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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도 두려워하는 中 대중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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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도 두려워하는 中 대중 민족주의 [박홍서의 중미 관계 돋보기] 중국의 대중 민족주의

최근 중국 당국은 광둥 지역 노동 운동가를 대거 체포했다. 자생적 노동 운동에 대한 강경한 탄압은 그만큼 노동 운동을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증좌이다. 1989년 톈안먼(천안문) 사건 때 '베이징 노동자 자치 연합'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사실 역시 이와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노동자의 나라라는 헌법 제 1조는 온데 간 데 없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 당국조차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정권 비판 세력이 있다. 대중 민족주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도대체 너희들이 하는 게 뭐야? 외교부? 국방부? 맨날 항의만 해대고, 이름을 겁쟁이부(软蛋部)로 바꾸지 그래."

최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유약한 대응을 질타하는 대중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이다. 대놓고 시진핑을 '시겁쟁이(习软蛋)'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대중 민족주의 세력의 논리는 단순하다. 왜 정부가 중화 민족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고 또 보호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미제국주의"를 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국 당국의 타협적인 행태에 더 큰 비난을 퍼붓는다. 최근 NLL을 월경한 중국 어업 관리선에 대해 한국군이 경고 사격을 가했을 때도 그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외교 문제에 관한 중국 당국의 유약한 모습은 모든 게 '악'으로 치부된다.

중국 대중 민족주의의 끝판왕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부가 팔려나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国可以说不)>이었다. 탈냉전기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현실화되고 또 1995년 타이완(대만) 해협 위기가 붉어지면서 그 내용의 즉물적 조야함에도 불구하고 책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미국을 비난하는 쇼비니즘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역시 그 예봉은 '정신 못 차리는 정부, 공산당'에 겨눠져 있다.

사실, 대중 민족주의자들의 정권 비판은 오늘날만의 사건이 아니다. 1919년 5.4 운동이 그 대표적인 전례라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파리 강화 회담에서 돤치루이(段祺瑞) 정권은 산둥 반도에 대한 일본의 이권을 묵인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은 거리로 뛰쳐나와 정권 타도를 외쳤다. 정권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돤치루이 정권은 결국 일본과의 약속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1999년 나토군의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으로 인한 반미 시위나, 2005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한 반일 시위에서도 중국 당국은 대중 민족주의의 휘발성을 우려했다. 애초 정치적으로 동원된 시위가 통제 가능 수준을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관영 언론들은 부랴부랴 '냉정한 자세'를 주문하고 시위를 자제시켰다. 비난의 화살이 정부의 유약함, 무능함에 돌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발로였다.

결국 민족주의는 중국 정부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그것은 체제 결속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체제를 위협하는 저항 세력의 가공할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타이완 문제와 같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문제에 대해 중국 당국이 절대 타협적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 민족주의 세력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와 같이 당황스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려 하고 있는가? '애국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중국 당국은 이제 민족주의를 편협한 쇼비니즘으로 몰아간다. 그 대신 애국주의는 당신이 어떤 민족이든, 어떤 계급이든, 또 어느 지역에 살든 상관없이 훨씬 건설적이고 포용적인 개념이라고 선전된다. 당국가 체제인 중국에서 애국주의는 곧 공산당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당국가가 내린 결정은 군말 말고 무엇이든 따르라는 것이다. 국가(state)와 민족(nation)의 갈라치기다.

사실, 국가로부터 민족을 적출해내려는 정치적 기획은 비단 중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후기 산업 사회의 국가들이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설명대로 근대 유럽 제국이 민족 개념을 호출해 정치적 통합을 기도했었다면, 통치 권력은 이제 다시 국가로부터 민족을 퇴출시킨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고립적 의미의 민족 개념이 영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국정 교과서 주도 세력의 '건국절' 띄우기도 국가로부터 민족을 들어내려는 권력 의지가 내재돼 있다. 건국절 담론은 친일 대 반일이라는 민족주의적 코드를 폐기하고, 국가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민족주의가 비판 세력의 무기가 되는 상황을 봉쇄하겠다는 권력의 영악한 꼼수다.

중국의 대중 민족주의는 20세기의 산물이다. 진한 이후 중화제국의 기반은 민족이 아니라 문명이었다. "천하에는 경계가 없다(無外)"는 중화제국의 오래된 논리 속에는 민족이 파고들 틈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와의 접촉, 그리고 반식민지화 상태에서 중국의 통치 권력은 근대 유럽의 산물인 민족주의 이념을 이용해 국가 체제를 강화하였다.

그것은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항일 의식으로, 1958년 대약진 시기 곧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열정으로, 1990년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열풍으로 이어졌다. 2015년에도 여전히 티비에서는 항일 드라마들이 넘쳐난다. 동시에 민족주의는 애국주의 담론에 의해 그 휘발성이 중화되고 있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서로 떨어뜨리려는 중국 당국의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실패하는 순간 중국 공산당 정권은 대내적으로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를 겪을 것이란 점이다. 타이완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 등을 둘러싸고 중국 당국이 미국에 타협적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 바로 그러한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다.

외교인가 아니면 대내적 정당성인가? 두 선택지 사이에서의 딜레마는 민족주의라는 양날의 칼을 딛고 서왔던 중국 통치 권력의 원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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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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