평 :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 사업을 발판으로 17대 대통령이 되고, 이후 4대강사업까지 강행했다.
이소장 :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오른 것도 노무현 정부의 4대개혁 입법안(과거사 청산·국보법 폐지·언론 개혁·사립학교 개혁)에 반대하며, 2010년 겨울 장외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사립학교법 문제를 전면에 세워 보수 정치권과 개신교가 결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과 보수 개신교의 밀착 관계가 시작됐다.
편을 가르는 게 정치라고 하지만, 최근 진영논리가 더 강화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어느 시점 이후 보수냐 진보냐, 또는 여야로 갈라져 진실 규명이 묻힌 측면이 있다. 메르스 사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조짐이 있다.
이평 : 편을 나누고 진영을 가르는 이유는 한쪽이 실책을 해야 다른 한쪽이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다.이소장 : 참 비겁하고 야비하다. 사실 '메르스 공포'는 야당이 부추긴 게 아니다. 이번 사태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평 :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라, 박 시장이 공포를 조장했다는 것 아닌가.
이소장 : 박 시장의 "야밤의 경보사이렌" 전에 이미 공포가 형성됐다. 박근혜 정부의 부실 대응·늦장 대응으로 공포가 늘어난 것인데, 여기에 정치 논리를 적용해 자꾸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메르스가 위험하고 걱정스럽다'고 하면 진보고 야권이고, '메르스가 별것 아니다'라고 하면 보수고 여권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
*<중앙일보>가 16일 트위터와 블로그를 중심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메르스 감염자 10명이 보도된 5월 29일 메르스 관련 freq(프리퀀시·frequency, 특정 단어가 하루 동안 언급된 건수)는 4만8087건이다. 이후 첫 메르스 사망자가 발생하고 3차 감염이 확인된 6월 2일은 39만596건으로, 나흘 새 10배 급증했다. 박원순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 여파가 미친 5일은 27만5192건으로, 사흘 전에 비해 10만 건 이상 줄었다. 메르스 공포가 촉발된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하게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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