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역대 최대 규모"라는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7일부터 시작된 군사훈련은 이번 달 18일까지 실시되는 키리졸브 및 쌍용훈련, 4월 30일까지 예정된 독수리 훈련을 망라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 증원군 1만 5000명과 주한미군 2만 5000명, 한국군 30만 명이 참여한다. 투입된 전력도 화려(?)하다.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호, 스텔스 상륙함인 존뉴올리언스호,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B-2, 스텔스 전투기인 F-22 등이 총출동한다.
특히 이번 군사훈련은 한미연합사의 새로운 작전계획인 '5015'가 처음으로 적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참수작전'으로 불리는 북한 수뇌부 제거,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 '탐지-교란-파괴-방어'로 이어지는 '4D 작전' 등이 주요 골자다.
한미연합사는 이러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들어왔던 얘기이다. 그런데 과연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개선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선제공격적인 군사적 대응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격화되는 안보 딜레마
군사 훈련을 둘러싼 홍역은 매년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일이지만, 최근 들어서 몇 가지 주목해야 할 현상들이 있다. 먼저 양측에서 '선제공격'이라는 말이 빈번해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사용 징후 포착시 선제공격으로 파괴시킨다는 계획을 공식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은 피격당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양측 모두 선제공격 의지와 능력을 과시해 상대방의 선제공격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만큼 일촉즉발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또 하나는 양측 모두 전략 무기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B-52, B-2, F-22, 핵잠수함 등 핵 투발수단을 대거 동원해 한편으로는 북핵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의 핵무장론을 억제하려고 한다. 이에 맞서 북한도 핵탄두 소형화를 통해 다양한 투발 수단에 핵무기 장착을 완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전쟁 발발 시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끝으로 양측 모두 '무력 통일'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번 한미군사훈련에 '평양진격작전'이 포함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의미이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통일성전" 운운하면서 전쟁이 터지면 "주체적 전쟁 방식"으로 통일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식은땀 나는 안보는 가짜다!
이렇게 안보 딜레마가 격화되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냉전과 열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품고 있던 독침을 빼들어 서로를 겨냥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선 사소한 사건이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고, 전쟁이 터지지 않더라도 식은땀 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대를 절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경쟁적으로 과시하면서 유지되는 '전쟁 없는 상태'는 가짜 안보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질 때가 왔다.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군사비를 쓰고 세계 최강인 미국과 수시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벌이는데, 왜 우리의 안보는 갈수록 불안해지는 것일까?
이러한 가짜 안보의 틀을 깨려고 했던 선각자가 있었다.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었던 '팀 스피릿'을 축소하고 결국 중단을 결단하면서 '다른 수단에 의한, 그러나 더 튼튼한 안보'를 시도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미 양국의 강경파의 농간과 북한의 과잉대응으로 그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오늘날 노태우 정부 때의 사례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한미 군사 훈련의 대폭 축소 내지 중단과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을 맞바꾸는 것 말고는 안보 위기의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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