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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3년 동안 작은 '모래성'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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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3년 동안 작은 '모래성'만 쌓았다 [한반도 브리핑] 삐걱거리는 외교, 휘청거리는 경제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대북정책이 급 변침했다. 현상적으로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 발표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부터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중국과 외교가 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은 사드를 북한 위협에 대한 억제용이라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사드를 대중국 협상 카드로 사용했다. 한미관계에서도 엇박자가 났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 발표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언급했다. 남북관계도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작년 연말에 갑작스럽게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합의'를 약속했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오히려 더 꼬이고 있다. 대중외교와 대일외교의 앞길이 불확실해지고 남북관계가 바닥을 헤매는 상황이다. 북방외교를 통한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 창출에 대한 기대감도 서서히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적절했나?

이러한 현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연이은 장거리 로켓발사이다. 지난 1월 6일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발표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드 배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물론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다소 원론적인 언급이었다.

그동안 사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국으로부터 '요구와 협의'가 없었고 따라서 '결정'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직접 언급했다. 파장은 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한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보를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위협적 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 지난 1월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국익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수소탄' 시험 이후 기존 입장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청와대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채 수수방관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사실상 무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종료하기 위해 정전협전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구상조차 없었다. 2016년 2월부터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론을 주장하자 '비핵화 이후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수동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첫 단추부터 꼬인 남북관계

남북관계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정작 북한과 대화를 위한 기회는 매번 놓치고 말았다. 집권 첫해인 2013년에는 남북장관급 회담의 기회가 있었다. 이때 박근혜 정부는 장관급 회담의 '격'을 따지다 남북관계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북한의 조평통 서기국장은 장관급인데도 '국장급'이라는 웃지 못할 인식 때문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장급'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 없었다.

2014년 초에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북한의 국방위원회 사이에서 이뤄졌다. 이 접촉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와 북한의 안보우려에 대해 쌍방이 교감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추가적인 접촉이 없이 두 번째 기회를 놓쳤다.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북한에서 이른바 3인방이 방문하여 남북 핵심인사들의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관리하지 못하고 또다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2015년 초에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이를 의식한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붕괴론 발언 때문에 또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2015년 8월 남북의 군사적 대치 이후 어렵게 시작했던 초보적인 남북교류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격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위력을 지니지 못했다.

남북관계 방치로 대북 개입 수단 상실

이렇게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남북관계는 작은 모래성 쌓기를 반복하기만 했다. 5번의 기회가 있었을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고 후하게 평가한다면, 마찬가지로 5번의 기회에 김정은 체제가 응했던 셈이다. 하지만 5번의 기회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회의 존재가 향후 남북관계의 개선을 전망하는데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대응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엄포뿐일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했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수단도 다양해졌을 것이다.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개성공단 폐쇄, 확성기 방송 재개, 사드 배치 협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에 대한 응징보다는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큰 자해적 조치이다. 무엇보다도 개성공단 폐쇄는 분단체제 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한국이 겪고 있는 자산 저평가 상황을 가중시켰다. '코리아 리스크'를 심화시켜서 측정할 수 없는 큰 손실을 입고 있지만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을 유지시킬 수 있는 묘수를 찾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다. 한국이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여 코리아리스크 완화에 기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판의 돌

사드 배치를 논하고 혹독한 대가를 강조하는 것은 실제로는 효과 없는 처방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섣부른 사드 배치 논의는 중국이 '한국은 바둑판의 돌'이라고 했던 말을 사실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 발언 이후 국방부는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강화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과 사드배치 협의 착수를 선언했다. 한국사회는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들끓었다. 사드는 대북 억제용으로는 효용이 없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용이라는 것이 반대논리였다. 한국의 사드 배치 추진으로 중국과 관계는 한중수교 이후 최악이 되었다. 중국의 군부에서는 공공연히 한국의 사드 배치 지역을 타격하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한중 경제관계에 대한 위협적인 언사도 제기되었다.

우리가 중국에 들이밀 카드는 민주주의와 법치와 인권과 평화 그리고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습득한 국제적 표준기준이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부강과 법치를 강조하면서 사회발전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의 카드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는 한중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면서도 과거 동아시아 질서처럼 중국과 조공관계가 아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중군사관계와 한중경제관계가 악화된다면 중국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는커녕, 냉전 시대와 유사한 '한미일 삼각관계'와 '북중러 삼각관계'가 대립하는 구도가 되어버릴 것이다.

퍼펙트 스톰의 위기 기다리는 한국경제

그런데 뜻밖에 미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의 출구가 발견됐다.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대북 제재에 합의한 이후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은 사드를 당장 배치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한국정부가 바둑판의 돌의 신세로 전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존 케리(오른쪽) 미국 국무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월 2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이 1월 6일 수소탄 실험 발표를 한 직후 한국 정부는 가장 먼저 대중외교를 시도했어야 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이라는 긴박한 상황논리를 들이대면서 중국의 문을 두드렸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일과 접촉을 우선시했다. 외교부는 중국은 불통 상태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중관계가 순간 '블랙 아웃'이 되어버렸다. 그와 함께 발생한 상하이 증시폭락에 한국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한국의 미숙한 대응은 '코리아 리스크'와 '차이나 리스크'라는 뎌블 리스크가 중첩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앞으로 저유가가 지속되고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오일 리스크'와 '아메리카 리스크'까지 한국 경제를 기다릴 것이다. 한국경제가 '퍼펙트 스톰'의 위기로 치닫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여주기식 순방외교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수소탄 실험 발표에 사드 배치로 대응한 것은 2015년 한미 정상회담 이후 예견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0월 한미정상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다분히 2015년 9월 열린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이후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치우쳤다는 '중국경사론'을 유포했다. 미국 조야에서도 일본의 이같은 주장을 수용하여 중국경사론이 번졌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 전승절 행사이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야욕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전체의 성장 잠재력이 위협받고 있다. 이게 내가 베이징에서 만난 각국 지도자에게 보낸 메시지였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경사론에 대한 미국 조야의 의문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중국에 대한 한목소리를 요청한 것은 박 대통령이 '중국경사론'을 실질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강한 드라이브였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원하는 '한 목소리'에는 당연히 사드 문제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부각한 '중국 책임론'은 중국에 대해 한미 양국이 한목소리를 내기로 약속한 것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아웃소싱에 의해서 사드배치를 주장하면서 중국과 갈등에서 선봉에 서는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이 중국과 최전선에서 사드 문제로 갈등할 때 미국과 중국은 '북한 제제'와 '사드배치'를 교환하는 협상을 성공시켰다.

결국 한국외교가 군색한 처지로 몰리는 상황은 2015년 2차대전 종전 70주년 외교무대에 전략 없이 임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 천안문 성루외교, 한일정상회담 등 외양은 화려했지만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없었다. 그 사이 세계 경제의 높은 파고는 한국경제에 퍼펙트 스톰으로 몰려들 채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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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고려대학교, 경남대 북한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평화연구소, 한국사회연구소에서 학술 및 연구 활동을 벌였고 1998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실장을 지냈습니다. 2003년부터 청와대 NSC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근무했습니다. 현재 (사)한반도 평화포럼 기획운영위원, 코리아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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