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으로 늦바람 든 것 가운데 하나가 페이스북인데, 요즘은 약간 중독 증세를 스스로 감지하곤 한다. 500여 명 남짓의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있다면, 아주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페친의 상당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녹색'이나 '적색'으로 생각하는 분들이다. 녹색 페친 가운데 최고령자는 환경재단 최열 대표이고, 가장 어린 페친은 녹색당에서 활동하는 20대의 이보나 활동가이다.
오늘도 바쁜 60대 환경 운동가
최열 대표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에서 자극을 받곤 한다. 미얀마의 오지에 직접 찾아가 소형 태양광 발전 전등을 전달하거나, 정치인과 함께 후쿠시마를 방문해 정치적 교훈을 얻은 소감을 전하는가 하면, 오늘(11일)은 열흘간 저명 인사와 '피스 앤 그린 보트'를 타고 "한-일 각 550명이 너무나 진지한 토론과 현장 방문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부산 터미널로 돌아왔단다. '환경'을 주제로 글로벌한 광폭 행보에서, 그의 '돌쇠'라는 별명을 떠올린다.
최열 대표는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환경 운동가이다. 그가 1982년 5월 1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작한 최초의 민간 환경 단체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1988년 공해추방운동연합으로, 1993년에는 환경운동연합으로 진화했다. 많은 동료 환경 운동가와 함께 이룬 성과이지만, 그는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과 쓰레기종량제, 자동차 요일별 운행제, 동강 댐 백지화 같은 환경 운동의 중요한 성과를 내는데 앞장섰다.
한편, 시민 사회 내에서 최열 대표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영향력' 중심의 운동에 매몰된다든지, 한쪽에서 실용주의라고 옹호하는 몰정치적인 행보, 또 친자본가적 성향과 활동에 대한 비판 등. 일면 타당하기도 하고, 당사자로서는 억울할 수 있는 비판이 꽤 많다.
그러나 최소한 최열 대표가 보이는 '광폭' 환경 운동에 대해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 1990년대와 2000년대 대표적인 사회운동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정치권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사회운동을 사적 권력욕으로부터 구분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살 수 있다. 오늘도 녹색 전환을 꿈꾸는 60대 환경 운동가는 바쁘다.
송전탑 아래 할매들과 연애하는 20대 녹색 정치인
녹색당 당원이 된 이래, 나를 자극하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에서, 녹색당은 나에게 행운이다. 그 중에서 대구와 청도에서 활동하는 이보나 당원은 주로 페북에서 접하는 관계이지만, 그의 불의에 맞선 당차고 거침없는 행보와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자극을 받곤 한다.
그녀를 스쳐 가듯 처음 본 날, 사무실로 돌아오던 버스에서 무심결에 검색창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찾은 <뉴스민>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뉴스민>의 2013년 10월 18일자 기사가 그것이다. (☞관련 기사 : )
이 기사의 부제는 "사회운동을 향한 거침없는 돌직구"이다. 당시 대구환경운동연합 1년차 새내기 활동가였던 이보나 당원의 눈에는 '대구'의 소위 '운동권' 사회에서 '남성'인 '선배 활동가'들이 보인 일상의 '권위 의식'과 '매너리즘', 그리고 소위 '꼰대스러움'에 '거침없는 돌직구'를 던지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를 읽는 동안 줄곧, 내 안의 '꼰대'와 '권위 의식', 그리고 '메너리즘'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녀의 현재 직함은 두 개인데, 하나는 '청도 34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당 탈핵특위 공동위원장'이다. 그녀는 여전히 송전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청도의 할매들과 함께 웃고, 울고, 놀고, 싸우고 있다. 제법 어울리는 몸빼 바지를 입고, 활기차게 할머니들 사이를 종횡무진 하는 그녀의 페북 소식에서 오늘도 자극받고 있다.
환경 운동과 녹색 정치가 만나는 면(面)을 기대하며
최열 대표를 위시한 1, 2세대 환경 운동 선배들이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그들은 왜 '녹색당'과 함께 하기를 주저할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그리고 지역의 크고 작은 환경 단체와 환경 운동가는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녹색 전환과 녹색 정치를 진심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 야당이나 진보 정당을 우회하기보다는 원칙과 신념에 충실한 '녹색당'으로 결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현실론도 있을 것이고, '녹색 정치'의 상에 대한 차이가 '현실'의 녹색당을 지지하는데 주저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의 녹색당이 실력과 활동에서 부족한 면이 많은 것 또한 주저하는 이유일 수 있다.
10여 년 전 최열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최열이 갖고 있는 철학과 생각을 포기하면, 최열이 아니다"라며 "환경 운동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겠다고 일갈했다. 또 "우리나라도 녹색당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7000여 명의 이보나가 당원으로 있는 녹색당이 창당한 지 3년이 넘었고, 내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환경 운동과 녹색 정치를 위해 헌신해 온 수많은 최열은 아직 녹색당원이 아니다. '광폭'도 중요하지만, 녹색 전환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데 동의한다면, 이제 녹색 정치의 전면에 나서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녹색 전환을 꿈꾸는 많은 환경 운동가와 녹색 시민들이 각각의 점으로 흩어져 있었다면, 그 녹색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고, 그 선이 모여 '면'을 이루는 길에 녹색당이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침내 녹색당이라는 너른 보자기가 '고탄소 회색 성장'이라는 구태의 낡은 정치를 감싸 안아,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녹색 전환을 이루는 것을 꿈꾼다.
꿈을 향한 출발은 이미 시작했고, 환경 운동가와 녹색 시민들이 내년 총선을 계기로 '면(面)'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최열 대표를 위시한 1, 2세대 환경 운동가 선배들의 광폭 행보와 기성의 관습을 깨는 이보나 당원을 위시한 젊은 활동가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계기를 만들면 어떨까?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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