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에 참여하는 중국 지도부의 고민은 어느 때보다 깊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바로 올해 논의될 13.5규획(13차 5개년 규획. 2016년~2020년)의 중요성과 최근 발생한 중국 증시 폭락이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국유기업 개혁, 부패 문제 등 경제와 정치에 관한 많은 의제들이 논의될 것이다. 많은 의제 중에서도 핵심은 13.5규획이다. 13.5 규획은 향후 2020년까지의 중국 경제정책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5개년 규획으로,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확실히 제시하는 첫 번째 5개년 규획이며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성장과 개혁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12.5 규획(2011년~2015년)은 현 지도부보다 과거 지도부의 경제정책들이 많이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시진핑 지도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경제정책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했다. 2012년 11월에 열린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을 위해 2020년까지 GDP를 2010년의 2배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13.5규획의 목표를 이미 염두에 둔 것이며, 당시 계산대로라면 중국경제는 2020년까지 최소한 7.0%의 경제성장을 해야 했다. 현재 시점에서 남은 5년 동안 샤오캉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 6.6% 이상 성장해야 한다. 현재 중국 지도부가 7%라는 경제성장률 목표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3.5규획은 2013년 18기 3중전회에서 시진핑 지도부가 제시한 경제체제개혁을 실질적으로 반영한 정책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정부와 시장의 역할분담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경제체제개혁의 핵심을 정부와 시장의 관계라고 정의하고 자원분배에서 시장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2014년 양회의 정부업무보고에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의 보이는 손’이 협력할 것으로 명시하기도 하였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주장했던 보이지 않은 손이 238년이 흐른 후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정부업무보고에도 드디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이전부터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13.5 규획의 이름도 원래는 '계획'이었다. 1953년부터 1.5계획이 시작된 이래로 13번째 맞는 경제계획은 11.5규획부터 원래의 '계획'에서 '규획'으로 변경되었다.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주는 의미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용에는 변화가 없고 단지 명칭만 바꿔서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쇄신하려 한다면 중국 정부의 개혁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이번 13.5 규획에는 바뀐 명칭처럼 시장의 역할을 늘리고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정책들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경제주체의 룰을 바꾸는 게임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자원의 배분에 관한 막대한 권한을 정부에서 시장으로 쉽게 이양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 발생한 중국 증시의 대폭락 사건을 보면 현 지도부의 많은 고민들을 엿볼 수 있다. 섣불리 시장에 개입해서도 안 되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을 수만 없는 진퇴유곡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증시 폭락에는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간섭과 시장에 퍼진 투자자들의 불신일 것이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중국 자본시장의 개방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번에 폭락을 경험한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1990년 12월 19일에 개장됐다. 그런데 증권거래소는 마련됐지만 이를 감독할 기관은 없었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 덩샤오핑이 우한(武漢),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을 시찰하고 발표한 담화. 그는 중국 내 개혁·개방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상하이증권거래소는 기존의 상하한가 거래 중단 제도를 폐지한다. 1992년 5월 21일 전면적으로 주가를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20일 616포인트를 기록한 증시는 5일 만에 1420포인트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상하이 증시는 선전거래소에서 발생한 신주 추첨방식의 집단적인 부정 행위에 의해 45%나 급락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증시를 직접 관리하는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를 설립하게 된다. 정부가 공정한 경쟁을 위한 틀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 시장에 진입한 것인데, 이후에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이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도 펀드 흑막 사건이 발생해 주식시장에 투자한 투자펀드의 규정 위반, 위법 조작 사실들이 폭로됐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식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서 침묵했다. 당시 70세였던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우징롄(吳敬璉)은 중국 주식시장을 도박장에 비유하면서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증시를 '국유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한 서비스의 장'으로 이용한다는 방침과 '정부는 증시에 의탁해 기업의 자금을 끌어들인다'는 방식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국유기업의 부채가 증시를 통해서 해결되고 최근에도 정부의 증시 부양책에 의해서 지방정부 부채가 해소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시장에 퍼진 불신에 대한 해결책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관계를 필요로 하고 신뢰 관계없이 속임수에 의지하게 되면 지금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주장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국 정부가 13.5 규획에는 이를 어떤 모습으로 담아낼지 궁금하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에는 현재의 상황들이 무척이나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전망도 나오고 있고 강하게 저항하는 세력도 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금융기관의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감독자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다만 이번 중국 증시의 폭락이 개혁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우징롄과 같은 노학자가 기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갈 길은 멀지만 가야 하는 길은 명확하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이러한 복잡하고도 장기적인 정책 결정 과정이 부러운 측면도 있다. 우리는 단기간에 정책을 결정해 버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평가하지 않은 채 폐기해 버리지 않는가? 중국 지도부가 개혁의 목소리를 슬기롭게 담으면 담을수록, 우리는 더욱 큰 변화를 눈앞에서 목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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