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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를 읽고 '펑펑' 울었던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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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응답하라, 시를 읽고 '펑펑' 울었던 그대여!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⑦]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새해 처음으로 다룰 책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입니다. 이 책은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정재찬 교수가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시 읽기 강좌 '문화 혼융의 시 읽기'를 위해 정리한 내용을 모은 시 에세이입니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박노해 시인의 '다시'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명시 46편을 새로이 해석하고, 대중문화와 함께 읽은 책입니다. 교과서로만 시를 배우고 지나간 학생들이 최고의 강의로 선정한 내용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눈물짓게 하는 새로운 해석이 가득한 이 책은 오직 입시를 위해 엄숙하게 문학을 소화한 독자에게 시 읽는 기쁨을 주고, 일상의 세계에서 시를 이해하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최근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사장이 선수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출간 7개월 만에 5만5000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좀처럼 문학이 팔리지 않는 시대임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판매죠.

이번 시간 대담자들은 극히 감성적인 이 책에 눈물 흘린 경험을 고백하는 한편,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이 수강생과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에서 우리 문학의 한계도 읽습니다.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 이번에는 시 에세이를 다룹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익숙한 시를 새롭게 읽게 도와주는 책


이홍 : 2016년 새해 첫 책을 다루게 됐습니다. 이번에 함께 이야기할 책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입니다.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현대 시 강의에 사용할 원고를 바탕으로 만든 책입니다. 무척 흥미로운 시 에세이 책이죠. 아무래도 문학 분야는 장은수 대표께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책을 읽은 전반적인 소감부터 이야기해 보죠.

장은수 : 이 책은 '응답하라 1984'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감수성이 살아 있어요. 두 가지 특징을 이야기하면 좋을 텐데요, 우선 이 책에 수록된 시, 노래 중 우리 세대가 모르는 작품은 없어요. 책의 바탕이 되는 내용이 아주 익숙하다는 거죠. 이 책은 20대인 대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를 담았지만, 실제 내용은 오히려 40대 이상 실버 세대를 자극해요.

둘째로, 매우 친절합니다. 정말 친절하게 시를 설명해요. 책의 부제가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인데, 아마 이 점을 고려해서 부제를 이렇게 선정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예요. 이 시를 처음 보는 사람도 친숙하게 콘텐츠에 녹아들어 갈 수 있어요.

이 두 가지를 우선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작품 해석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전반적으로 감성을 잘 살리면서 갈피를 잘 짚어준 해설서입니다.

이홍 : 대학생 때 문학을 공부하면서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시 습작을 했는데요, (웃음) 이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한때 저처럼 시인의 꿈을 가졌거나, 지금 시를 습작하고 있거나, 혹은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그들 모두에게 각각의 의미와 감정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상투적으로 시를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를 매개로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시에 관한 설명서가 아니라 느낌을 주고받는 책이지요.

물론 시를 여태 즐기지 않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뛰어나고요. 시어가 전달하는 울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를 알려줍니다.

다만, 계속 읽다 보면 지루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다소 반복되는 패턴 때문이에요. 이 책이 말하는 내용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은 중반 이후 지겨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아쉬움이 결정적인 단점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근래 우리가 선택한 책 중 가장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런 책이 가지는 다른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말 시의 참맛을 알고 싶다면 그냥 시만 읽는 게 좋습니다."

대학 시절 현대시론 강의 때 들었던 교수님 말씀입니다. 시가 어렵고 난해하다고 해설과 함께 읽으면 시 자체를 외면하게 됩니다. 이 책은 시를 교과서적으로 읽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교과서적으로 읽지 마라"는 메시지가 또 하나의 교과서적 읽기가 될 수 있죠. 하나의 완결된 운문이 가진 무한대의 확장성과 그에 따른 해석이 낳을 무궁무진한 상상을 막습니다. 물론 강의를 위해 이런 형태는 피할 수 없죠. 어쩌면 시라는 장르의 한계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겠네요.

장은수 : 이 책이 가장 재미있는 건, 대학 강의 내용이라는 겁니다. 다루는 시를 보면 하나같이 유명한 작품이고, 우리가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배운 작품이에요. 말인즉슨, 우리는 여태 시를 관습적 읽기의 대상으로 대했다는 겁니다. 고교 시절까지는 어떻게든 시를 읽습니다만, 그 후 문학에 흥미를 붙이지 않은 이가 시를 멀리한 원인이겠죠. 이 책은 그 부작용을 해독하려 했습니다. 시란 자유롭게 읽어야 하고, 작품에 자기의 느낌이나 체험을 얹어 창조적으로 읽어야 하는데, 우리의 시 읽기는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이 책은 스무 살 정도 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리 어렸을 때 읽은 교과서적 읽기 방식을 버리게 도와줍니다. 어떻게 보면 그 후 연구의 진전에 따라 얻은 새로운 읽기 방식을 알려주고, 어떻게 보면 정재찬 교수 본인의 창조적 해석을 가미해 (시와 가깝지 않은) 일반인이 작품에 대해 가진 교과서적 해석, 정답이 있는 해석의 한계를 해소해줬습니다. 그 덕분에 이 책의 독자는 우리가 익숙한 시에서 새로운 발견을 기쁨을 얻을 수 있죠.

독자의 반응을 봐도 이 책이 단순히 독자에게 감성적으로만 다가가는 게 아니라, 시를 새롭게 읽는 힘을 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독자의 블로그를 보면 발견의 기쁨을 이야기한 글이 많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시 대부분이 어찌 보면 익숙할 대로 익숙한 작품이지만, 이처럼 오래된 작품도 창조적으로 해석하면 충분히 독자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이 책의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축축합니다. 속된 말로 '쌍팔년도' 감성이에요. (웃음) 저자가 일부러 이런 작품을 고른 것 같긴 합니다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작품보다 인생의 밑바닥에 결부된, 연민을 일으키는 시적 대상에 대한 탐구가 눈에 띕니다. '꼭 이렇게 읽지 않아도 되는데' 싶은 작품도 인생론적으로 읽었습니다. 시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니 이렇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렇게까지 읽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책에서 사진을 사용했다는 점도 저는 조금 비판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에 집중하면서 독자가 비판적 거리를 갖고, 이를 통해 상상할 여지를 남겨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은 시를 소개한 후 어울리는 사진을 딱 배치해요. 독자가 거리를 갖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확 몰입하게 되죠.

그리고 이건 조금 맥락이 다른 얘기이긴 합니다만, 사진을 사용하는 데 저작권을 표시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출처를 밝혀주는 게 좋으리라 봅니다.

이홍 : 저도 '축축하다'는 표현에는 일부분 동의합니다. 하필 이 책을 읽는 기간 <응답하라 1988>의 종결을 보면서 감성이 더 휘둘린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다만 언어의 힘을 독자가 발견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장치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목과 표지, 본문 구성에서 출판사가 나름 일관된 원칙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사진도 그 맥락에서 보고 싶어요. 편집부가 콘셉트에 따른 진행 방향을 잡았고, 방향에 따른 실천에 따라 책을 만들었어요. 감성적으로 너무 갔느냐 아니냐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시만 담은 건 아니에요. 산문도 나오는데, 책의 정서까지 고려해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대표성을 만든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책은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어는 표피적인 부분과 내재적인 부분 모두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기 마련인데, 우리 시대는 이런 언어의 힘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언어는 예전보다 다양해졌지만 그만큼 거칠어졌고, 보다 직선적으로 변했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메마르고 건조하지요.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를 통해 시어 하나하나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새로이 발견될 수 있느냐를 호소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발견을 경험케 해주는 책입니다.

장은수 : 그렇죠. 언어의 새로운 발견이고 시의 새로운 발견이에요. 저자가 시와 그림과 노래 가사와 영화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묶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책에서 만들었습니다. 대중의 시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다는 점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이 시에 담긴 정서로 지금의 20대를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조금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2000년대 이후 새로이 나온 과격한 작품은 이 책이 소화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새롭게 읽자, 는 주제에 조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선정한 것 같습니다.

이홍 : 저는 저자의 확고한 의도로 파악했어요. 이 책은 교과서로는 시를 봤지만, 시집은 좀처럼 사보지 않은 이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장석남 시인의 시를 챙겨본 사람 정도까지 독자층을 넓혀버린다면, 오히려 이런 식으로 분석한 책을 쓰면 안 되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나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시집을 집에 꽂아 두진 않았지만 이런 시를 늘 읽어왔고, 젊은 시절 연애편지 쓸 때 시를 베껴 본 사람의 감성을 건드려주려 한 거죠. 이 의도가 작용해 세대 안에서 확산이 일어났죠.

장은수 : 말 그대로 '응답하라'가 되는 거죠. (웃음)

▲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 ⓒ프레시안(최형락)

장년 남성을 위한 시 해설집에 '응답하라'

이홍 : 이 책은 복고적입니다. <응팔>과 맞닿는 정서가 있어요. 이게 우리가 여태 다룬 다른 책과 크게 다른 연령별 판매 결과로 나타납니다.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책의 40~50대 구매 비율이 23.3%, 50~60대는 19.9%에 달합니다. 특히 50~60대의 경우, 시·에세이 분야나 문학 전체 분야의 구매 비율에 비해 두 배가량 됩니다. 장년층이 이 책에 크게 열광했다는 증거죠. 보다 세밀하게는 장년층 남성 독자 비중이 매우 큽니다.

장은수 : 50~60대 남성 구매자 비율이 무려 13.2%(같은 나이대 여성은 6.7%)나 돼요. 이들보다 이 책을 많이 읽은 연령대는 전통적으로 출판 시장의 최대 고객층인 30~40대 여성(18.1%)밖에 없어요. 40~50대 여성(12.7%) 점유율보다 50~60대 남성 점유율이 높은 건 아주 이례적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60대 이상 남성 독자 구매 비율도 8.7%나 돼요. 해당 연령대의 시·에세이 구매 비율은 3.7%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이 정도로 장년층이 몰린 책은 우리 대담한 이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초반 학번 세대가 움직인 거죠. 이 책의 구매 통계에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봐야 하지 않을까요?

▲ <시를 잊은 그대에게>와 교보문고의 시/에세이 전체 부문에 대한 남녀 연령대별 구매 점유율 비교. 남성은 거의 전 연령대에서 시/에세이 분야 평균보다 이 책을 더 열심히 읽은 반면, 여성은 이 책에 대한 특별한 선호도를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이홍 : 보다 연령대를 넓혀 잡더라도 전통적으로 문학 분야의 주요 구매층인 30대 여성까지가 이 책이 제대로 호소한 연령대입니다. 책이 목표로 한 20대 공략에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정작 출판사는 젊은 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는데 말입니다. 출판사 내부 리서치에서도 젊은 직원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고 '공대생의 가슴을 울렸다'는 카피도 20대를 의식한 것 같은데, 판매 결과가 이렇다면 책의 판매 전략이 성공했다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휴머니스트 : 우리 사회에서 40~50대 남성의 이미지가 지금의 공대생 이미지와 겹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초기에는 분명 장년 남성층의 반응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젊은 독자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홍 : 이 책을 기획할 때 설정한 주요 독자층은 누군가요?

휴머니스트 : 처음에는 40~50대 여성을 가장 큰 독자층으로 봤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의 정서는 어느 정도 40~50대 감성에 맞춰졌습니다. 다만 실제 강의에서 대학생의 반응이 아주 좋았고, 출판사 내 젊은 직원의 반응도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기에 젊은 이미지를 심어 20~30대와 접촉면을 넓히려 했습니다.

초기 원고 작업을 할 때, 저자께서도 다루는 소재를 현세대에 맞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셨습니다. 20대에게 더 친숙한 문화 코드를 끌어들이거나, 보다 동시대 시를 가져올까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호소력이 있으리라 판단해, 이와 같은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 이 강의의 목적이 '이런 레퍼토리를 알려줄 테니, 너희는 너희의 방식으로 소화하라'는 거였습니다.
장은수 : 이 책의 독자가 장년층에 집중됐다는 데서 이 시대 문학의 한계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이 이미 우리 사회의 관심에서 빗겨난 지 오래란 거죠. 특히 시가 그렇고요.

시를 한 번이라도 읽어야 한다는 감성 욕구를 가진 세대가 장년층에 한정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세대는 시에 친숙하잖아요? 아마 저자의 대중 강연 참석자도 장년 세대가 대부분이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죠. 당장 롯데 자이언츠는 구단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 화제가 됐죠. 장년층이 문학에 익숙한 세대니, 요즘은 (장년층이 의사 주도권을 쥔) 기업의 강의 때도 문학 관련 강의가 많습니다.

저는 독자층을 고려하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가장 큰 원인은 언론 홍보에 있다고 봅니다. 지난 연말 JTBC <김제동의 톡투유>에 소개되기도 했고, KBS <TV, 책을 보다>에도 소개됐습니다. 이런 방송을 즐겨보는 연령대는 당연히 장년층이죠. 이런 집중적 방송 홍보가 연말에 집중됐어요. 판매가 떨어질 때 즈음 다시 확산하는 효과를 얻었죠.

제가 지난주 창원의 한 독서 클럽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2월 읽을 도서로 이 책을 선정하셨더군요. 아마 장년층이 모인 여러 독서 공동체에서 이 책의 제목이 가진 가공할 호소력에 반응했을 겁니다.

출판사는 40~50대 여성층을 주요 독자로 고려했지만, 실제로는 이 책을 읽자는 제안을 남성이 더 많이 했으리라 봅니다. 노동 전선, 인생 전선에서 그간 받아온 상처를 이 책이 보듬어줍니다.

이홍 : 인구 구조가 부의 흐름을 바꾼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관련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장이든, 핵심은 인구 구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간과합니다. 콘텐츠 기획할 때 인구 구조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출판의 경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30대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얘기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50대가 출판계의 주요 타깃이 되는 시대가 2~3년 안에 오리라고 봅니다.

이 책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입증하죠. 이 책은 50~60대 남성이 문학, 그것도 시 관련 책을 읽지 않으리라는 편견을 깼습니다. 사실 이들은 1970~80년대에 왕성하게 독서에 몰두했던 세대입니다. 해방 이후 가장 치열한 의식화 교육의 시대를 산 사람들입니다. 대학가 주변의 서점도 지금보다 많았고 술자리에서는 책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중년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난한 젊은 세대보다 소비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여태 우리 출판이 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공급하지 못했죠.

단순히 젊은 출판인을 비판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현장에 있을 때, 50~60대 남성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둔 기획은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50~60대 남성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발견했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할 의무가 휴머니스트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장은수 : 우리는 흔히 트렌드를 말합니다만, 실제로는 트렌드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시대를 바꾸는 건 트렌드가 아니라 이면의 힘입니다. 가령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의 경우, 트렌드는 논어지만 힘은 마흔이죠. 논어는 항상 되살아나는 콘텐츠입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시는 트렌드일 뿐입니다. 이홍 선생이 말씀하신 장년층이 힘입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 힘이고, 늙어가는 앞으로의 사회에서도 힘입니다. 그렇다면 50대와 트렌드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죠. 50대와 사랑, 50대와 논어, 50대와 시를 만나게 하는 작업이 중요할 겁니다. 50대와 트렌드의 접점을 만드는 콘텐츠 전략, 홍보 전략이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 책은 실마리를 줍니다. 50대에 고민하게 되는 인생 문제의 각종 요소가 녹아들어 있죠.

이홍 : 사실 제목부터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해요. 곧바로 80년대 학번이라면 누구나 알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웃음)

출판사는 젊은 층을 고려했다고 하셨지만, 제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시를 잊었다'는 건 과거형, 즉 예전에 시를 읽었다는 거죠. 누차 강조하지만, 저희 젊은 시대에는 시로 먹고사는 출판사가 많았습니다. 그 정도로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자연히 제목부터 이 책은 장년층에 호소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이 장년층을 움직인 힘은 제목에 있습니다.

장은수 : 맞아요. 그래서 한계도 명확하죠. 이 책이 다루는 시는 이미 옛 시입니다. 새로운 해석이 꼭 새롭다는 건 아니죠. 근본적으로 새로운, 그러면서도 이 책과 같은 형태의 '버전 2'가 필요합니다. 함민복 시인의 작품부터 시작하거나, 김경주 시인처럼 더 젊어도 좋겠죠. 2030세대 중 시를 원하는 이들을 움직일 동시대 작품을 소개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웃음)

전문 필자 그룹이 새로운 책을 낳는다

이홍 : 이 책은 대학 교양 강좌 내용을 정리한 기획 출판물입니다. 이런 기획 강의 도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우선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의 특징부터 짚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휴머니스트가 보유한 필진 대부분이 교사와 대학 교수이고, 특히 국어 교사입니다. 이들을 통해 고유의 색채를 내는 인문 서적을 만들고 있죠. 어떻게 보면 다른 출판사에 비해 일정 분야에 특화한 집필 군을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전략입니다만, 다르게 보면 필자가 경직됐다는 평가도 가능할 듯 보입니다. 휴머니스트의 이런 전략을 장은수 대표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장은수 :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많은 출판사가 인문·과학·자기 계발을 가리지 않고 시장을 옮겨 다닙니다. 앞으로 이런 경영은 불가능해지리라 봅니다. 예스24 발표 자료에서 보듯, 도서의 모바일 매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지난 13일 예스24는 지난해 모바일 서점의 연매출이 1000억 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67% 성장한 수치며, 웹 매출 대비 모바일 매출 비중도 2014년의 15%에서 24%로 크게 올랐다.).

모바일은 구매 도구이지, 발견 도구가 아닙니다. 독자는 이미 아는 책을 사기 위해 모바일 서점을 찾지, 모바일 서점에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얘기를 쉽게 이어가기 위해 앞서 각종 영역을 넘나드는 출판 경영을 '메뚜기형 출판'이라고 해보죠. 메뚜기형 출판을 할수록 독자에게 책을 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할 겁니다. 출판사가 모바일 시대에 자기 주력 영역을 정해놓지 않는다면, 다른 영역에서 사업하는 데 드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결국 틈새 시장을 지배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편집자, 하나의 편집 집단이 틈새 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워야 그 시장 독자가 출판사를 알아보고, 새로 내는 책에 집중하게 됩니다. 특정 영역에서 지배력을 확보한 다음, 그 독자의 욕구 변화에 출판사가 따라가야 합니다.

휴머니스트는 이런 경영 방식에 충실하다고 봅니다. 교사 위주 집단을 확보하고 있고, 이들을 통해 청소년과 대학생이라는 핵심 독자 군을 설정했고, 이들의 욕구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홍 : 좋습니다. 그러면 실제 휴머니스트가 어떤 식으로 교사·교수 필진을 활용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우리의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휴머니스트는 새 책 출판을 위해 대학의 교양 강좌 연구를 일상적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휴머니스트 : 두 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의 저자 중 교사·교수 집단 비율은 80~90%에 이릅니다. 이들과 책 한 권을 내면, 연달아 관련 주제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도 냅니다.

강좌 연구의 경우, 아무래도 저희가 가진 필자들에게서 얻는 정보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주제의 책을 내고 싶을 때 해당 필진을 통해 이런 강의를 하는 좋은 교사·교수 추천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수업을 들어보고, 출판사 의도와 부합한다고 여겨질 경우 출판을 기획합니다.

물론 특정 시기를 정해 '베스트 교양 강좌'로 알려진 강의를 편집자가 들으러 다니기도 합니다.
이홍 : 확보한 저자 집단의 인맥을 활용해 정보를 얻는다는 얘기군요. 더욱 시스템화한 방식으로 운영하진 않나요?

휴머니스트 : 알음알음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보다 체계화한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만 책의 구성 형태를 저자를 활용해 새롭게 시도하긴 합니다. <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장수철·이재성 지음)의 경우 3년을 준비한 책인데요, 두 교수님의 강의를 묶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좋은 과학 서적이 많지만, 의외로 생물학 입문서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책을 어떻게 낼까 고민하다가 일반 생물학 강의를 하는 장수철 연세대학교 교수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장수철 교수께서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이에 장 교수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이재성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책을 같이 쓰는 방식이 아니라, 장 교수께서 생물학에 문외한인 이재성 교수에게 직접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책을 꾸몄습니다. 실제 2년 동안 두 분이 이런 형태의 일대일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이홍 :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정재찬 교수는 기존 휴머니스트 필진 리스트에 있던 분인가요?

휴머니스트 : 정재찬 교수는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소개를 받았습니다.
강의형 책 유행, 과연 좋은가

이홍 : 잘 알겠습니다. 이제 휴머니스트 사례를 벗어나, 본래 이야기하고자 한 주제인 강의 형태 출판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책이 아주 많습니다. 일단 독자가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기에 이런 시도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네요.

장은수 : 강의를 책으로 만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일본의 경우,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도쿄대 강의를 책으로 많이 냈습니다. 일반 교양을 넓히고자 한 시도겠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다만 우리의 강의형 서적과 외국의 서적이 약간 형태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대개 외국 대학의 강의를 책으로 낼 경우 미리 원고부터 씁니다. 그리고 학생 반응에 맞춰서 약간의 수정을 가해 책으로 완성하죠. 반면 우리는 보통 강의를 녹음한 후, 편집자가 일일이 타이핑하는 식으로 책을 만듭니다.

이러니 밀도가 떨어지죠. 우리의 대학 강의 서적이 대중의 관점에서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쪽으로는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강의를 대중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첨단의 얘기를 다루기도 쉽지 않죠. '대중이 알 만한 내용을 강의 형태로 알린다'는 포맷에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이라는 기관이 앎의 최전선에 있는데, 그렇다면 더욱 첨단의 이야기도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출판사는 대중의 최전선을 찾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 이론을 소개하자는 책들이 초끈 이론은 여전히 소개하지 않아요. 여전히 옛날 이론만 독자에게 쉽게 알려준다는 의의의 책이 많죠. 편집자가 조금 더 날카로워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홍 : 저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의를 책으로 엮는 건 유용한 방식임이 틀림없지만, 출판사가 편리성에 매몰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말씀하신 대로 녹취에 의존하다 보면, 책의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쉽습니다. 원고를 확보하는 편리성은 좋아졌지만 이 편리성을 좀 더 깊이 있는 지점으로 확장하는 '탁월한 기획'은 좀 게을러진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휴머니스트 : 이 책은 말씀하신 형태의 강의 정리서는 아닙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쓴 원고를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두 분이 모범사례로 말씀하신 외국의 대학 강의 서적과 같은 형태죠.
장은수 : 네, 맞아요.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도 다른 강의를 엮은 서적과 비교됐어요.

주제에 집중해보자면, 강의를 책으로 엮을 때 단순히 대중화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엇을 대중화하느냐가 중요해요. 처음부터 밀도 높게 출간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쉽게 전달하자'는 생각에 단순히 사진만 많이 넣는 식의 엉성한 책이 되기 쉽죠. 이는 방송을 책으로 엮을 때도 유사하게 발견되는 사례입니다.

▲ 강의 녹음 후 타이핑하는 식의 강연 서적은 질이 떨어진다. ⓒ프레시안(최형락)

미래의 출판 편집자상은?

이홍 : 이 책의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지기 위해 이제 출판사가 할 일은 뭐가 있을까요?

장은수 : 책이 나온 후 특별히 더 강한 홍보 프로그램을 기획하진 않은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 되기가 힘든데, 좋은 책이 기왕 알려졌다면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잡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다만, 최근의 식상한 홍보 패턴을 따라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 낸 후, 저자 강연 한 번 돌리는 식의 홍보는 뭐를 위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이런 강연이 책 판매량을 늘릴지 회의적입니다. 기왕 언론을 활용하는 김에 기고 기획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거나, 책의 콘텐츠를 다른 식으로 재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작품별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거죠. 콘텐츠 특성을 깊이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형태의 홍보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출판사가 전반적으로 독자에게 찾아가 떠드는 데만 집중합니다. 강연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독자와 직접 연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될 수도 있죠.

휴머니스트 : 저희 자체 팟캐스트와 블로그를 운영하고, 강의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휴머니스트의 공간에서 강의를 듣는 독자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독자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확장하려는 준비는 현재 진행 중입니다. 지난 3, 4년간 독자와 접점을 늘리려는 시도가 결과물로 쌓이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장은수 :
휴머니스트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교사 네트워크라고 생각해요. 일반 독자는 아닙니다. 핵심 독자층이 단단하지만, 그 수가 충분하진 않죠. 이 책의 경우 더욱 대중화한다면 정재찬 교수의 강의를 온라인 강의 형태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창비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사업 모델에 적용하는 쪽으로 확실히 가려는 것 같아요. 큰돈을 들여서 건물 리모델링도 했죠. 휴머니스트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물론 휴머니스트는 이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다른 사업으로 활용하는 데서 상대적으로 앞서나가는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이홍 : 단순히 출판사가 책 만들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놓는 콘텐츠에 대한 재발견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래야 새로운 기회로의 창구가 넓어지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여러 차례 얘기한 겁니다만, 이런 변화는 회사의 리더와 문화가 제대로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단순히 주니어급 몇몇이 "우리는 이제 이렇게 변해야 한다"고 해서 가능할 일은 아닙니다.

앞으로의 출판에서 편집자 에디터십은 프로듀서 개념으로 변화하리라고 봐요. 궁극적인 하나의 텍스트 콘텐츠를 발견하면, 이를 책으로만 내는 게 아니라 복합적 가능성을 지닌 콘텐츠로 확장하는 역할이죠. 이런 변화는 조직적 실천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겠죠.

장은수 : 휴머니스트가 강조하는 편집자 상이 전략적 편집자라고 봐요. 콘텐츠 외적인 사업까지 충분히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이죠. 경영진이 이를 계속 강조하는 거로 압니다. 조직이 그에 걸맞게 변화한다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겠죠.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이처럼 변화를 꾀하는 출판사가 낸 책으로서는 홍보 기교를 부리지 않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휴머니스트가 여러 가지 고민할 시간을 가져보는 게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도 싶네요.

좋은 편집은 기본

▲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이홍 :
이제 대담을 정리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차례 대담을 진행했는데, 이번처럼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이리저리 파헤치면서 읽을 책은 아닙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죠. (웃음)

직선이 난무하고, 사회에 짙게 새겨진 흉터가 보이는 산문의 시대에 시의 언어가 가진 의미가 조금 더 조명받는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문법을 파괴하는 단축어가 아니라, 시어처럼 한 단어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진 단어가 진정한 언어의 확장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개 책을 두고 지식과 정보 확장에 초점을 맞추죠. 이 때문인지 우리가 여태 각자가 내면에 지닌 깊은 감성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사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이 책이 일견 세파에 무뎌진 50대 남성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데서 약간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장은수 : 저도 오랜만에 많이 울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웃음)

정통 편집만 잘해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게 이 책 성공의 7할이라고 봅니다. 나머지 3할은 숙제가 되겠죠. 앞으로 출판사가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것이냐를 고민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출판은 조금 더 의도적이고 거대한 기획에 따라 산업적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닙니다. 콘텐츠 산업 전체가 이렇게 움직이니, 출판도 그렇게 가리란 거죠. 책의 개별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책이 콘텐츠 산업의 하나로서 좀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겁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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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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