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 해경 지휘부와 현장 구조 세력 등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모르쇠, 책임 회피로 일관했고, 유가족은 가슴을 쳐야만 했다. (☞관련 기사 : "304명, 구할 수 있었다" 사고 당일 타임라인 보니…)
세월호 특조위가 주최한 청문회가 14일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렸다. 3일 일정 가운데 첫날인 이날 주요 쟁점은 참사 발생 초기 해경 지휘부와 현장 출동 구조 세력의 구조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였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을 비롯해 이춘재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유연식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 조형곤 목포해경 경비구난과 상황담당관, 김경일 목포해경 123정 정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150여 명의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이른 오전부터 청문회장을 찾아 증인 신문 과정을 지켜봤다.
질의에 앞서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발언과 달리, 이날 청문회는 유가족들의 답답함을 가중시켰다.
목포해경 측 조형곤 상황담당관은 사고 초기, 현장 상황에 대해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 경감은 "정확한 상황을 몰라 '바다에 뛰어들라'고 할 수도 없어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온 걸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직원이 저한테 보고를 안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또 진도 VTS와의 교신이 원활하지 않았던 데 대해선 "생각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서해해경 측 유연식 상황담당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진도 VTS가 세월호와 교신 중인 사실을 알면서도 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느냐"는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원장의 질문에 "상황이 발생하면 계속 보고가 올라와야 하는데 보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구난구호 활동의 감독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가 교신 확인을 안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물음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이에 권 소위원장은 "당시 세월호랑 교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었느냐"고 질타했다. 유 담당관의 답변을 듣던 유가족들은 야유를 보냈다.
이춘재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또한 '해경 123정 정장에게 배에 올라가라는 지시를 왜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20km 떨어진 데서 우리가 할 수 있었겠느냐"며 "일단 현장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해 유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국장은 이날 질의를 통해 당시 해경 본청 상황실이 구조보다 '청와대 보고'에 집중돼 있었음을 확인시켰다. 참사 당일, 해경 123정은 현장에 도착해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본청 상황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본청 상황실은 승객 구조 여부가 아닌, 명단 작성이 안 됐는지를 물었고, 이에 대해 이호중 위원은 "상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처음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 국장은 "구조 활동을 하게 되면 명단 파악이 먼저"라며 "정보 수집을 하고 공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가 하면, "돌이켜 볼 때 퇴선 명령은 언제 해야 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9시 30분 이전에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를 지켜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9시 30분 넘어 도착한 해경의 책임이 아니란 얘기"라며 "끝까지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재판에서 구조 책임자 가운데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인 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경위는 재판, 감사원 조사 등에서 승객들에게 퇴선 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승객들이 선내에 갇혀 있는 상황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그는 그러나 이날 '상황을 알았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는 질문에 "너무 긴박해서 (퇴선 방송)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해 유가족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위원들은 그러나 "123정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버렸지만 더 큰 책임은 해경, 서해청, 목포해경 등 책임자에게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김석균 전 해경청장은 "세월호와 구조 함정들이 교신하지 않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성찰이 남고, 제가 청장일 때 구조 작업이 수행됐기 때문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너무한 것 아니냐"... '파란 바지 의인' 김동수 씨 자해 시도
청문회를 지켜보는 유가족과 관련자들은 내내 답답함을 호소했다.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이 나올 때마다 이들은 분노를 억눌렀다. 그러나 결국 참던 화는 오후께 터져버리고 말았다.
오후 첫 번째 정회가 끝나고 다시 청문회를 시작할 무렵, 참사 당시 20여 명의 학생을 구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린 화물기사 김동수 씨가 "한마디만 하겠다, 너무한 것 아니냐. 억울하다"며 점퍼 주머니에서 작은 흉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자신의 상의를 들춘 뒤 배에 흉기로 수 차례 자해를 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 씨의 부인은 충격으로 쓰러졌고, 청문회가 잠시 중단됐다. 박상욱 당시 목포해경 123정 승조원이 "구조정이 해류에 밀린 것 같다"고 답변한 직후였다.
일부 유가족들은 오열하며 "위증하지 마라", "미쳤다"며 고함을 질렀다. 유가족들은 증인뿐 아니라 위원들을 향해서도 "재판 기록 그대로 읽고 있다"며 "가족들이 다 열불 나서 죽을 지경"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러나 이내 진정하고 장내 질서를 정리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대변인은 "(유가족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위원들) 질문 내용에 답이 있다"며 "한 번에 답이 나오는 거면 애초에 이런 일도 없었다"며 다독였다. 이에 유가족들은 특조위 위원들에게 "위원님들 위축되지 마시라"고 크게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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