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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황제, 암은 왜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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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황제, 암은 왜 생기나?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암에 대한 단상
"요즘 갑자기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할아버지께서 정기 검사에서 폐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병원 모시고 다니느라 내가 다 죽게 생겼어요. 하루 내 여러 과를 돌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니까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암'이라는 병과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수술받았거나 현재 투병 중인 분, 가족의 암 때문에 고통받는 분이 많습니다. 과거에 진료했던 환자께서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돌아가신 경우도 겪었습니다. 불과 한두 달 전에 웃는 얼굴에 씩씩한 모습으로 "투병 중"이라며 찾아오셨던 분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한나절 정도 무력감에 빠지죠.

과거 암은 그리 흔치 않은(아마 암인 줄 모르고 사망한 때도 많았겠지요) 질병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암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 1위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면 국민 2-3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사망하게 되리라는 예측도 나오지요. 심심하면 한 번씩 "암 정복의 길이 열렸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아직도 암은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책 제목처럼 '만병의 황제'로 군림합니다.

과거 인류는 짧은 수명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대인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낮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특정한 암에 걸린 환자임이 분명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적취, 반위, 영류, 나력, 징가, 어혈, 그리고 담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는데, 그 부위나 양상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암을 기혈의 소통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아 뭉쳐서 생긴 덩어리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도 걸릴 병은 다 걸리고 살았던 셈이지요.

현재까지 암의 변종은 200가지가 넘는다고 알려졌습니다. 흔히 암이 생긴 부위를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지만, 실상 암이라는 용어에는 200종류가 넘는 서로 다른 병이 포함됐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이 암들을 '통제 불능(혹은 통제 거부) 상태에 빠진 세포의 집단'으로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정상적인 세포라면 성장하고 분열하고 때가 되면 사멸해야 하는데, 이 일반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는 패거리가 생긴 것이지요.

왜 이런 녀석들이 생겼을까요?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유전적 요인, 늘어난 수명, 잘못된 생활습관, 그리고 자연적·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등을 꼽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요인은 단지 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암이라고 해서 그 뿌리를 다른 질병과 아주 다른 곳에 두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도한 방사선에의 노출과 같은 치명적 위험을 지닌 요인은 존재하지만 말이지요.

따라서 암에 접근할 때도 그 드러난 것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되는 요인을 개선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통상적인 암 치료법만으로 모든 암세포를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암의 바탕 혹은 뿌리가 되는 상태는 무엇일까요? 아보 도오루와 같은 면역학자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저체온, 저산소 상태를 이야기하는데, 저 또한 이에 공감합니다. 이와 함께 진화생물학에서 이야기하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간 공생관계의 일그러짐이 암의 바탕이 된다는 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암의 예방과 치유를 위해 세포 간 공생관계 회복을 위해 애써줄 것을 환자에게 당부합니다.

이 설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60조 개가 넘는 세포, 그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존재합니다. 세포 안에도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와 동거하게 된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 내 기관이 존재합니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한 공존하고 있지요. 우리 몸은 이 모든 존재가 서로 균형을 이루고 공생하는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몇 줄도 정리되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수백 조에 이르는 개체들이 쉼 없이 서로 전기적 혹은 화학적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인간이란 복잡계를 유지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어떤 SF 영화보다 흥미진진하고 아슬아슬합니다. 우리가 생물학적 유연성을 잃는 대신 지금과 같이 골치 아픈 복잡계를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그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로 적당히 룰을 지키면 너도 좋고 나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한 인간의 상황이 도저히 이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개별 세포들은 지난날 함께 죽고 함께 살자는 맹세를 저버리고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성을 잃고 생존 본능만이 남지요. 결과적으로 내가 속한 세상(인체)이 무너지더라도 내 세력을 키우는 데만 몰두하게 됩니다. 마치 인간이 지구(인간이 이룩한 문명이겠지만요)를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병이 생기는데, 암 또한 그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게 세포간 공생관계 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발암 요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세포의 폭주를 부추기고, 이를 제어할 기능을 무력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지요.

물론 이러한 내용이 암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암을 없애야 할 무엇이 아니라 내 내적인 불균형(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음양오행의 부조화라고 표현하지요)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연스럽게 유발된 것으로 인식하면 그것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암을 예방하거나 공격적 치료 이후 건강을 좋게 유지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암 자체에 집착하다 보면 길을 잃기 쉬우니까요. 선별적인 공격적 치료와 함께 내적 환경을 건강하게 회복하고, 나를 이루는 존재의 평화로운 공존을 회복할 수 있다면 암은 황제의 왕관을 슬그머니 내려놓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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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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