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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약을 먹어도 건강이 안 좋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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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약을 먹어도 건강이 안 좋아질까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몇 년째 철마다 장뇌삼을 먹고, 공진단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고 있어요. 그런데도 피로가 가시질 않네요. 그나마 안 먹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고요. 검사에도 별 이상은 없다고 하는데…. 아마 타고 난 듯해요."

"큰 맘 먹고 산삼을 구해서 먹었는데, 잠깐 좋다 다시 마찬가지네요. 주변에서 다른 것을 권해서 먹어 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상담하다 보면 시쳇말로 몸에 좋다는 것들을 드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영양 보충제나 기능성 식품을 필두로 홍삼, 장뇌삼, 산삼, 녹용, 공진단 등 종류도 많지요. 본인이 힘들어서 직접 찾아 먹는 경우도 있고, 자식들이 사서 보내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분도 있지요. 건강이 좋아졌다는 경우도 있고, 큰 변화는 없지만 감기와 같은 잔병치레를 안 하게 되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경우처럼 몸에 좋은 것을 남들보다 더, 그리고 꾸준히 챙겨 먹는데도 나아지는 기미가 별로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은 안 먹으면 왠지 불안하고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겪기 때문에 지속해서 복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먹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하는 경험담을 살펴보면, 그 자체가 잘못되거나 약효가 없는 경우는 드뭅니다(물론 간혹 불량식품 같은 것들도 있긴 하지요). 그런데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내 몸이 그것을 받아들여도 크게 효과를 거둘 수 없는 상태이거나, 복용하는 식품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을 틀려고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물이 나오지 않거나 물줄기가 약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먼저 물탱크에 물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몸을 보하는 것들이 필요하고, 그런 것을 먹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도 내게 맞는 것을 복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먹고 좋았다거나 단순히 유명하다고 해서 내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도리어 때론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은 갈 수 있어도 친구 따라 약을 먹어서는 안 되겠지요.

다음으로 수도관 어딘가가 막혀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는 습과 담, 그리고 어혈과 같은 것들이 기혈의 순환을 막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보하는 것을 먹어도 별 효용이 없거나, 때론 과해진 압력이 어디론가 밀려 나와서 없던 증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엔진에 때가 끼었는데 액셀러레이터만 밟는다고 출력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럴 때는 기혈의 순환을 막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도관에서 물이 새는 경우입니다. 크게 쓰지 않아도 지속적인 기혈의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늘 피곤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몸에 좋다는 것을 그렇게 먹는 데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분 중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리 부어도 일정 수위 이상으로 물이 차오르지 않지요. 이럴 때는 독을 고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은 회복되지 않고 통장 잔액 또한 물을 따라 빠져나가서 마음이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자 하면, 내 상태를 살피는 작업을 우선해야 합니다. 정말 부족해서 그런지, 어딘가 꽉 막혔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구멍이 났는지를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살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요.

언젠가 한 건강 프로그램에서 '나는 건강을 위해 절대 먹지 않는 것이 있다'는 질문에 보약, 한약 등을 피켓에 적은 의사 선생님을 보았습니다(저는 밥상이란 주제에서 그런 답을 낸 것을 보고 갸우뚱하다가 의식동원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답을 낸 것은 지나친 보신주의에 대한 경계였겠지요. 진료하면서 뭔가 특별한 것을 먹어서 좋은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경험했을 테니까요. 그러한 욕망은 이해는 되지만, 건강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안전하고 좋은 약은 일상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늘 먹어도 좋고, 제대로 먹으면 좋은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니 이보다 좋은 약이 없지요. 물론 살다 보면 이것만으로 부족한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마치 수레바퀴 자국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한 바가지의 물(꼭 필요한 만큼의 약)이 꼭 필요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는 물길이 이어지기를 참고 견디기보다는 필요한 조처를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그 후 물고기는 다시 강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바퀴 자국에 누워 한 바가지의 물로 연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계속 먹어도 건강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더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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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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