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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여성 지옥', 악마는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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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여성 지옥', 악마는 도처에 있다 [기자의 눈] 쇼미더머니, 메갤, 데이트폭력…여성 혐오의 현주소

지난 10일 방영된 '엠넷' 케이블방송의 힙합 음악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한 참가자가 여성 비하적 가사의 랩을 한 일이 논란이 됐다. 이 참가자가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그룹 멤버라는 점에서, 해당 기획사에도 일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 설명부터 하자면 이렇다. 논란이 된 가사는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내용이다. 'MINO(미노)'는 이 랩을 한 가수인 '위너' 소속 송민호 자신이다. '저격'은 최근 '취향 저격', '여심 저격'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인다. 즉 이 가사 전반부의 뜻은 '나(송민호)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후반부는? 그가 여심을 사로잡은 결과로 생긴 현상으로 보면 되겠다. 설명은 생략한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과 누리꾼들로부터 항의가 잇달았다. 여성들뿐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들도 항의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3일 "송민호는 (산부인과를) 여성들이 남성들을 향해 다리 벌리는 공간으로 (표현해) 여성들을 모욕하고 산부인과와 그 의사들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면서 "송민호와 YG엔터테인먼트, 이를 여과 없이 방영한 '쇼미더머니' 측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공식적으로 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논란이 일자 송민호는 13일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엠넷 측도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이며 편집에 더욱더 신중을 기하겠다"고 사과했다.

이 사건, 그냥 흔한 가십성 연예 뉴스일까? 미디어가 이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은 그렇다. 국내 1위 포털업체 '네이버'에는 지난 사흘 간 1200여 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악명 높은 '어뷰징 폭풍'이다. 연예계에서 이슈가 된 소식마다 보통 이렇게 천 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진다. 클릭을 유도해 광고비를 올려 보려는 속셈이다. 참고로 네이버에서 '이종석 박신혜 열애설'을 검색하면 1500여 건, '이동건 지연 열애'로 검색하면 약 1000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송민호의 랩 가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 둘 사이 어드메였나 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지 흔한 연예 뉴스로만 다뤄질 일이 아니다. <파리의 연인> 윤수혁이 걸그룹 멤버 누구와 사귀든 그건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송민호의 랩은 다르다. 여성을 성행위의 대상만으로 여기는 인식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폭력적인 방식은 그 자체로 성별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포된 한국 사회의 권력 체계를 재생산한다. 즉 랩 가사 자체가 이 권력 체계 속에서 약자의 처지에 놓인 여성에 대한 폭력일 뿐더러, 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유도하거나 조장할 염려도 있다.

단순히 '송민호가 나쁘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대중은 송민호가 데뷔 전부터 어떤 생활을 해 왔는지 2013년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위너>를 통해 지켜봤다. 일어나 잠들기까지 춤과 노래 연습만 하는 생활을 수년 동안 반복해 온 그에게 한국 사회 평균 수준 이상의 성(性)인지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한국 사회 평균 수준의 성 인지력은 어느 정도냐?'가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짐작할 만하게 하는 사건이 최근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들 중에만 2건이나 있었다. 하나는 이른바 '진보 논객'으로 불리던 이들의 데이트 폭력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깊은 실망감에 빠뜨렸던 일이다. (☞관련 기고 : "운동권 xxx들, 변한 것 없네"를 넘어서)

또 하나는 이른바 '메르스갤러리 사태'였다. 인터넷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적 표현을, 남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단지 뒤집기만 했을 뿐인데도 이는 폭발적 화제가 됐다. '남성 혐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였다. 혐오발화(hate-speech) 또는 혐오범죄(hate-crime) 등 '혐오'라는 표현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에만 성립한다는 점조차 잊게 할 정도로 '메갤 사태'가 충격적이었나 보다.

이 두 가지 사건과 '쇼미더머니 사태'는 한국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인구의 절반이지만 여전히 소수자인 이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더 적극적 역할을 요구받는 곳 중 하나가 언론이지만, 한국 미디어는 오히려 가해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온갖 선정적이고 성차별적이고 때로는 여성 비하적이거나 여성 혐오에 가까운 표현들이 판을 친다.

이번 '쇼미더머니 사태'에서 역시 송민호의 랩 자체보다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 엠넷의 책임이 더 컸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송민호 사태'가 아니라 '쇼미더머니 사태'다.) 성 인지력 향상 등을 통한 재발 방지 교육을 엠넷과 외주제작사 임직원들이 다같이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 집단'을 자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좀 논쟁적이지만, 송민호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 같은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라면 일반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연습생부터 경영진까지 모두를 대상으로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한 방법이다.

하나의 우발적 사건. '개념 없는 연예인'이 친 사고. 상업주의 미디어가 빚어낸 방송사고. '쇼미더머니 사태'를 이렇게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사실 송민호의 랩 가사와 유사한 수준의 인식과 감성을 가진 것이 송민호 혼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 발화의 향연장인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수준의 여성 인식을 지닌 이들은 결코 '소수'는 아니다.

그러면 '고등학교만 졸업한 가수 또는 가수 지망생들도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지 않고 기본적 인권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메갤'은 뉴스거리가 되는 반면 '메겔'이라는 거울에 비친 반사체였던 여성 혐오발화는 뉴스가 되지 않고, 매스미디어는 걸그룹 출연자들을 카메라워크로 성희롱하고, 힙합 가수는 '산부인과' 랩을 하고, 일베 문화가 범람하는, 우리가 만든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미국 NBC 방송의 <WWYD(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프로그램에는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동성애자가 차별받을 때, 흑인이 막말을 듣고 있을 때, 무슬림이 공격당할 때 이들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나서서 가해자에 맞서 싸우는 장면들이다. 진부하게 표현하면 시민 의식의 실천이고 시민 교육의 강화다.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를, 우리 모두가 나서서 조금씩 바로잡아야 우리의 아들·딸·동생 세대가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속 편히 송민호를 한 번 욕하고, 다시 카메라가 걸그룹의 다리를 핥고 있는 TV 화면으로 눈을 돌려서야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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