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아시아 국가로서, 이 지역은 중국의 경제, 외교, 군사 활동의 주 무대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의 '영향력 경쟁'에서 뿐만 아니라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군사적 충돌도 지역 내의 주요 분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중국 국가 이익의 확대로 인해 중국의 관심은 더 이상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위 '역외(域外, out-of-area)' 지역에서의 이익 보호도 중국의 미래와 직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국의 원정(遠征) 작전(expeditionary operations) 능력은 전시 혹은 평시에 국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 비(非)군사적 역외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교적 먼 거리에서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개되는 군사 행동인 원거리 투사 능력(power projection capability)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우선, 중국 국가 이익의 대외적 확대는 분명한 사실이고, 중국 정부 또한 이를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2015년 현재 약 2만 개의 중국 기업이 세계 180개 국가 및 지역에 퍼져있다고 한다. 2011년도 해외 투자 금액은 2005년과 비교해 20배 정도 증가했고, 작년도 해외여행을 나간 중국인 수는 1억2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바와 같이 중국의 '공격적'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은 중동,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을 모두 상정하고 있고, 미국의 '뒷마당'인 남미에 대해서도 중국의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 즉,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인 중국으로서는 해외 자산, 인명 보호, 전략적 해로(SLOC)의 확보, '해양 강국'으로의 위상 제고 등을 위해 보다 효율적인 역외 작전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덴만 대(對) 해적 작전
중국군 해군은 동 작전을 위해 2008년 12월 26일 하이난(海南) 성 싼야(三亞) 해군 기지에서 구축함 2척과 보급함 1척을 처음으로 출항시켰다. (참고로 12월 26일은 마오쩌둥의 생일이다.) 이후 작년까지 총 22회 출항했는데, 함대의 구성도 미사일 구축함(DDG), 상륙수송함(LPD), 해상보급함(RAS) 등 다양화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원정 작전을 통해 얻은 교훈인데, 외국의 전문가들은 중국군이 ① 리프트(lift) 능력 제고 필요성, ② 함대 배치 및 교대 과정의 안정화, ③ 배치 전(前) 준비 및 훈련 필요성, ④ 해군 작전과 정보의 결합, ⑤ 역외 작전 시 군수 지원 및 시설의 필요성 등 다양한 교훈을 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⑤의 필요성은 중국이 최근 지부티(Djibouti)로부터 군사 및 보급 시설을 확보한 것과 관련이 있다.
비(非)전투원 후송 작전(NEO)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인해 중동의 정권이 붕괴되고 혼란에 빠졌을 당시, 중국 정부는 리비아에 거주, 근무하는 중국인들을 후송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자산을 전개했는데, 이에는 아덴만 대해적 작전에 참가 중이던 프리깃함 1척, 중국에서 발진한 공군 수송기 및 민간 항공기, 제3국에서 임대한 페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많은 기관이 관련되어 있었으나 중국 외교부가 총괄 지휘했는데, 이는 리비아에 있는 중국 대사관과의 연락과 외국 기관과의 협조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문제는 작전 초기부터 발생했는데 후송 인원이 초기 예상을 크게 초과하는 3만5000명 이상이었다.
정보력의 부재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외에도 민-군 합동 작전의 성격을 지닌 데다 워낙 다양한 기관이 관여되다 보니 기관 간 협조도 큰 문제로 작용했다. 이외에도 원거리이다 보니 활주로, 항구 및 보급 시설의 확보도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예를 들어, 중국 공군은 동 작전의 수행을 위해 최소 4대의 수송기(Il-76)를 수단에 착륙시켜 재급유를 실시했다. 리비아에서의 작전 경험과 교훈은 작년(2015) 예멘에서의 후송 작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유엔 평화유지군(PKO) 참여
중국이 최초로 유엔(UN) 평화유지군에 참여한 것은 1989년인데, 당시 나미비아의 선거 감시를 위해 20명의 민간인이 파견됐다. 3년 후인 1992년에는 소규모 군 병력이 캄보디아에 파견되어 18개월 간 체류한 바 있다. 이후 중국은 파병 규모와 횟수를 점차 증가시켰는데, 1990년 중반이후 총 2만 명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역외 작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계기는 2009년 5월 중국군 총참모부가 '전쟁 외 군사 작전('非戰爭軍事行動', MOOTW)'을 발표한 것인데, 여기에는 중국 내외의 재난 등 비상사태 발생 시의 대응 체계 및 관리가 포함됐다. 동 작전의 중점은 국내 재난 사고(예, 2008년 5월 쓰촨 대지진) 및 국경 내외의 유사(contingency)로 보이나 유엔 평화유지군 참여도 중국의 원정 작전의 일부로 체계화됐다.
2010년대에 들어 중국군은 유엔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규모를 크게 확대했는데, 특히 2012~13년 말리와 2015년 남수단에의 파병 사례를 들 수 있다. 남수단의 경우 중국은 경화기와 장갑차(APC)로 무장한 700명의 보병 및 특수부대원을 파견했는데, 과거에 비해 적대적인 환경 하에서 무장 충돌을 억제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작전상의 교훈 외에도 남수단 내 중국의 자산 보호는 당연히 이뤄졌다.
이상에서 살펴본 중국군의 다양한 원정 작전 사례는 적어도 '합동화'에 긍정적인 교훈을 주었다고 본다. 후송 작전을 위해서는 해공군의 협조와 군수 지원 그리고 정보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그리고 평화유지군 파병에는 보병과 특수부대가 해공군이 제공하는 수송 수단을 이용했다. 보다 큰 규모의 중국군 개혁도 이와 같은 방향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역외 작전 능력과 원거리 투사 능력에 대해서는 주로 미국에서 연구되고 있다. 한국 그리고 심지어 대만(타이완)에서도 동 분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역외(域外)나 원거리가 아닌 동아시아 내 유사(대만해협과 한반도)에만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중국의 역외 작전 능력은 언제든지 보다 근거리인 지역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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