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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이사 갑니다”는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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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이사 갑니다”는 무슨 뜻일까? [임대근의 시시콜콜 중국 문화] 중국어의 언어 유희, 헐후어(歇後語)

중국어에서 해음(諧音) 현상은 일상생활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해음이란 완전히 같거나 비슷한 발음을 가진 글자들의 뜻을 서로 바꾸어 연상하는 방법이다. 속담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중국어에도 우리말처럼 많은 속담들이 있다. 속담은 말을 활용해서 상징이나 은유적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만큼 해음 현상이 더 깊이 파고 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자님 이사 갑니다(孔夫子搬家)"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뜻일까? 중국인들은 이 말을 뒤에 붙는 다른 표현과 짝을 이뤄 쓰곤 한다. 뒤에 붙는 표현은 "온통 책뿐(淨是書)"이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공자님'은 "공부를 많이 하신 성현"이니, 만일 이사를 간다면 옮겨야 할 짐이 '온통 책 뿐'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앞뒤 말을 이어 붙여 만든 속담을 '헐후어'(歇後語)라 부른다.

중국어의 언어 유희, 헐후어

'헐(歇)'이란 '간헐(間歇)'이라는 우리말에서처럼 '쉬다'는 뜻이고, '후'는 뒤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뒤를 쉬는 말'이 된다. 대체로 헐후어의 두 짝 중 앞부분에는 비유를 나타내는 말이 오고 뒷부분에는 그 의미를 직접 알려주는 말이 온다. 뒷부분의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지 않고 '쉼'으로써, 앞부분만으로 그 뜻을 짐작케 하는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말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자님 이사 가는 날–온통 책 뿐"이라는 헐후어는 앞뒤 표현 모두 알쏭달쏭하다. 이 헐후어는 책이 많은 상황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비밀은 바로 해음에 있다. 책을 나타내는 중국어 '수(書)'는 적지 않은 해음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글자가 바로 '수(輸)'이다. 두 글자는 자음(성모)과 모음(운모)은 물론 성조까지 완전히 같다. '수(輸)'는 '지다', '패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풀어보면, 이 헐후어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중국은 한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늘 '공한증'을 이기지 못하고 지곤 하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중국인들이 자조하거나 자책하면서 이 헐후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중국인이 "공자님이 이사 가는군"이라고 말하면, "또 졌군"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외조카가 등불을 듭니다(外甥打燈籠)"라는 헐후어도 있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이 말의 뜻은 뒷말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 뒤에는 "외삼촌을 밝힙니다(照舅)"라는 말이 온다. 중국어에서 '와이성(外甥)'은 누나나 여동생의 아들을 일컫는다. 앞뒤 전체 문장의 뜻은 "외조카가 등불을 들어 외삼촌을 밝혀줍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외삼촌'을 나타내는 말 '지우(舅)'는 '옛'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지우(舊)'와 완전한 해음이다. 다시 말하면, '자오지우(照舅)'는 '자오지우(照舊)'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어에서 '자오(照)'는 '비추다'는 뜻도 있지만, '~에 따라서', '~에 근거해서'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자오지우(照舊)'는 '이전대로'라는 말이 된다. 즉 "외조카가 등불을 듭니다–외삼촌을 비춥니다"라는 헐후어는 "아무런 상황도 변하지 않고 이전과 같다"는 뜻을 나타낸다.

"일이삼오육(一二三五六)"이라고 숫자를 말하는 중국인이 있다면, 이는 숫자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중간에 '사(四)'가 없는 것이다. 이 헐후어의 직접적인 표현은 '메이스(沒事)'다. "괜찮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메이스'는 "사가 없다"는 말인 '메이쓰(沒四)'와 해음이 된다. "일이삼오육"은 곧 "괜찮아요"라는 뜻인 것이다.

직설적인 표현 피하는 언어 관습이 만들어낸 '말놀이'

중국인들은 해음 현상을 십분 활용하여 이렇게 재미있는 '말놀이'를 하고 있다. 헐후어뿐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관용어에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기관지염'을 나타내는 말, '치관옌(氣管炎)'은 '공처가'를 뜻하는 '치관옌(妻管嚴)'과 낱말 자체로 해음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저 사람 오늘 기관지염 걸렸어"라고 말하면 "저 사람 공처가로군"이라는 뜻이 된다. "앞을 향해 나아가자"는 말인 '시앙치안칸(向前看)'이 자주 "돈을 향해 나아가자"는 말인 '시앙치안칸(向錢看)'으로 쓰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이런 언어 유희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의 대화법을 한 걸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예로 든 말놀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국인은 특정한 문제나 상황에 대해 '어떤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하는 태도를 자주 보이는데, 위에 소개한 언어적 관습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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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및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이다. 중국 영화, 대중문화,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강의와 번역, 글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영화포럼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초국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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