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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간얼쯔’ 문화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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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간얼쯔’ 문화를 아시나요? [임대근의 시시콜콜 중국문화] 사회적 권력 확장 위한 전략으로서의 관시 문화
여러 해 전 유명한 중국 여가수, 쑨위에(孫悅)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수양딸’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쑨위에는 하얼빈 출생으로 <평안하세요!>(祝你平安)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며 스타덤에 오른 가수다. 2000년 우리나라 관광홍보대사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중 이희호 여사를 만난 기회에 수양딸이 됐다는 후문이다.

중국에서 수양딸, 수양아들을 삼는 관습은 꽤 널리 퍼져 있다. 수양딸은 ‘간뉘얼’(乾女兒), 수양아들은 ‘간얼쯔’(乾兒子)라고 부른다. 거꾸로 양부모는 ‘간디에’(乾爹), ‘간마’(乾媽)라고 부른다. ‘간디에’와 ‘간마’를 합해 ‘간친’(乾親)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른바 중국의 독특한 ‘간얼쯔’ 문화다.

양부모와 수양딸, 수양아들을 맺는 일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친한 친구나 잘 아는 집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새로운 부모와 자식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데는 복잡한 인간사만큼이나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가 나서 ‘간디에’, ‘간마’를 맺어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귀한 자식을 잘 기르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또는 먼저 낳은 아이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 자식이 없는 운명이 아닐까 걱정하는 친부모의 마음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간친’을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나쁜 운을 없애고 아이를 잘 지키려는 뜻이 담겨 있다.

또는 아이의 사주팔자가 친부모와 맞지 않는 경우, ‘간친’을 맺어줌으로써 새로운 운명을 만나게 해주려는 뜻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아이가 많거나 조금 가난한 집의 ‘간친’과 맺어주려 한다. 악령들이 아이의 목숨을 시기할 만큼 너무 ‘귀하지 않게’ 자라도록 배려하는 풍습이다.

한번 맺어진 ‘간친’과의 관계는 평생을 이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3~4년 정도 이어지기도 하고, 일시적인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평생을 지내는 ‘간친’과 ‘간얼쯔’, ‘간뉘얼’은 친부모 못지않게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서로를 아끼고 돌봐주게 된다. 사회적 부모와 자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이와 ‘간친’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가 우선이지만, 동시에 친부모와 ‘간친’의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친부모는 ‘간친’을 위해 주기적으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선물을 하곤 한다. 물론 ‘간친’ 역시 친부모에게 답례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간디에’를 위해서는 모자를 준비하고, ‘간마’를 위해서는 신발을 준비한다. ‘간친’은 ‘간얼쯔’, ‘간뉘얼’을 위해서 밥그릇과 젓가락, 장수를 기원하는 자물쇠 등을 보낸다. 집안 사정에 따라 이런 선물들을 은이나 금으로 준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사정이 넉넉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관습이 달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간얼쯔’ 문화는 민족이나 지역별로 서로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 특히 베이징 같은 지역에서는 다른 사람의 ‘간친’이 되면 친아들과 친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쉽게 이런 요구를 하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와 친부모, ‘간친’이라는 삼각관계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 맺기가 수행된다. 아이를 중심에 놓고 이뤄진 관계의 표면적인 의도는 아이를 위한 행위이지만, 내면의 욕망은 어른들을 위한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이를 위한 문화가 어른들의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인간관계 맺기라는 ‘간얼쯔’ 문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중국의 ‘관시’ 문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인에게 접근할 때 ‘관시’ 없이는 어떤 일도 도모하기 어렵다는 말들도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중국에서 ‘관시’는 인간관계에 있어 거의 절대적인 문화적 특수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시’란 혈연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중국인이 선택한 사회적 관계의 표상이다. ‘혈연’으로 뭉친 이들의 가족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 사회에서 ‘관시’는 사회적 관계를 혈연관계로 뒤바꾸려는 관습이다.

중국어에는 ‘동학’(同學), ‘동료’(同事), ‘동지’(同志), ‘동탁’(同桌: 짝꿍)처럼 유달리 ‘같음’을 강조하는 단어가 많다. 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맺어진 사회적 관계를 통해 상대와 자신의 동질성을 강조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동질성의 강조는 결국 사회적으로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힘(권력)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간얼쯔’ 문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혈연관계로 전환함으로써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혈연 네트워크 속으로 끌어들여 ‘동일시’ 과정을 수행하는 문화적 ‘전략’의 일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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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및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이다. 중국 영화, 대중문화,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강의와 번역, 글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영화포럼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초국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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