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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같은 남북관계, 안 뛰면 넘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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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러닝머신 같은 남북관계, 안 뛰면 넘어져" [평화통일시민강좌] <4>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2015년은 6.15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00년의 한반도는 남과 북 사이에 화해와 교류협력, 평화의 기운이 넘쳐났으며 통일논의가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후 남북 당국과 민간 교류는 대부분 단절됐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분단 70년, 광복 70년, 6.15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시금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나아가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평화통일시민행동'에서 '평화통일시민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모두 6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네 번째 순서로 지난 6월 20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냉전을 추억으로 만들려면-냉전의 시대 남북관계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주제로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의 강연이 열렸습니다. 김 교수는 "남북관계는 러닝머신과 같다고 생각해요. 위에 올라가면 계속 뛰어야 합니다. 서면 넘어져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계속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최근 개성공단 내 임금 문제로 남북이 갈등을 빚었던 것과 관련해 "현재 임금문제는 남북이 한 발씩 물러났지만 여전히 산적한 문제가 많습니다"라면서 "개성공단의 숨통이 겨우 트였지만 상처가 매우 많습니다. 남북관계가 끊어진 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대립도 깊고 불신도 큽니다"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김 교수는 "남북관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안되고 악재가 계속 나타나고 충돌이 벌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걱정이 많습니다"고 우려했습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인데 여전히 남북관계 현실은 암담하다는 겁니다. 그는 "남북 간 불신의 세월이 8년이에요. 다시 신뢰관계로 회복하는데 과정과 절차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강연 : 냉전을 추억으로 만들려면]

5.24조치는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경협을 중단시켰습니다. 남북경협은 단순교역과 위탁가공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단순교역은 북한에서 농수산물을 수입하는 경우인데요, 최근 재래시장에 가보면 고사리, 도라지가 북한산이라 쓰여 있습니다. 말이 안 되죠. 2010년 5.24조치 이후 북한과의 농산물 교역이 금지돼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산 정체는 무엇일까요? 도라지, 고사리, 한약 재료가 북한산인데 중국으로 가서 중국산으로 둔갑한 이후 한국으로 수입된 것입니다. 내용적으로 북한산이고, 형식적으로는 중국산입니다. 통일부가 중국도 가고 조사도 하지만 마땅히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명태, 조기 같은 북한산 수산물이 우리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5.24조치는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이죠.

그런데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농산물과 수산물에 대해서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거래로 보기 때문에 관세를 매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관세 예외 조항으로 두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을 통해서 북한산 농수산물을 수입하게 되면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비용이 상승하고 관세가 붙게 됩니다. 그래서 비싼 가격으로 재래시장에서 유통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요가 있기 때문에 중국을 통해 우회해서 들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위탁가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탁가공은 원자재를 북한으로 보내서 북한에서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의류, 봉제, 신발 등이 있는데요, 이 또한 5.24조치로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만들던 회사들이 당장 중국이나 캄보디아로 가기 힘듭니다. 비용도 높고 해외시장을 개척할 능력도 없고 이 노동집약적 산업들의 중국 생산이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들이 중국에 조선족을 고용하고 위장회사를 만든 다음에 북한과 위탁가공 사업을 합니다. 그래서 중국을 통해서 한국에 완성품이 들어오는 것이죠. 이것 또한 제품의 가격이 많이 올라갑니다.

지금 5.24조치 해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무력화되어 있고 제재의 실효성도 없습니다.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평화통일시민행동

도로 개·보수도 못하고 있는 개성공단

개성공단이 최근 임금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갈등을 겪었지만 개성공단에는 임금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개성공단은 개성 시내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5만3000명 정도의 북측 노동자들이 개성 시내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그런데 2008년 이후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에 투자하지 않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 시작할 때 개성에서 개성공단으로 가는 도로를 우리가 원자재를 보내서 북한이 시공을 했어요. 벌써 13~14년 지났습니다. 도로가 여기저기 꺾어지고 깨져 있습니다. 작년부터 북한이 계속해서 도로는 북한 영토에 있는 것이지만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길이고 각종 공사 차량이 왔다 갔다 하므로 남한 정부에게 포장공사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도로에는 다리도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13~14년 되었습니다. 그 다리가 부실하여 흔들흔들 거립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보강공사를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의원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그 다리 공사를 빨리 하지 않으면 사고 위험성이 크다고 했겠어요. 그런데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북한은 다리나 도로는 공단 내의 시설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시설에 대해서도 아무 성의가 없으면 남한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임금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현재 임금문제는 남북이 한 발짝씩 물러섰지만 도로 개·보수, 기숙사 문제, 제도 문제 등등 산적한 문제가 많습니다. 개성공단의 숨통이 겨우 트였지만 상처가 매우 많습니다. 남북관계가 끊어진 지 너무 오래 됐습니다. 대립도 깊고 불신도 큽니다.

남북관계는 러닝머신과 같다고 생각해요. 러닝머신은 위에 올라가면 계속 뛰어야 합니다. 서면 넘어져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계속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안되고 악재가 계속 나타나고 충돌이 벌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걱정이 많습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인데 남북관계 현실이 암담합니다. 불신의 세월이 8년이에요. 다시 신뢰관계로 회복하는데 과정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남북관계 역사는 만남의 역사

닷새 뒤면 6.25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6월 25일에 북한이 쳐들어온 것만 압니다. 한국전쟁이 어떠한 과정을 겪어왔고 언제 매듭 지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쟁 개시일이 아니라 끝난 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희한한 현상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언제 시작됐는지 아세요? 1차 세계대전은요? 영국 프리미어 리그는 11월 11일에 가슴에 빨간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고 경기를 합니다. '리멤버런스데이'(Remembrance day)라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기 때문이죠. 전쟁이 시작된 날을 기억하는 것은 복수를 다짐하게 되고 끝난 날을 기억하는 것은 화해를 위해 섭니다.

남북관계 역사는 만남의 역사입니다. 남북대화를 왜 하느냐.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만남 중에서도 이산가족 만남이 굉장히 중요하죠.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이후로 많은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나 기업, 민간교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접촉과정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다른 체제에 살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관습, 문화, 사상 등의 차이들로 만남의 초기에는 충돌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금강산 관광이 처음 시작됐을 때 관광객 중 한 명이 금강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북한 사람들이 한라산에 올라가서 '조선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면 좋겠습니까. 그런 일이 많았어요.

평양 가서 술 먹고 사고 치는 사람도 많았죠. 기독교 어떤 단체는 평양 가서 호텔 문 잠그고 한 시간동안 통성기도를 했어요. 그야말로 별의별 충돌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한번 두번 세 번 만나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일어났지만 만남이 거듭되다 보면 올라가는 사람도 조심하고 북한 사람들도 조심하고 남한 사람들은 원래 저렇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개성공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운영할 때 많은 충돌이 있습니다. 봉제공장 같은 경우 단순작업이기 때문에 남쪽 사업장에서도 음악을 틉니다. 개성공단 작업장에 노래를 트는데 제가 가본 곳은 30분 북한 노래 틀고 30분 남한노래 틀어요. 왜냐하면 북한 노동자 뿐만 아니라 남쪽에서 온 기술자나 디자이너 등등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 식으로 적응한 것입니다.

▲ 개성공단 내 북측 노동자들 ⓒ개성공동취재단

공단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신원'이란 기독교 계열의 기업이 있는데 기업 내부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15개 시범업체 중 하나이고 규모도 큽니다. 신원은 처음부터 남쪽에서 올라간 직원들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요구를 했어요. 지속적으로 요구하니 지금은 생겼어요. 만남이 지속되니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제도가 만들어지고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공존의 관습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것이 다 끊어진 거에요. 모든 인적교류가 다 끊어진 상황입니다. 황당한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어떤 국제적인 제재도 인적교류 자체를 중단시킨 제재는 없습니다. 평화적 목적의 무역을 제재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재미교포는 북한에 관광을 갈 수 있습니다. 관광으로 북한에 가는 것을 미국 법률이 금지시킬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지막지한 제재조항이 없어요. 모든 접촉이 끊어진 현재 상황은 매우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민간도 만나고 기업도 만나고 사회 문화 차원에서 다양하게 교류하고 만나야 합니다. 지자체도 다양한 협력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모든 것을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제재의 일반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과도합니다.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남북관계

남북관계는 협력입니다. 서로 이득을 쫓아서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강연을 다니다 보면 많이 안타까운 것이 김대중 정부부터 북한에 지원할 쌀을 공짜로 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 준 쌀은 1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으로 차관형식으로 줬습니다. 상환은 다른 방식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도 쌀을 공짜로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005년 북한에서 지방공장들이 원료나 자재가 없어서 가동을 못 하고 있으니 신발이나 옷감,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광물로 갚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해서 경공업 원자재를 차관형식으로 주는 계약서를 씁니다. 북한이 대금을 2006년 하반기에 집행했는데 아연계를 우리에게 두 번 줬습니다. 그것을 우리 정부는 시장에 팔아 그 대금을 예산에 넣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다면 광물로 계속 대금을 받을 수 있었겠죠. 유무상통 하는 것입니다.

쌀 차관도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엄격하게 금액을 정할 수는 없지만 준 만큼 받는 것 사이에 균형을 취할 수 있어요. 2010, 2011년은 10년 거치기간이 끝나고 20년 분할 상환이 시작되는 해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쌀 차관을 상환받는 것도 능력이에요. 전 정부가 쌀 차관을 줬는데 후임 정부에 분할상환이 시작됐으니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받기 위해서는 협상을 해야 하죠.

대륙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북한이라는 다리

사실 경제협력을 이야기하면 남북경협이란 것은 한반도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치 한국을 섬나라처럼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섬나라가 아니에요. 외국을 나간다 하면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간다고밖에 생각 못 하는데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거나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섬나라가 아닌데 분단의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휴전선 위가 땅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어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나 동유럽과 유럽 사이는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가 이웃 나라에 수출을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위의 러시아 극동지역은 수력 자원이 매우 풍부해요. 큰 강이 많으나 전력을 사용할 도시 자체가 매우 작아요. 전력을 쓸데가 없으니 중국으로 수출하는데 한국에도 수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전기를 수출한다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섬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국가입니다. 대륙과 가스관을 연결하고 철도가 달릴 수 있고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전기도 수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남북 경제협력을 생각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대륙국가와 연결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가져오는 다양한 경제협력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안이 이명박 정부처럼 강만 파헤쳐서는 안됩니다. 이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무리가 되고 후유증이 큽니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북방경제에요. 대륙경제권으로 접촉을 강화해야 합니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하고 다리가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저런 문제가 있는데 대화나 협력이 잘 되겠냐'라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대화의 주체는 우리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 1971년 적십자 회담하고 1972년에 7.4남북공동성명 어떻게 발표했겠습니까. 전두환 정부는 아웅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경제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했습니다.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필요성과 이익입니다. 남북관계 파행의 책임을 자꾸만 북한에게 넘기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럴 거면 정책이 왜 필요합니까. 북한이 대화하자고 하면 하고 싸우자고 하면 싸우는 것은 주체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청중과의 대화]

참석자 1 :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연철 : 통준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논의가 중요합니다.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1990년 대만의 국가통일위원회입니다. 대만은 대중국 정책을 바꾸기 위한 국민적 합의와 제도 장치를 만들기 위해 '국가통일위원회'를 만듭니다. 야당, 시민단체, 진보적 지식인도 포함하여 대중국 정책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합의하게 되었어요.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평화통일시민행동
만약에 통준위를 처음 만들 때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여야가 동수의 의결권을 가지고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명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만의 국가통일위원회가 대중국 정책의 원칙을 합의하는 기구였다면 우리 통준위는 결과로서의 통일을 강조합니다.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고 했죠. 통일은 도둑처럼 오지 않습니다. 통일은 도둑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농부처럼 준비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야 해요. 열심히 땅을 갈고 잡초도 뽑고 홍수를 예방하고 가뭄이 들 것을 대비하여 평상시에 준비도 하고 해야 자기가 원하는 수학을 올릴 수 있습니다. 농부가 땀을 흘리지 않는데 어떻게 수확이 풍성하겠습니까.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는 생각은 북한 붕괴론을 가정한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매일 이야기했습니다. 빠르면 3일 늦으면 3년 안에 붕괴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하고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이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정치가 변화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통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서독처럼 통일을 대비해 여러 가지 교류를 통해 여건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서 무슨 변화가 있는 것과 남한과 통일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참석자 2 : 남북관계에 발전에 있어서 민간교류나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연철 : 지난주가 6.15공동선언 15주년이었습니다. 6.15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는데 저는 민간교류를 중시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대중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기 전 2년 동안의 정책을 잘 평가해야 합니다. 민간교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2001년 결국 그것 때문에 만경대 사건이 일어나고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결의안이 채택됐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민간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작용을 예상하고 허용을 한 것이에요.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에요. 정주영 현대 회장이 적극적으로 풀었고 정부는 존중을 해주고 현대가 대북사업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대북송금 특검도 현대 중심으로 자금을 보낸 것에 대해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한 것이에요. 2000년 정상회담 전에 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사회문화 교류와 경제협력이 먼저 물꼬를 트면서 남북 당국 간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것이죠.

참석자 3 : 개성공단은 미시적 차원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교류가 남북 당국을 움직인 사례가 있나요?

김연철 : 제가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보좌관을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 개성공단에 남북경제협력사무소를 만든 것입니다. 같은 건물 1층은 한전이 쓰고 2층은 남한 공무원들, 3층은 북한 공무원들이 사용했습니다. 층은 달랐지만 담배도 피고 점심도 같이 먹고 복사지 없으면 빌리러 오고 그랬습니다. 남북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사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연락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둡니다.

지금 남북관계 현실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안되니까 우선 남북경제협력사무소를 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가는 무역대표부를 둡니다. 경제문제를 서로 처리할 수 있는 무역대표부를 먼저 설치하고 업무를 하면서 외교관계가 정상화 되었을 때 대사관을 만들어요. 우리 정부가 쿠바와도 조만간 외교관계를 정상화 할텐데 지금도 쿠바 놀러 가는 사람 많잖아요.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아프거나 다치는 등의 영사업무가 발생해요. 이러한 업무를 코트라가 와서 해결합니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로 평양에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가고 아리랑 공연도 보러 가고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합니다.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요. 그래서 우선 개성에 경제협력사무소를 만들어서 여기서 비슷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처음엔 북한과 경제협력 사업을 하고자 하는 남한 중소기업의 요청을 받는 일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고사리를 수입하고 싶은데 생산자를 주선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들어오면 이것을 받아서 3층의 북한 공무원한테 전달합니다. 그러면 연결 시켜줘서 개성에서 만날 수 있게 합니다. 그전에는 중국에서 만났어요. 영세업자, 중소업자들이 비행기 표 끊고 중국까지 가서 호텔에서 며칠씩 묵습니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요. 하지만 개성은 가까우니까 다양한 형태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사업을 논의했습니다. 이렇게 경제협력사무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통일부 장관이 3월에 '북핵문제가 해결돼야 개성공단이 발전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북한이 경제협력사무소의 남한 공무원들을 추방해 버렸고 지금은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개성공단은 공단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위치 때문에 남북 접촉의 역사에서 의미가 큽니다.

참석자 4 :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남북관계나 북한에 대해서 반감도 큽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어떻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요?

김연철 :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통일문제를 당위로 접근해서는 설득이 안돼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자기 이해관계와 연결 지어서 설명할 때에만 공감을 합니다. 나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구체성이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에는 어렵습니다.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평화통일시민행동

경남의 남해 사천, 진해를 가면 대구 같은 회귀성 어종을 부화시켜 방류를 합니다. 그러면 대구가 울릉도 앞바다를 거쳐 북한을 한 번 돌아서 다 큰 대구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 와요. 중간에 중국 어선이 다 잡아갑니다. 북한이 입장료를 받고 북한 어장에 중국 어선들을 허용합니다. 이렇게 방류하는 회귀성 어종이 많은데 경상남도에서 방류한 것을 중국 어선이 다 잡아가요. 남북 사이에 어업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요.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농업은 품종, 개량사업, 농기계, 육묘 사업이 발전되어 있어요.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환경이 악화되어 갑니다. 온도가 1도 올라가면 식물은 80km 북상합니다. 몇십 년 동안 3도 올라갔어요. 사과는 이제 강원도 영월까지 올라왔어요. 온도에 민감한 과수 작물이 2030년이 되면 남한에서 사라집니다.

한약재도 마찬가지에요. 이런 것은 농업협력이 매우 시급해요. 기술이나 종자, 장비는 있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남한에서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니 개마고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일자리가 생겨날 거에요.

참석자 5 :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할까요?

김연철 : 한국의 외교력은 남북관계 수준에 비례합니다. 한미관계의 경우만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이 끊어진 상태이면 발언권이 없어요. 남북관계가 활성화됐을 때 미국은 한국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2005년 7월 말에 6자회담을 '끝장토론'식으로 가져간 적이 있어요. 2주 정도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회담을 했습니다. 그때 한국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대표였어요. 보좌관인 제가 격려금 전달차 6자회담에 갔습니다. 6자회담이 열리는 장소에 가보니 1층은 회담대표들이 앉아 있고 2층은 저처럼 회담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1층의 6자회담 대표단이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양자회담 순서를 정해요. 제일 중요한 사람을 제일 먼저 만나는 것입니다. 보통 미·북, 중·북 미·중 이런 식으로 양자회담 순서를 짭니다. 한국도 그때는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으니 중요한 순서였어요.

그런데 일본 대표단은 제 옆에서 구경하고 있어요. 일본은 약속이 없습니다. 북한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고 미국은 북한 만나랴, 중국 만나랴 바빠 죽겠는데 일본을 만날 여유가 없어요. 일본 외교관들은 할 일이 없는 것이죠.

6자회담과 같은 자리에 가면 나라들이 정보를 공유합니다. 미국이 한국에 북한과 만나서 비핵화 조건을 설득하기를 바란다면 정보를 줘야 할 것 아닙니까. 남북관계가 활성화되면 한국이 북·미 간의 만남을 중재할 수 있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당연히 동북아에서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왼쪽)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 ⓒ연합뉴스

그런데 남북관계가 끊어지니 미·중 간에 대화를 해도 미국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굳이 우리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한국외교의 위상과 역할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상황에 따라 비례합니다.

OSJD(국제철도협력기구, Organization for the Coope ration of Railways)라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지나가는 나라들의 철도 협의체가 있습니다. 한국은 정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하는데 정회원국인 북한이 반대해서 이번에도 가입에 실패했습니다. 대륙횡단 철도 사업에 참여하려면 여기에 가입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남북관계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제기구에서의 한국의 역할이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제외하고는 가능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이를 정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오는 4일(토) 오후 3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반도 평화를 열어가는 길-통일을 가로막는 생각의 장벽 뛰어 넘기'를 주제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다섯 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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