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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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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검진 수치에 집착하지 마세요
"오늘 아침에도 혈당을 체크하셨어요?"
"네. 어젯밤에 늦게 밥 먹고 잤는데, 얼마나 높은지 걱정이 돼서요."

오실 때 마다 같은 질문과 비슷한 답을 반복하고 있는 이 환자는 몇 달 전 이상하게 피곤해서 병원에 갔다가,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약을 복용하지 않고 혈당을 조절하길 원해서 기본적인 생활 방식을 관리하고, 몸의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를 하고 있지요.

상담 과정에서 이 분이 당뇨 진단을 받은 이후 '당이 더 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혈당을 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의 가장 큰 문제가 지나치게 많은 생각과 걱정, 그리고 불안인데 혈당이라는 스트레스가 더해진 셈입니다. 건강이 좋아지기는커녕, 혈당이 잘 조절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만 당을 체크해 보시라고 당부했습니다.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당 수치가 급격히 나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요. 매 순간 변화하는 몸의 상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긴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에 웃음으로 답하는 것을 보면, 아직 이 분의 불안은 현재 진행형인 듯합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마음가짐을 바꿔야 건강에도 변화가 생기겠지요.

진료를 하다보면 검사 결과 나온 수치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분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수치는 늘 바뀌는 것이라고 말씀드리지만, 그럼에도 미세한 변화에 일희일비합니다. 내원할 때마다 혈압과 혈당을 재달라는 분도 있고(이런 환자의 대부분은 이미 고혈압약과 당뇨약을 복용 중에 있지요), 혈당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진단에 식단을 지나치게 제한해, 오히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나친 운동으로 몸에 피로가 쌓여 몸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관절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지요.

물론 검사를 받았을 때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에 들어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건강의 증거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정상 범위를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당장 중병에 걸리는 것 또한 아닙니다. 실제 장수촌으로 유명한 지역 사람의 통계 조사를 보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의 검사 결과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치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신속하게 수치를 떨어뜨려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수치 자체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보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생활 습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검사 결과 수치는 우리 몸과 마음이 어떻게든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적응한 결과, 그와 같은 몸의 상태가 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런 상황을 바꾸고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면, 무리하지 않는 수준으로도 몸은 좋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건강 관련 수치들은 자연스럽게 정상 범위에 가깝게 돌아올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실제 치료를 해보면 후퇴하거나 악화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일정한 수준의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의 복원력을 잃은 경우가 아니라면, 좋은 조건이 마련될 경우 우리 몸은 분명 스스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받습니다. 성적이 좋으면 기분이 좋고, 나쁘면 뭔가 뒤쳐진 것 같아 우울해 집니다. 건강검진표에 표시된 숫자들은 지금까지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대한 하나의 표시입니다. 약은 다음 성적표의 숫자를 바꾸어 줄 수 있지만, 몸과 마음을 쓰는 습관을 바꾸어주지는 못합니다. 숫자에 과민하기 보다는 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진짜 좋은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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