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에 반대한 '불복종 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학생, 교수, 교사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도 1인 시위, 온‧오프라인 서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부의 국정화 방침을 규탄하고 있다.
국정 교과서 반대 선언 릴레이의 시작은 학자‧교수 사회에서 주도했다. 지난달 2일 서울대학교 역사학 관련 교수 34명이 반대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로 덕성여대, 부산대, 고려대, 서원대 등이 반대 선언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네트워크)에 따르면, 정부가 국정화 방침을 밝힌 12일까지 반대 선언에 참여한 교수 및 연구자 수는 2648명에 달했다.
12일 이후로는 단순 반대 선언을 넘어 집필 거부 운동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14일 연세대를 시작으로, 고려대, 경희대, 부산대 등에서 국정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는 교수들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학생들에게 직접 역사를 가르치는 현장 교사들 역시 1, 2차 교사선언을 통해 반대 선언을 했다. 총 1만900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했다. 18일엔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사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사회 원로,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국정화 저지 대열에 합류했다. 19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소설가 김훈·조정래 씨 등 원로 인사들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300여 개 시민·사회·여성·종교단체 활동가 총 600여 명은 국정 교과서 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일반 시민들의 반대 서명 운동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송민희 네트워크 활동가는 "매일 온‧오프라인 반대 서명 문의가 들어오고 있고, 참여 주체가 너무 많아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라며 "12일 정부 발표 이후 반대 움직임이 점점 더 커지는 추세"라고 했다. (☞ )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 대학생‧청소년, 기발한 대자보 선보여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국정화 반대 행동이 펼쳐지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의 대자보 행렬이다. 각 학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반대 선언이 이어지는 것과 별개로, 학생 개개인이 대자보를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각 대학에 나붙은 기발한 대자보들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다.
19일에는 연세대학교에 붙은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화제가 되고 있다.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모실 경애하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께서…"로 시작하는 이 대자보를 보면 궁서체와 빨간 글씨, 두음법칙이 파괴된 표현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이는 북한 노동신문이나 선전물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
내용 또한 해학으로 가득하다. "력사에 길이 남을 3.15 부정선거를 만들어내신 위대한 리승만 대통령 각하와, 유신체제를 세워 대통령선거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가장 숭고한 기쁨과 영광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의 무한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며 정부의 국정화 방침을 비꼬아 비판하고 있다.
고등학생 이하 청소년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청소년들 또한 대자보 쓰기, 1인 시위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에 따르면, 국정 교과서 선언에 참가한 청소년이 18일 기준 1570명을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에는 청소년 60여 명이 교복과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서울 종로, 광화문 일대에 거리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활동가는 "최근 국정 교과서 반대 운동의 중심에 학생들이 있다"며 "2년 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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