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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번 코스타리카처럼 살아보자! [초록發光] 2050년, 한국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한 시민 패널
추석을 1주일 앞둔 주말,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연령대의 남녀 시민들이 서울 남산 유스호스텔에 모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이는 고3 학생. 요즘 수능을 앞두고 있어서 힘들다고 짐짓 죽는 소리를 하며 나타났지만, 손에는 주최 측에서 제공한 책자를 쥐고 있었다. 행사장까지 오는 지하철 안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왔던 것 같다. 수능을 앞두고도 이렇게 참여해 주니 고마운 일이었다.

은퇴한 노동운동가, 베테랑 환경교육 강사, 중년의 병원 직원, 어린이 책을 집필하는 작가, 환경 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진로를 모색하는 아르바이트 학생 등.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누가 봐도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15명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35년 후인 2050년 한국 에너지 미래를 토론하기 위해서 모였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주최하는 '시민 참여형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 패널이다.

작년(2014년)에 수립된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은 2035년까지 핵 발전의 비중을 29%대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하였다. 1차 계획 때의 41%에 비해서는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과다한 에너지 수요 예측으로 오히려 새로 건설해야 할 핵발전소 수는 증가한 계획이었다. 3년 전에 경험했던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한국의 에너지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올해 수립된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도 핵 발전 확대 정책이라는 점에서 동일했다. 한국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고 전력 수요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수요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은 애초에 무시되었다.

7차 계획에 이어서 발표된 2030년까지의 온실 기체 감축 목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온실 기체 배출량은 2035년까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감축 목표라는 것도 개발도상국에게 요구되는 수준에서 약간 나아간 것에 불과했다.

이 모든 계획들은 10~20년 후의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핵 위험에서 벗어나고 기후 변화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우려와 열망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려운 미래 계획들이었다.

이러한 계획이라는 것은 소위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지금의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일종의 운명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방법론이 방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수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는 과거가 지배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따르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서 현재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토론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배제해 버린다.

시민들에게 주어진 몫은 전문가들이 운명론에 굴복하여 그려내는 미래를 단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누군가는 더 많은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더 많은 거리를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이 풍요를 즐길 것이다. 그 결과로 닥칠 지구 재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전문가들이 그려 낸 미래에 도전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낙오자를 자처하는 것이 될지 모른다. 미래를 내다볼 줄 몰라 결국에는 도태될 불평분자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 할 일인가.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거부하고 있지만, 미래를 그리는 다른 방법론도 존재한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격언을 따르는 것이다. 1970년대의 에너지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개발되고, 2000년대 본격적으로 인식된 기후 변화 위기에 맞춰 널리 퍼지고 있는 방법론이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상상하고 토론하여 정한 후, 그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소위 '백캐스팅(Backcasting)'이라고 부르는 방법론이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제법 알려지고 활용되는 방법론이지만, 두 가지 큰 아쉬움이 있다.

우선 에너지 정책에서 공식적인 독자적 방법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범적 혹은 보완적 방식으로만 검토되고 있으며, 주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집단에서 대안적 방식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추세 그대로 두면 맞이하게 될 미래―소위 BAU(Business As Usual)―가 현존 지배적인 에너지 시스템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에너지 정책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차지하고 있는 탓이다.

두 번째는 백캐스팅 방법론도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제2세대 방법론으로 '참여적 백캐스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캐스팅의 목표점이 되는 바람직한 미래를 설정하면서 그것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겨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운명론을 벗어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함께 결정하자는 것이다. 반복하지만 민주주의의 심화를 말하는 것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 가톨릭대학교 과학기술과민주주의연구센터, 시민과학센터, 한국과학기술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서울에너지드림센터 그리고 <프레시안>이 후원하는 '시민 참여형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 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면서, 2050년 한국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하고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백캐스팅의 목표점을 설정하는 것을 시민들의 숙의(熟議)에 맡기는 것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지난 워크숍에서 시민 패널은 2050년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하고 토론하기 위해서 4가지 큰 질문을 다루었다.

1) 미래에 바람직한 경제 모델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2) 미래에 에너지를 얼마만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고, 거기에 맞는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3) 미래에는 어떤 에너지원을 활용하고, 어떤 에너지 기술에 투자해야 하는가? 4) 누가 미래의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결정하고,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그 사업을 실시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바람직한 에너지 미래에 대한 상상 그리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선택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시민 패널들은 2차례에 걸쳐 진행된 각 4시간의 오리엔테이션과 예비 모임에서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한 교육과 토론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1박 2일의 워크숍에서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개발한 방법론과 작업 도구를 이용하여 전문가 강의와 질의응답 그리고 참여자 사이의 토론을 밀도 높게 진행하였다. 시민 패널들은 다른 시민들을 대표한다는 책임감과 한국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열정으로 진지한 토론과 신중한 합의를 일궈냈다.

▲ [그림 1] 2012년 세계 각국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과 시민 패널이 합의한 소비량 비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시민 패널은 4개의 핵심 질문을 놓고서 토론한 결과에 바탕을 두고, 2050년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 목표량을 합의하였다. 또 핵 발전과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중 그리고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량 범위를 결정하였다. 충분한 교육과 치열한 토론 끝에 시민 패널들이 합의해낸 한국 사회의 에너지 미래는 정부의 에너지 계획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 소비가 더 좋은 삶과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민 패널은 35년 후인 2050년에 한국의 1인당 소비량 목표를 석유로 환산했을 때 2.4톤(TOE)으로 정하였다. 이는 2012년 1인당 에너지 소비량 5.6TOE의 43.0%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57%를 감소시킨 양이다. 정부가 상상하는 2050년의 1인당 에너지 소비 추정량(7.7TOE)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68.7% 감소시킨 양)는 더욱 커진다([그림 1]). 한 마디로 정부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35년 후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면, 시민 패널들은 지금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합의한 것이다. 자칫 급격한 에너지 소비량 축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시민 패널들은 35년의 장기간에 거쳐서 달성해야 할 목표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시민 패널들은 토론을 통해서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미국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범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보다 적게 사용하지만 더 높은 삶의 질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 그리고 높은 삶의 질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높은 생태적 책임을 보여주고 있는 코스타리카 같은 국가를 꼽았다(상자 글). 시민 패널들의 선택과 합의는 2012년의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시민 패널의 역할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진들은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 목표를 포함한 시민 패널들의 선택을 반영하여 구체적인 정량적인 에너지 시나리오를 개발하게 된다. 또한 각 시나리오들에 대해서 온실 기체 배출량 등에 대한 함의 분석도 진행할 것이다. 시민 패널들은 10월 말로 예정된 2차 워크숍에서 각 시나리오들의 내용과 분석과 함의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최종적인 시나리오를 선정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그 내용은 11월 중순에 예정된 심포지엄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공개될 것이다.

▲ 주요 국가들의 일인당 GDP 및 지구 행복 지수의 비교(파란색 : 일인당 GDP(1000달러), 빨간색: 지구 행복 지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시민 패널들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로부터 국가별 비교를 위한 몇 가지 정보를 제공받았다. 주요 국가들의 일인당 GDP와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제공하는 '지구 행복 지수(Happy Planet Index : HPI)' 현황. 각 국가들의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일인당 GDP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GDP 지표가 경제적/물질적 성장 이외의 주관적 만족감이나 지속 가능성의 문제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표도 제시하였다.

지구 행복 지수(Happy Planet Index)는 2006년에 영국 신경제재단에 의해서 개발된 지수다. 이 지수는 각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복지(well-bing) 만족감과 기대수명을 국민 1인이 필요로 하는 자연자원의 양(일인당 생태 발자국)으로 나눠서 구한 것이다. 일반인의 예상과 다르게 2009년과 2012년에서 코스타리카는 행복 지구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참고로 2012년에 미국은 105위, 한국은 63위, 그리고 독일은 46위를 기록했다. 비교 국가 중 미국의 일인당 GDP는 가장 높지만, 복지체감도와 기대수명은 코스타리카보다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지구적 생태 자원의 양은 코스타르키라의 3배 가까이 된다.

▲ 주요 국가들의 일인당 GDP 및 지구 행복 지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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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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