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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정치인 격돌,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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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 여성 정치인 격돌,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차이나 프리즘] 외부 요인 강한 대만 총통 선거, 승부 예측 어려워

대만(타이완)에는 당찬 여성 정치인이 많다. 여성입법위원 비율만 보아도 34%에 달해 한국의 두 배에 달하는데, 이는 독일보다 조금 높은 수치다. 최근 대만에서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여성 정치인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거의 없으나 굳이 찾자면 둘 다 여성이며 결혼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다들 아버지의 강권으로 하기 싫은 법학을 전공했다는 것 정도다. 이외에 출신 배경, 성장 환경, 가치관에서 너무나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100년 넘게 지속되면서 노회하고 권위주의 색채가 농후한 중국 국민당을 대표하는 홍슈쭈(洪秀柱·67)와 기층 민중에서 출발해 대만 독립을 당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蔡英文·59)이 바로 두 주인공이다. 이들은 내년 1월 16일 거행될 대만 총통선거에서 맞붙는다. 그런데 이들은 각자가 속한 당의 이미지와는 썩 어울리는 후보자가 아니다.

홍슈쭈는 일본 패망과 국공 내전으로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대만을 접수하러 온 국민당 정부의 성원이었으나 불행히도 쟝제스(蔣介石)가 벌인 '백색 테러'의 희생자였고, 뤼다오(绿岛) 정치범 수용소에서 2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이후 그의 부친은 평생 동안 뚜렷한 직업을 얻지 못하였고, 집안 역시 사회의 가장 저층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무학인 그의 어머니가 여공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홍슈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의 부친과 가족을 핍박한 국민당에 가입했다. 이후 중국문화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사법 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1969년 9월 '9년 의무 교육' 실시로 인해 대만 정부는 많은 교사를 필요로 했고, 홍슈쭈는 이 정책에 힘입어 이듬해부터 10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이후 국민당 성당부주임위원(省党部主委)인 관중(关中)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입법위원으로서만 25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배경 탓에 홍슈쭈는 기존의 국민당 후보가 가지고 있던 권귀세가, 고관대작, 관이대(官二代), 부이대(富二代)의 사회 인상도 없으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본토 대만인뿐만 아니라 외성인도 탄압을 받았다는 산증인이 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층 출신으로서 민중과의 거리를 더 좁힐 수 있는 특성이 있다.

▲ 국민당의 홍슈쭈(왼쪽) 총통 선거 후보와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

이에 비해 차이잉원은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있었다. 그의 부친 차이지에성(蔡洁生)은 일본 투항 후에 타이베이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수리 공장을 열었고 이후 자동차, 부동산, 호텔 사업 등으로 확대해 빠르게 부를 축적했다. 1960년대 대만은 돈이 많다고 자동차를 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만에 온 국민당의 고관대작이나 미국 군관들만이 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차이잉원은 대학 시절 이미 자동차를 몰고 다녔으며 지금도 자동차 애호가다.

그는 대만 대학교 법학과와 코넬 대학교 석사를 거쳐, 28세에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계약법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만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의 관운도 재운처럼 열렸다. 리등훼이(李登辉) 집권기에는 각종 외국과 협상에 참가했고, 1999년 "양안은 특수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는 '특수양국론'을 기초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으며, 2000년 천슈이볜(陳水扁) 집권기에는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장관급)을 지냈고, 2004년 민진당 비례대표 입법위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급), 2008년에는 입당한 지 겨우 3년 만에 당주석이 됐다. 2012년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马英九)에게 80만 표 차이로 졌지만, 당내에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다시 손쉽게 2016년 민진당의 총통후보가 되었다.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이 이미 준비된 후보였다면 홍슈쭈는 페이스 메이커였다. 국민당 총통 후보 경선이라는 마라톤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뛰다가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고 난 뒤, 뒤로 빠질 것이라고 예상됐다. 경선 마라톤의 우승 주자로는 국민당 주석 겸 신베이(新北) 시장 주리룬(朱立仑), 입법원장 왕진핑(王金平), 부총통 우둔이(吴敦仪)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말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이후 민심 이반, 군룡무수(群龍無首, 여러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데 앞서나가는 용이 없다)인 국민당 내부의 분열, 왕진핑과 마잉주의 갈등으로 인한 견제 관계 등으로, 계산에 밝고 정치적 공학에 능한 그들로서는 선뜻 출마를 선언하지 못했다. 결국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마라톤은 끝나 버렸다.

물론 그들은 국민당 내부의 경선룰인 여론 지지도 조사에서 홍슈쭈가 30%를 넘기지 못할 것이며 다시 총통 후보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는 수학보다는 화학이나 생물에 가깝다. 계산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홍슈쭈는 당내에서 실시한 총통 후보 여론 지지도에서 46%를 획득했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당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열혈 민진당 지지자들의 표, 이른바 '역선택'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결과 국민당 내부에서는 더 이상 홍슈쭈를 반대할 절차상의 명분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2015년 7월 19일 국민당 제19차전당전국대표대회에서 홍슈쭈는 40초 동안의 전체 박수로서 국민당의 정식 총통 후보가 되었다. 페이스메이커가 마라톤에 우승한 꼴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한 국가는 마음대로 다른 타국의 선거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타국의 선거가 본국의 국가 이익에 불리한 영향을 조성한다면 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만의 총통 선거는 바로 타국의 국가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거다. 미국과 중국이 이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를 가늠해보는 온도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대만의 역대 총통 선거에서 그들에게 불리할 경우 말이든 무력이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선거에 관여해왔다. 미국 역시 이에 대응하여 항공모함 파견, 비공개 지지 철회 등의 수단을 써왔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타국의 선거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2012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투고를 통해 "그녀(차이잉원)가 최근 양안 관계의 안정을 계속적으로 유지할 능력과 의도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차이잉원은 이때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았다. 지난 6월 차이잉원의 미국 방문은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 이유는 우선 그의 양안 정책이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현상 유지"다. 미국은 양안 간의 통일도, 독립도 원하지 않는다. 양안이 통일되거나 독립해버린다면 중국을 견제할 대만 카드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현재 마잉주의 삼불정책(不统,不独,不武) 즉, 그의 임기 내에 통일도, 독립도, 전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상은 미국과 중국과 대만 내부의 교묘한 타협점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 임시방편적이며 언젠가는 그 모순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홍슈쭈는 차이잉원의 현상 유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라고 강조한다. 현상 유지는 모호할 뿐이며 이는 곧 차이잉원의 별명인 '콩신차이(空心菜,속이 텅 빈 채소)'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원래 대만 대학교의 장야중(张亚中) 교수 등이 주장하는 유럽 통합을 참고로 한 양안 통합의 견해를 대폭 받아들여 마잉주의 '92합의'(92共试, 각자가 구두의 방식으로 하나의 중국을 견지한다는 입장, 대만 측은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 각자가 표술한다는 입장이며, 중국은 하나의 중국만 강조한다)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일중동표(一中同表,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전체 중국의 일부분이다)와 양안 간의 평화 협상을 과감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대만 교육부의 교육 과정 개편에 반대하던 고교생이 자살했다. 국민당의 친중국 성향으로 교과 과정을 개편하는 것에 항의한 고교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민당의 교과 과정 개정 철폐, 교육부 장관 하야를 조건으로 달고 있다. 사실 이 교과 과정 개정은 이미 예정된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역사를 보는 두 개의 눈, 즉, 중국사관과 대만사관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 지난 7월 31일(현지 시각) 대만 교육부 앞에서 학생들이 '친(親) 중국' 기조의 교과서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차이잉원은 교육부 앞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지지 방문했다. 홍슈쭈와 국민당은 장비와 악비를 구분 못 하는 고등학생들이 과연 교과 과정 개정의 내용을 알겠느냐고 힐난한다. 마오쩌둥의 홍위병처럼 이제 고교생들까지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민진당 역시 지난해 대학생들의 '태양화 운동'을 보고서도 집권당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만의 주체성과 학생들의 자주성을 말살한다고 비판한다. 기실 이러한 극단적인 투쟁의 이면에는 대만의 특수한 역사 문화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대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지는 겨우 400년에 불과하다. 원주민, 이민, 식민, 후식민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만은 네덜란드, 스페인, 명나라의 정성공 장군, 청나라,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이런 다문화적인 특징과 식민으로 점철된 대만은 역사의 기억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 역시 이러한 서로 다른 역사의 기억과 단절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의 화해 조정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대만의 양당 정치는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인식과 양안 정책에 있어서 극명히 다른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여론 조사만 보면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대폭 앞서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알 수가 없다. 대만 선거만큼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당과 민진당을 대표하는 이 두 여성의 대결은 누가 승리하더라도 대만의 미래와 양안 관계, 중-미 관계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학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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